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되지 않은 기도의 축복

응답되지 않은 기도의 축복

[ 목양칼럼 ]

신태의 목사
2015년 12월 02일(수) 09:29
   

우리 교회는 한국교회 선교 100주년이 되던 해에 시찰회의 기념교회로 개척됐다. 그 당시 나는 고척교회란 아주 좋고 큰 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고 있었다.

당시는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3년 정도 되면 안수를 받고 담임 목회지로 나가던 시절이었다. 선임 부교역자들도 기존교회로 청빙을 받아 목회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주여! 저에게도 좋은 교회로 부임해 갈 수 있게 해 주소서"라고 간절히 기도 드리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당회장 목사님으로부터 온 응답은 "시찰회에서 한국교회 선교 100주년 기념교회를 개척하기로 했는데 그곳에 가서 개척해 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개척의 마음은 전혀 없었다. 단지 '어디든지 처음 연결되는 곳으로 가겠습니다'라고 기도했던 서원기도가 생각나서 개척의 부름에 순종하기로 했다.

개척의 부름을 받고 개척지를 가보니 그곳은 그린벨트로 30여 호가 있는 농사짓는 분들이 사는 시골이었다. 임시 예배처소로 사용할만한 건물이 전혀 없는 마을이었다.

그런데 새마을회관이라는 약 15평의 빈 공간이 있었다. 그 건물 땅주인에게 요청하여 교회당으로 쓰도록 허락을 받았다.

강대상이며 의자 등을 넣고 개척 창립예배를 드리려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동네 주민들의 반대로 인해 주민회의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민회의가 있던 전날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주여! 이 회관을 사용하게 해 주소서."

그러나 기도의 결과는 '불허하니 기물을 속히 빼라'는 것이었다. 얼마나 낙심이 되고 기도 응답에 회의가 들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새로운 용기가 생겼다.

일단 마당에서라도 개척예배를 드리자고 다짐했다. 의자를 마당으로 꺼내고 있는데 한 할아버지가 지나가시다가 "젊은이 예배드릴 곳이 없으면 우리 집으로 와서 하시오"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 집을 가보니 그 마을에서 제일 큰 새 집이요, 자녀들은 서울에 나가 있고 두 노인만 지내고 있는 집이었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는 마을의 유지였다.

개척예배를 드린 후 할아버지는 첫 교인이 되었고, "우리 집에서 교회를 시작했으니 교회 나오라"며 전도하는 일꾼도 되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목사님 저 같은 자가 말년에 예수 믿고 천국에 간다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런데 저는 평생 나만을 위해 살았지 선한 일을 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312평짜리 밭을 하나님께 드리니 팔아서 쓰시던지, 건축할 수 있는 때가 오면 교회당을 짓던지 선하게 사용하여 주십시오"라고 유언하시며, 등기이전까지 마치고 세상을 떠나셨다.

개척 30년이 지난 지금 그 땅에는 큰 예배당이 세워져 주일이면 예배를 드리고, 교회 잔디밭에서 아이들이 뛰논다. 노인정이 세워져 지난 날 반대했던 마을 노인들의 쉼터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응답되지 않았던 기도'가 얼마나 큰 축복이었던가!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는 말씀이 얼마나 확실한 체험이었던가?

이제는 그 어떤 인생 문제와 기도의 결과에도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감사하며 기도하며 살리라 다짐해 본다.

 

신태의 목사(광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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