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에게

직녀에게

[ 주필칼럼 ]

이홍정목사
2016년 02월 12일(금) 13:41

'뉴욕 타임즈'는 1987년 '6월 항쟁'을 특집으로 다루며 빛 고을 광주의 시인이요 민족 시인으로 알려진 고 문병란 시인을, '화염병 대신 시(詩)를 던진 저항시인'으로 묘사한 바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남긴 당대의 교훈은, 한반도에서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것이었다. 즉 분단은 반민주의 근본원인이라는 것이다. 그가 70년대 중반에 '견우와 직녀'의 전설을 은유로 삼아 평화통일의 염원을 담아낸 시가 바로 '직녀에게'이다.

이 시에서 남북으로 나뉜 민족은 '견우와 직녀' 같은 연인 사이이다. 연인 사이에,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로 놓인 '분단의 은하수'를 애타게 바라만 보며, 이별과 슬픔의 세월을 막연히 선채로 견디며 기다리기엔, 그 세월이 너무나 길고 아프다.

그래서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에 노둣돌을 놓아" '분단의 은하수'를 건너 만나야 한다. 비록 "오작교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 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이 바로 남과 북, 하나의 민족이요, 연인이다. "연인아, 연인아, 이별은 끝나야 한다. 슬픔은 끝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이러한 '연인'의 재회를 위한 간절한 바램을 외면한 채, 오늘 동북아시아의 신 냉전구도의 축으로 자리 잡은 한반도에서는 군비강화와 무력시위를 위시한 적대적 반 평화행위가 계속되고 있다.

북에 의해 자행되는 핵수소폭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실험에서부터, 한미일 군사동맹의 강화를 위한 대규모 군사훈련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는 정전체제 하에서 전략적 군사기지로 변모된 채 핵전쟁을 불사하는 극한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지난 70년 세월 동안, 폭 4km, 길이 250km에 달하는 정전과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는 중무장지대로 탈바꿈해왔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이사야 2:4)는, 한반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평화의 꿈은 철저히 외면당해왔다.

지난 해 11월, 북한 고성군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민족의 화해와 단결,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 종교인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처음 동북단 비무장지대를 가로질러 가는 경험을 했다. 1980년 6월부터 2년 간 수색대 소대장으로 복무하면서 생사를 넘나드는 적대적 분단을 체험한 경험을 잊을 수 없는 곳이다.

비무장지대 초소(GP)에서 자원하는 병사들에게 직접 세례교육을 실시하고, 군목을 초청하여 세례를 베풀고, 예비대에 내려와 빈 막사를 활용하여 교회를 세웠던 바로 그 지역의 비무장지대, 분단의 아픔과 평화통일의 염원을 피눈물을 흘리며 실체적으로 체험하고 성찰했던 바로 그 땅을 가로질러, '그리운 금강산'에 발을 디딘 것이다.

중국을 경유하여 평양을 방문했던 경험에 비해, 수색과 매복으로 총구를 맞대고 대북방송을 하며 복무했던 바로 그 비무장지대 4km를 가로질러 가는 경험은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태아가 출산의 과정에서 여인의 뱃속의 통로를 빠져 나오며 경험하는 '죽음'과 탄생의 경험이 이런 것일까?

지난 해 10월 금강산에서 성사된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65년 만에 만난 팔순이 넘은 노부부의 이야기는, 분단이 지니는 원죄와도 같은 죄악성을 깨닫게 한다.

뱃속에 아들을 가진 채 금방 돌아온다며 북으로 간 남편과 헤어져 보낸 '수절'의 세월의 끝자락, 죽음을 앞둔 인생의 황혼에 이르러 비로소 만난 남편을 향해, 주름졌으나 여전히 앳된 얼굴의 노부인은 묻는다.

"'사랑해'라는 말이 얼마나 넓은 말인지 알아요?" 그렇다. "오작교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 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의 사랑은, 분단 70년의 세월이 만든 남북의 다름의 폭 4km를 가로지를 만큼, 동서 갈등의 골 250km를 메울 만큼, 아직은 넓고 깊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연인'들의 만남을 항구화하는 평화체제를 수립하고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 '오작교'로 '노둣돌'로 역할 하는 남과 북의 정부와 지도자들, 주변 강대국들, 그리고 가슴 딛고 만나 하나님의 평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다.

안타까운 것은 남북의 정권과 강대국들이 평화를 사랑하는 이 땅의 사람들이 가슴 딛고 만나는 '마음의 통일'을 일상의 삶 속에서 살아내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왜, 무엇을 위하여, '연인'들의 가슴에 이토록 깊고 견고한 분단의 말뚝을 박고 있는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대적 냉전의 동토, 분단된 '겨울공화국', 이 차가운 한반도의 대지를 뚫고 움터오는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의 봄, 그 꿈까지 얼어붙게 놔둘 수는 없지 않은가?

故 고정희 시인의 노래대로, 뿌리 깊으면 밑 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고,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며,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지 않은가? 영원한 복음의 진리가 민족공동체의 치유와 화해, 평화통일을 향한 희망의 지평을 지시하며 우리를 이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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