"에토 추~다!(이것은 기적이다)"

"에토 추~다!(이것은 기적이다)"

[ 땅끝편지 ] 러시아 최영모 선교사7

최영모 선교사
2021년 05월 20일(목) 17:15
선교 센터 전경. 필자가 섬기는 교회, 신학교, 기독교학교가 모두 이곳에 있다.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러시아인들이 그 이름을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사랑하는 문호 푸시킨의 시 한 구절이다. 하지만 필자에게 그때 그 일만큼은 전혀 그리워지지 않는다.

선교센터는 잘 지어졌다. 건축하는 데 8년이 걸렸지만, 헌당 예배에 참석한 러시아 목회자들이 "에토 추~다!(이것은 기적이다!)" 하면서 연신 감탄하니 어깨가 조금은 으쓱거려진다. 하나님의 선물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에서 러시아 목회자들의 정기적인 기도회, 교회들의 연합행사, 교회당이 없는 교회들의 모임에 선교센터를 기꺼이 제공했다. 그런데 복을 누리던 중에도 무서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욥처럼 필자에게도 "마침내 그렇게도 두려워하던 일이 밀어닥치고, 그렇게도 무서워하던 일이 다가오고야 말았다(욥3:25)." 여러 해 전에 했던 선교센터의 등록을 정부가 느닷없이 취소하면서 건물을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와 필자 사이에는 일 년 반이나 걸리는 힘겨운 싸움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주일예배에서 교우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기도를 부탁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오후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거의 모든 아는 사람으로부터 이 일을 묻는 전화가 왔다. 순식간에 널리 소문이 난 것이다. 협력하면서 가까이 지내는 러시아 목회자들은 아예 건물을 뺏길 것으로 전제하면서 말을 걸어왔다. 타국에서 선교사의 힘은 한없이 약하기 마련이며 상대는 정부였으니 결과는 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비즈니스를 하는 이들은 솔직하게 자신의 경험담을 말하면서, "여기에서는 뇌물을 줘야 일이 풀립니다. 목사님들은 세상 물정을 너무 몰라요"하고 충고했다. 얼마나 답답하고 절박했으면 '성경은 뇌물에 대하여 뭐라고 말할까'하며 찾아보기까지 했을까!

한 해가 지나가도 출구는 여전히 보이지 않은 채 캄캄한 터널 속에 있는 것 같았고, 재판장과 검사는 항상 한 편인 것만 같았다. 몸과 마음 모두가 지치니 기도해 달라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아내에게 말했다. "선교 센터를 뺏기고 나면 선교사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가야겠지?" 남편에게 순종을 잘하는 아내도 이 날만큼은 달랐다. "당연히 그래야지, 어떻게 여기에서 더 하겠어요." 이렇게 대답할 줄 알았는데, "건물을 뺏겨도 난 들어가지 않겠어요. 교인들을 생각해봐요. 교회 건물 잃었지, 목사는 떠났지, 그 고통이 얼마나 크겠어요. 난 다른 장소를 빌려서라도 교인들과 함께 다시 시작할 거예요."

그 순간 그 말이 마치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려왔다. 정신이 번쩍 들면서, 그때부터 기도의 내용이 달라졌다. "하나님, 건물을 뺏겨도 저는 변함없이 하나님을 나의 주 나의 왕으로 섬길 것입니다. 그런데 교인들을 보세요. 교회당을 잃어버리면 저들의 상실감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아예 하나님을 떠나버릴지도 몰라요. 그러니 저보다는 교인들을 보시고,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막혔던 문제가 하나씩 풀리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개입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면상 다 말할 수 없는 것이 유감일 뿐이다. 기적 같은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고, 선교 센터는 온전하게 보존됐다. 그것을 보면서 러시아 목회자들은 또 말한다. "에토 추~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구나'라고 생각했으나 실은 내가 완전히 내려놓을 때까지 기다리고 계셨다. 어쩌면 나보다 더 답답해하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분은 언젠가 사라질 피상적인 것보다는 그분의 자녀들 안에 영원한 나라를 만드는 데 더 관심이 있으셨다. 필자의 눈이 열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끝이 없음을 보게 되니, 지나간 것이 그립지는 않지만 유익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어쨌든 필자와 같은 그런 어려움을 겪는 선교사는 부디 없으면 좋겠다.

최영모 목사 /총회 파송 러시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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