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영웅을 기리며 전쟁을 비판하다

전쟁 영웅을 기리며 전쟁을 비판하다

[ 말씀&MOVIE ]

최성수 목사 sscc1963@daum.net
2015년 03월 04일(수) 10:41

아메리칸 스나이퍼(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드라마/전쟁, 청불, 2014)

   
 
과거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전쟁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위해 동일한 전투를 아군과 적군의 시각에서 보는 두 편의 영화를 만든 적이 있다. 2006년에 개봉된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이다. 전쟁에 참여한 개개인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한 것으로 높이 평가받은 두 영화는 각각 미군과 일본군의 시각에서 본 전쟁 드라마로 태평양 전쟁의 이오지마 전투를 다룬다. 미군으로서는 전승을 위한 마지막 고지를 탈환하고, 일본군으로서는 그것을 수호하는 전쟁이었기 때문에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아군만이 아닌 적군의 입장에서도 볼 수 있도록 해 단지 이기고 지는 일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에서 전쟁을 생각하도록 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두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공화당 당원으로서 매우 보수적인 인물로 잘 알려져 있는데도 왜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서도 폭넓은 지지를 받는지를 잘 설명한다. 그의 필모그래피에 소수자를 배려하는 영화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에서 그만큼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이스트우드의 그런 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또한 2014년에 제작되어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이끌어 냈던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감독으로서 이스트우드의 뛰어난 연출 능력을 확인케 하는 작품이다. 시가전을 실감나게 잘 표현했고, 무엇보다 모래폭풍 가운데서 전개되는 전투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영화는 실존 인물이었던 크리스 카일의 전쟁 에세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이라크 전쟁에 네 차례나 자원하여 참전한 저격수로서 전설적인 업적을 남긴 카일을 추모한다. 참전의 필요성을 철저히 조국애와 동료애에서 찾은 카일은 네 차례 파병에서 스나이퍼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미군의 생명을 구하고 또 보호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영화 포스터의 카피 문구에 나와 있듯이, 그는 미국에게는 영웅이며 적군에게는 악마로 통했다. 그가 미국인에게 어떤 의미로 각인되었는지는 엔딩 크레딧과 함께 보여준 추모 영상에서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이스트우드 감독은 카일이 아내가 참전을 말리는 간절한 바람을 등지면서까지 참전을 자원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일종의 카일의 신념 혹은 철학이라고 볼 수 있는데, 카일이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서 들으며 살아온 교훈 때문이었다. 형제와 가족은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영화는 이것의 연장선상에서 카일의 열정적인 조국애와 동료애를 설명한다. 영웅을 기념하는 영화의 특성을 잘 반영하긴 해도 다분히 미국 영웅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영화 곳곳에 이라크 전쟁에 대한 보수적인 견해를 반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전쟁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 흔적은 역력하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전쟁 영웅을 기리는 영화라 해도 이스트우드가 전쟁에 대한 시각마저 보수적인 것은 아니었다. '영웅과 악마'라는 카피 문구에서 이미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미국에서 영웅으로 추대되는 사람은 당연히 이라크 국민에게는 악마로 여겨진다. 동일한 사건을 보는 양편의 시각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이렇게 표현된 것이라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아군을 보호하기 위해 수류탄을 든 아이를 쏘아야 하는 저격수의 갈등과 총을 쏘고 난 후에 겪는 심리적인 고통을 통해 전쟁의 끔찍함을 드러내고, 또한 조국을 지키고 또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자원하여 참전했지만 집으로 돌아온 후에 심리적인 쇼크로 인한 후유증으로 적지 않게 고생해야 했던 크리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죽음 역시 전쟁 상흔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한 전역 군인에 의한 희생이었음을 알려준 것도 전쟁에 대한 그의 비판적인 시각을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전쟁 영웅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업적을 기리면서도 이스트우드 감독은 전쟁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를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와 비슷한 관점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는 2005년에 제작된 '뮌헨'이다. 이 영화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쌍둥이 빌딩 테러 사건의 역사적인 원인을 추적하였다. 다시 말해서 영화는 뮌헨 올림픽에서 발생한 이스라엘 선수들에 대한 테러에 강경한 입장으로 대처한 이스라엘 정부의 보복테러를 다루고 있는데,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쌍둥이 빌딩 테러 사건이 결국 테러와 보복테러로 점철된 과거 역사의 결과가 아니겠는가를 묻고, 부시의 보복 공격이 앞으로 가져올 치명적인 결과를 짐작케 하는 장면들을 연출하였다. 비록 입증되지 않은 인과관계이며 단지 감독 개인의 추측과 가설에 불과한 것이라도 스필버그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테러에 대해 보복 공격을 감행한 부시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였다. 곧 아무리 보복 공격이라 하더라도 보복 차원에서 일어나는 부시의 선제공격은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그것이 인간의 마성을 어떻게 일깨우며 또한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폭로한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통해 이스트우드 감독이 보여주려고 한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한편으로는 전쟁영웅의 희생을 높이 기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을 비판한다. 균형 잡힌 시각과 연출능력으로 거장의 진면목이 제대로 발휘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최성수 목사/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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