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와 평신도, 말씀을 통해 만나야 한다

목회자와 평신도, 말씀을 통해 만나야 한다

[ 땅끝편지 ] 영국 장순택 선교사

장순택 선교사
2020년 10월 22일(목) 10:47
장순택 선교사와 정기적으로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 영국교회 교인들.
필자는 세 교회 목회를 한다. 처음엔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주일에 세 교회 예배를 모두 인도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세 교회가 예배시간을 조정해 주면 모두 인도하겠다"고 했더니 "그럼 너무 힘들어서 안 된다"며, 매주 한 교회씩 돌아가며 예배를 인도하라고 권했다. 이것이 보통 영국교회 목회 현장이요, 교회 생활이다. 교회가 재정적으로 목회자 한 사람을 감당하기 힘들어 여러 교회가 함께 목사를 청빙하다 보니 이런 일이 일어난다. 목회자가 방문하지 않는 주엔 보통 은퇴목사나 평신도가 대신 예배를 인도한다. 그러다 보니 설교보다는 시나 수필을 읽거나, 심한 경우엔 왜 성경을 믿을 수 없는 지에 대해 설명한 사람도 있었다.

영국에선 보통 한 시간 안에 예배가 끝나는데, 그 한 시간 동안 찬송가 다섯 곡과 주기도문, 구약(보통시편)과 신약 본문 읽기, 중보기도, 광고, 어린이를 위한 짧은 설교, 헌금, 어른을 위한 설교를 마쳐야 한다. 설교는 15~18분을 넘지 않아야 하고, 짧게 끝내면 더 좋아한다. 이런 상황이라 설교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만일 한 시간 안에 예배가 끝나지 않으면 자리에서 일어나 '오븐의 음식이 다 되었다'며 가버리는 일도 있었다. 또 설교가 끝나면 찾아와서 다른 이유들을 언급하며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영국교회는 주일 낮예배만 있고 저녁예배가 없는 교회가 대부분이고,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구역예배를 갖는 교회는 아주 드물다. 성경공부도 본문, 질문지, 답안지, 영상까지 포함한 재료를 사서 그대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개인의 신앙고백이나 성경을 통해 깨닫는 살아있는 말씀보다는 교육자료 집필자 생각을 공감하는 선에 머물러 있었다. 필자는 교인들이 말씀을 직접 읽고, 체험하는 성경공부를 진행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아무리 중요성을 강조해도 수십 년 동안 박혀있던 그들의 삶의 틀을 깨고 새롭게 뭔가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남교회에서 필자는 성경공부가 필요하다고 당회에 말하고 일 년 이상을 기다렸으나 계속 미뤄지는 모습을 보고 주일 예배시간에 "이번 주 수요일부터 성경공부를 시작하겠다"고 선포해 버렸다. 처음엔 참석자 수가 일정치 않더니 한 달 후엔 8명의 고정 인원이 참석하는 모임으로 발전했다. 30명 교인 중 8명이 참석하는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필자는 성경을 한 장씩 읽으면서 철저히 말씀에 근거해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해 창세기를 시작했는데 창세기 1장 1절 말씀은 3주 동안 모임을 가져도 끝나지 않아 모두 놀라워하기도 했다. 성경공부를 하며 교인들은 많이 변했고, 대부분 "조금 더 일찍 말씀을 배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며, 필자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올드랜드교회는 주중 유치원 모임과 금요일 기도회가 있는데, 따로 성경공부를 하기 힘들다기에 기도회 시간 중 한 달에 한번씩 성경공부를 하기로 했다. 처음엔 시큰둥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성경공부에 재미를 느끼며, 오히려 더 적극적이 됐다.

성경공부가 잘 이뤄지는 교회에서 말씀을 선포하면 마음이 편하다. 대학 교수 출신인 교인들 앞에서 외국인이 말씀을 전하는 것이 처음엔 많이 부담됐는데, 이제는 그저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처럼 편안하다. 그들은 예배가 끝나면 살포시 손을 잡고 '은혜 받았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성경공부를 갖지 않는 교회에선 마음이 굳어지고 긴장된다. 말씀을 통한 만남이 없는 것처럼 힘든 일은 없다.

장순택 목사 / 총회 파송 영국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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