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적인 세계관과 성경적인 세계관

동화적인 세계관과 성경적인 세계관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sscc1963@daum.net
2015년 04월 01일(수) 11:07

 

   
 
신데렐라(감독: 케네스 브래너, 로맨스/멜로, 전체, 2015)

동화는 친숙하면서도 현대인의 사고 관습에 비춰볼 때 다소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캐릭터의 차이는 물론이고 세계관도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박물관에 묻어둘 수 없고, 현대인에게 유용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버려서는 더욱 안된다. 전 세계적으로 흩어져 있는 민담과 동화들을 분석한 결과로 알 수 있듯이, 동화는 인류의 보편적인 정서를 환기하기 때문이다. 세대를 이어가며 끊임없이 회자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다만 현대인의 공감을 얻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영화적으로 누구보다 이 일에 앞장 선 영화사는 디즈니다. 의미를 해치지 않은 범위에서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각색하고 또 다양한 동화들을 혼합하여 새로운 동화로 거듭나게 했다. 고전적인 동화들을 애니메이션으로 혹은 실사영화의 형태로 제작하면서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재현해 왔다. 2014년에 개봉된 실사 영화였던 '말레피센트'(로버트 스트롬버그) 역시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 나오는 악녀에 포인트를 맞춰 해석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관행과 달리 '신데렐라'는 몇 군데의 각색을 제외하고 고전 이야기에 충실한 영화다. 독일 버전(그림 형제가 수집한 동화)과 프랑스 버전(샤를 페로가 역은 동화집) 가운데서 후자를 원작으로 해서 만들었는데, 이야기는 용기와 친절(마음의 따뜻함)을 삶의 중심 가치로 여기며 사는 엘라가 불의한 환경에서 신데렐라, 곧 하녀로 살면서도 가치와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가 결국엔 대모 요정의 도움으로 악의 손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왕과 결혼하여 행복한 삶을 산다는 이야기다. 확고한 가치관에 근거한 삶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진다는 교훈이다.
 
내용이며 주제가 잘 알려진 영화이니만큼 이번에는 영화를 미디어적인 측면에서 주목해보자. 고전적인 이야기를 오늘 우리에게 전해주는 미디어로서 '신데렐라'를 생각해볼 때, 이 영화에서 주목할 일은 신데렐라를 지켜주는 대모 요정에 의해 구연된 것이다. '신데렐라' 이야기는 그녀에 의해 짜여진 스토리텔링이면서, 그녀 자신을 이야기 안에서 드러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모 요정은 엄마가 죽어가는 순간에 엘라에게 환기한 존재다. 달리 말해서 그녀는 말함으로써 세계를 구성하고, 그녀 자신이 등장하여 잘못된 세계를 수정해나가고, 결국 선의 가치가 실현되는 아름다운 세계를 구성한다. 곧 세계 안에서 자신의 뜻을 실현해나가며, 그 세계를 권선징악이 관철되는 구조가 되도록 한다. 우리는 신데렐라의 이야기를 대모 요정이 전해주는 이야기로 들으며, 또한 이야기를 통해 그녀의 세계관을 접한다. 그러므로 거의 신적인 기표로 작용하는 그녀가 구체적으로 누구를(혹은 무엇을) 기의하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대모 요정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는 종교적인(가톨릭적인) 신앙체계를 전제한다. 이야기에서 그녀는 출현은 구걸하는 거지 모습이었고, 자신에게 우유 한 잔을 대접하는 신데렐라에게 대모 요정으로서 모습을 드러내고 신적인 능력으로 도움을 베푼다. 쉽게 생각해서 약속대로 오신 자로서 마태복음 25장에 도움과 돌봄을 필요로 하는 자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오버랩 된다. 이 부분을 감독이 결코 가볍게 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데, 유리 구두에 맞는 발을 가진 여성을 찾으러 다니는 병사들 속에 왕을 은폐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특별하게 각색하거나 혼합하지 않고도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 까닭은 단지 불의한 환경에서 사는 신데렐라의 꿈을 가시화시켜주는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곧 공주로서 사는 꿈이 아니라 모두에게 필요한 삶의 가치와 신념을 포기하지 않은 것에 대한 보상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현대인들에게 더욱 깊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동화 속에서 그동안 우리가 잊고 살고 또 잃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페미니스트의 공격 대상이었던 신데렐라의 연약하고 수동적인 캐릭터는 크게 변하지 않아 비판을 피할 수 없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무난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변형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아름다운 영상이 돋보이는 이번 작품을 접하면서 필자는 동화의 세계가 지향하는 세계는 어디일까 생각해보았다. 동화는 판타지다. 판타지라고 해도 현실과 전혀 무관한 곳은 아니며, 또한 그렇게 하기 위한 수단도 아니다. 판타지는 현실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세계이고, 더 나아지려는 의지와 욕망이 분출하면서 형성된 세계이며 또한 도구이기도 하다. 동화의 세계는 판타지가 지향하는 여러 세계 가운데 특히 권선징악의 구도가 지배적인 곳이다. 소설의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구조와 달리 동화의 세계는 단순하다. 무지의 상태에서 세계를 아무런 구별 없이 바라보는 순수함은 있어도 선과 악이 결코 섞이지는 않는다.
 
루이스(C. S. Louis)는 기독교인이 되고 난 후에 성경적인 세계관을 동화로 각색하여 '나니아 연대기'를 출판하였다. 영문학자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비록 성경의 교훈이 인간의 도덕과 윤리로 환원될 수는 없다 해도, 성경에는 옳고 그름의 분별이 분명하게 현존하기 때문이다. 중세 문학의 전통을 바탕으로 판타지를 표현한 톨킨(J. R. R. Tolkien)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반지의 제왕'은 선과 악에 관한 한 인간 심리가 아무리 유동적이고 복합적이라 해도 선과 악의 구도로 구성된 세계를 전제한다.
 
성경적인 세계가 항상 동화적이지 않고 또 모든 동화적인 세계가 성경적이라고 볼 순 없어도, 적어도 동화적인 세계는 성경적인 세계의 일부를 반영한다. 특히 선악의 구도에 있어서 그렇다. 이렇게 본다면, 동화의 세계와 성경의 세계관은 결코 동일시해서는 안 되지만, 어느 정도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심해야 할 점은 선악의 구도가 이분법적인 사고로 귀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최성수 목사/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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