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쉬 ...'쓰레기에서 피어나는 희망'

트래쉬 ...'쓰레기에서 피어나는 희망'

[ 말씀&MOVIE ] 말씀 & MOVIE

최성수 목사
2015년 05월 04일(월) 17:54

 <트래쉬> 감독 : 스티븐 달드리, 스릴러, 15세, 2014

대한민국 작금의 정치 현실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알고는 있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는 용기 없는 어른들도 많다. 정치를 안주거리 삼고 입만 열면 정통성이 결여됐다, 진실하지 못하다며 정부를 비난하고 부패한 정치인들을 욕하면서도 정작 나서야 할 때는 이런저런 이유로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는 일은 이미 일상이 되었다. 이런 모습은 이미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 '민상토론'에서 풍자되고 있다. 웃기는 이야기라 웃지 않을 수 없지만, 그 이야기가 대한민국의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는 있을까? 풍자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긴 알아도 혹시 이것이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옳은 일인 줄 알고 있으면서도 후환이 두려워 행동은 물론이고 입조차 제대로 열지 못하는 모습은 웃음거리를 넘어 비겁하기만 하다.

이에 비하면 영국 작가 앤디 멀리건의 '트래쉬(Trash)'(한국에서는 2011년 '안녕, 베할라'로 출간)는 비록 소설이라도 답답한 마음을 시원스레 풀어주는 이야기다. 브라질 쓰레기 마을로 알려진 베할라 지역에서 세 명의 아이들의 눈을 통해 부패한 정치 현실을 조명하고 또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것을 세상에 폭로하여 주저하고 있던 어른들의 혁명적인 저항을 일깨운다는 내용이다. 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과 아이들을 잔혹하게 고문하는 내용 때문에 출간과 동시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부분이 없진 않다. 설령 아이들의 모험은 그렇다 해도, 사실 브라질의 부패한 정치와 슬럼가의 모습은 결코 허구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시티 오브 갓(2002)'에서 부패한 정치 현실을 충분히 엿볼 수 있도록 표현된 바 있기 때문이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은 '버려진 도시'를 비유하는 제목의 영화에서 부패한 정치가 사회에 미치는 충격적이고 끔찍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2015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야외상영으로 결정되었고, 일반극장에서 5월 개봉 예정인 '트래쉬'는 앞서 말한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러브 액추얼리'로 유명한 리처드 커티스가 각본을 쓰고, 감독은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빌리 엘리어트', '디 아워스'로 잘 알려진 스티븐 달드리다. 이미 세간의 화제가 된 책이고, 각본을 맡은 사람과 감독의 능력 또한 검증되었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높은 관심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정치인의 비리가 담긴 장부와 부정으로 축적한 돈이 숨겨진 곳을 알려주는 각종 단서들이 들어 있는 지갑을 두고 이야기는 전개된다. 정치적인 혁명을 기대하고 정치인의 금고에서 돈과 장부를 훔쳐 은밀한 곳에 숨겨놓은 지갑의 주인은 이미 경찰의 고문으로 숨진 상태인데, 이 지갑은 우연히 쓰레기를 뒤지며 생계를 유지하는 가르도의 손에 들어간다. 돈 이외에 다른 내용물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경찰이 지갑의 행방을 찾으러 몰려오고 또 현상금을 제시하는 것을 지켜본 가르도는 라파엘과 함께 스스로 지갑 속의 비밀을 알아내기로 한다. 여기에 하수구에서 거주하는 가브리엘이 참여하여 세 아이들의 모험은 시작된다. 지갑의 행방을 찾아 세 아이들을 쫓는 경찰과 그들을 피해 다니며 비밀을 풀어내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시종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한다.

왜 이런 위험한 일을 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아이들은 "옳은 일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데, 이 말을 들었을 때 마치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옳은 줄 알고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메시지로 들렸기 때문이다. 마치 육신을 입고 온 아기 예수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사실 가르도의 모험을 돕는 두 아이들의 이름이 천사 이름과 동일한 것은 이 일에 대한 기독교적인 관심과 무관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옳은 일을 실천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할 것이라는 메시지로 들리기도 한다.

제목은 브라질 쓰레기 지역 베할라를 염두에 둔 것이나, 사실 쓰레기 같은 정치현실을 풍자한다. 높은 산이 되어 버린 쓰레기 더미에서 쓸 만한 물건들을 찾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부패한 정치 현실에서 그나마 생명을 연명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과 결코 다르지 않다. 과연 이런 쓰레기 더미에서 희망은 있는 것일까? 영화를 보면서 아무런 거부감 없이 부패한 대한민국 정치 현실을 연상할 수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만일 희망이 있다면, 옳은 일에 대한 용기, 곧 정의를 실현하려는 용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옳은 일인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했다. 세 아이들의 목숨을 건 모험은 단순한 모험이 아니었다. 그것은 말씀이 현실이 되게 한 순종이었다.

최성수 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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