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 성서마당 ]

차정식 교수
2015년 02월 10일(화) 15:29

차정식 교수
한일장신대학교

 
이 유명한 비유는 어떤 율법선생과 예수께서 대화하던 중 나온 이야기다. 율법선생은 예수께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에 대해 탐문했고, 예수는 율법에 근거하여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그 기준으로 확인해주었다.

여기서 둘째 질문이 제기되는데 그것은 사랑해야 할 "내 이웃이 누구인가"였다. 이 질문에 예수는 이웃을 추상적 개념으로 정의하지 않고 이 비유를 들려주셨던 것이다. 비유 속에서 강도 만나 죽도록 맞은 사람이 먼저 등장한다. 길을 가던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이 대목에서 이들이 정결법을 의식하여 행여 부정한 시신을 만질까 꺼려했다는 설명이 으레 잇따른다. 그랬다면 그들은 이 불쌍한 사람을 회피한 근거로 율법을 내세워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달랐다. 그는 비록 유대인들에게 부정한 족속으로 인간 이하의 차별을 받아왔지만 율법에 앞서 불쌍한 사람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 있었다. 그는 그 강도 만난 자에게 접근하여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뿐 아니라 여관 주인에게 치료비까지 맡겨 계속 돌봐줄 것을 당부하기까지 하였다.

'참 착한 사람이네'라고 감탄하는 걸로 끝나면 이 비유의 속살을 만지지 못한 채 겉만 훑게 된다. 이 이야기의 서사 구도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또 다른 전복적 이치를 엿볼 수 있다. 유대교의 통상적 인식에 반하여 예수는 당시 밑바닥 인생인 사마리아 사람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이로써 그는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의 신학적 통념이란 게 얼마나 자가당착의 허위의식에 가득 차 있는지 고발하고자 한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서광이 전혀 예기치 않은 변두리의 세계로부터 발원하는 역동적 이치를 간파한 셈이다.

이 비유 끝에 예수는 "누가 네 이웃이다"라는 모범답안 대신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는 구체적인 반문을 던졌고 연이어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단호한 명령을 발하셨다. 이처럼 예수의 신학적 비전은 일상의 구체적인 현장에 터하여 작동하는 사랑의 실천 속에서 빛을 발했다. 관건인즉, 내 자신의 다양한 삶 가운데 이루어지는 세세한 결단이 과연 이 땅에 불쌍하게 방치된 생명을 향해 지극히 친밀한 이웃이 되어주느냐 여부였다.

무한경쟁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한복판에서 절대 다수의 생명이 강도가 우글거리는 변방으로 내몰리며 허우적대고 있다. 밑바닥 인생도, 꽤 성공했다는 인생도, 어린아이에서 어른들까지 불안사회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그 와중에 예수께서 동일한 질문을 우리에게 오늘 던지고 있다. "너는 이들에게 구체적으로 이웃인가?" 또 명령하신다. "이들에게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는 이웃이 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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