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설교는 벅차다

어버이날 설교는 벅차다

[ 목양칼럼 ] 목양칼럼

장동학 목사
2015년 05월 04일(월) 17:42

나는 아버지가 3살 때 돌아가셔서 '아버지'라는 말을 어린 시절에 써 본적이 없다. 초등학교 시절에 가정환경 조사서라는 것이 있었다. 담임선생님이 반 전체 학생들을 모아 놓고 집에 텔레비전이나 전화 자동차 등이 있는 지 조사 하는 것이었다. 나는 대부분 손을 들지 못했다. 가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꼭 손을 드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 없는 사람?"이었다.

고학년이 되니까 창피한 마음이 들어서 손을 들지 않았다. 그러면 선생님이 나중에 꼭 교무실로 불렀다. "아버지 안 계시지? 그런데 왜 손을 안 들었어?" 그러면 나는 이렇게 분명하게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계세요. 성은 하 씨입니다. 하.나.님. 바로 제 아버지세요." 그러면 선생님은 "교회 다니는구나!"라고 하시면서 웃으시면서 보내 주셨다. 그 뒤로 당당하게 나는 아버지를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어머님이 군대 가자마자 훈련소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형제들이 훈련병은 휴가를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내게 알리지 않은채 장례식을 해버렸다. 내게 이별의 기회를 주지 못했다.

그 후 어버이 주일에 설교단에 서는 것은 참으로 내게는 고통스러운 날이 되었다. 어버이에 대한 설교를 할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내게 전부였다. 특히 신앙은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것이었다. 어머니의 극성으로 나는 8일 만에 새벽기도회를 참석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새벽기도에 목숨을 건 분이셨다. 나는 겨울에는 추워서 새벽기도회 가기 싫어했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일찍 일어나 쪼그리고 앉으셔서 내 신발을 아궁이 옆에서 데워 주셨다. 그 어머니를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게다가 중학교 다닐 때 까지 정말 어머니가 밥을 싫어하시는 줄 알았다. 한 창 먹고 싶어하던 내게 배 부르다고 하시면서 늘 어머니의 밥을 덜어 주셨다. 한번은 밖에서 놀다가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러 집으로 뛰어 들어 갔다. 그러다 어머니가 죽 같은 것에 빨간 김치 국물을 부어서 드시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당시에는 각자 집에서 도배를 했고 밀가루로 풀을 쑤어서 놔두었다. 그런데 도배 풀을 드시고 계신 현장을 어린 내가 본 것이다. 큰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니 어버이 주일에 정상적인 설교를 할 수가 없었다.

한번은 어버이 주일에 "부모를 공경하나? 공격하나?"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한 적이 있다. 예배 후에 제 손을 꼭 잡고 말씀하신 한 권사님의 말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목사님!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공격만 당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젠 나이가 들어 쉬고 싶은데 손주를 맡겨놓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녀에게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우리를 공격합니다. 부모가 봉입니다. 몸이나 마음이 너무 힘이 듭니다." 이 소리를 듣고 나니 이래저래 어버이 주일 설교는 내게는 벅차다.

장동학 목사 / 하늘꿈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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