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 250km를 가다. '연평도' 주님 주신 평화를 말한다.

휴전선 250km를 가다. '연평도' 주님 주신 평화를 말한다.

[ 포토뉴스 ]

임성국 기자 limsk@pckworld.com
2015년 02월 03일(화) 14:58
   
 

【연평도:임성국 기자】 분단 70주년을 맞이해 기획한 '휴전선 250km를 가다'의 첫 출발은 전쟁과 평화가 공존했던 '역설의 섬' 연평도에서 시작했다. 北의 연평 포격과 천안함 폭침, 세 차례의 대청 및 제1연평해전 등 전쟁 위기가 실제로 남아있는 서해 5도 중 하나인 연평도. 그 작은 섬의 상처 안에 새롭게 싹트는 평화를 그려내고자 지난달 28일, 3일 만에 열린 연평도 뱃길에 올랐다.

#잊을 수 없는 연평도
2010년 11월 17일.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우리 영토를 직접 타격한 북의 도발로 연평도는 불바다가 됐다. 그날의 포격은 잊히지 않았고, 지울 수 없다. 장병 2명과 건설노동자 2명을 포함해 4명이 목숨을 잃었고, 상가와 민가 등 40여 채가 순식간에 화재에 휩싸였다.

5년 전 펼쳐진 그때의 상처를 떠올리며 인천항을 떠난 지 2시간이 지났을까. 소연평도를 거쳐 대연평도가 눈앞에 펼쳐졌다. 작은 섬에 자리 잡은 대포와 진지, 해병대 병사, 철책 너머로 보이는 북한 땅, 망망대해를 지키는 경비함, 남북 분단의 현실과 평화로운 일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지금의 상황이 긴장감을 유발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때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았던 것일까. 떨리는 목소리, 흐르는 눈물로 한 주민이 기자를 맞았다. "한국전쟁 당시 연평도는 북한 해주 사람들이 피난 왔던 조용하고 알려지지 않은 섬이었어. 전쟁 당시에도 상처가 없던 섬이었는데, 정말 믿고 싶지 않은 일이 발생한 거지…"

주민이 반겨준 작은 섬은 숨죽인 듯 고요했다. 고요 속의 외침일까. 연평도 주민들은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일상을 되찾은 모습이다. 당시 포격을 받았던 건물 40여 채는 신축으로 복구됐고, 평화공원, 안보교육장도 들어섰다. 아이들을 위한 초등학교도 새롭게 건축 중이다. 포격으로 얼룩졌던 담벼락들은 청년들이 그린 그림으로 동화책이 됐을 만큼 포격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지난 포격의 외형적 상처는 지워졌을지 몰라다 주민들의 마음속 상흔까지는 지워지지 않은 모양새다.

북한 해주에서 14살 때 연평도로 피난 왔다는 오연옥(78세)씨는 "지금도 큰 소리만 나면 겁이 난다. 평화롭게 잘 살다 죽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자식들 위해서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며 "하지만 포격 이후 연평도 사람들, 평화를 바라보는 인식들이 많이 변했다"고 했다.

   
 

#평화의 새 씨앗 뿌리내려

연평도는 본래 한국전쟁 실향민들이 통일을 기대하며 고향을 가기 위해 잠시 머무르던 외딴 섬이었다. 전쟁 때 부모 잃은 고아들이 머무르던 섬, 평화롭게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던 땅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포격이 있은 지 5년간 연평도는 많은 게 바뀌었다. 주민들의 가치관은 더 큰 변화를 가져왔다. 대결, 갈등과 복수로는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과 인간의 의지, 세상의 방법으로는 평화를 얻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셈이다.

연평도 포격 당시 주민자치위원장이던 최률(60세) 장로는 "포격 후 마을 주민들의 의식이 가장 크게 변했죠. 평화를 지키기 위해 자신 스스로 윤리, 도덕적으로 회복이 필요하다고들 생각한다"며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며 용서할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을 때 연평도를 비롯한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올 것이고, 그 믿음의 씨앗이 작은 섬, 연평도에 다시 한 번 천천히 뿌리 내리고 있다"고 했다.

그런 믿음, 변화를 갈망하는 긍정의 힘 때문일까. 연평도는 평온함 가운데 희망의 기운이 곳곳에서 샘솟고 있었다. 이름조차 생소했던 연평도가 유명세를 타면서 오히려 인구 유입(流入)은 많아졌다. 안보관광객 또한 증가하면서 관광객 걱정도 기후에 불과했다. 정부의 지원으로 새 건물도 증가했고, 다양한 발전계획들이 추진 중이다. 가장 큰 변화는 평화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들이 모이고 더해지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포격 이후 변신한 연평도 '조기파시 탐방로'를 지키는 연평도 골목대장, 신민혁(9세)군은 "무서운 사람도 많고, 차도 많은 서울보다 마음껏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우리 동네가 더 좋다"며 "아저씨도 연평도에서 같이 살자"며 연평도 참 좋은 동네라고 자랑했다. 연평도의 포격은 어른들의 상처일 뿐 천진난만한 민혁이의 웃음에선 연평도 그 자체가 평화로 그려져 있었다.

이 같은 민혁이의 이야기에 최률 장로는 "평화의 땅 연평도가 이제야 제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며 "최근에는 오히려 외부에서 불안을 조장하고, 평화를 위협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다"고 우려했다.

#연평도, 주님 주실 진짜 평화 기대해
"저쪽이 북한이에요. 아마 저기에서 연평도를 향해 포를 쐈을 거에요." 평화공원을 찾은 송중섭 목사(연평교회)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평화공원 끝자락에서 북쪽을 올려보니 황해남도의 해안선과 그 앞의 작은 섬들이 아련하게 보인다.

포격 당일 교회 임직식을 준비 중이던 송중섭 목사는 "교회 임직식 당일에 포격이 시작된 거죠. 저기 북한에서 쏜 포가 교회 바로 옆 동산에도 떨어졌는데 그때를 잊을 수 없다"며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을 되돌아보니 평화는 인간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만이 주신 평화가 진정한 평화임을 깨닫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연평교회 모든 성도는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기업, 삶의 터전을 잘 가꾸는 본분에 충성된 종이 되고자 땀 흘리고 있다. 또 매 주일 북한 땅과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송 목사는 "포격 이후 나태했던 성도들의 신앙의 열정이 회복되었고, 교회도 더 많은 축복을 받았다.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기업을 지켜주시고, 평화를 주신다는 확신도 갖게 됐다"라며 "오히려 연평도는 포격 후 내외형적으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했다.

특히 교회 성도들의 가정이 폭격을 당했을 때 "교회 다닌 사람도 포탄을 맞았다"고 조롱하던 일부 주민들이 포격 후 정부에서 주택 건축을 위한 지원을 시작하자, "포탄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로또'를 맞았다"며 부러워하는 웃지 못할 헤프닝도 발생한 것.

송 목사는 "연평도 포격이 잊혀 가고 있지만 한국교회가 이 땅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모든 성도가 신앙의 본분을 지킬 때 진정한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게 될 줄 믿는다"고 했다.

연평도에서 태어나 한 평생 연평도를 지킨 고영선 장로(77세)는 "한반도가 광복ㆍ분단 70주년을 맞이했죠. 제 나이보다 많아요. 연평도에서 육지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 황해남도 해주를 못 가서 인천을 가야만 육지 땅을 밟을 수 있다"며 "주님의 진짜 평화가 연평도를 통해 저 땅 해주를 덮는 은혜가 넘치길 바란다. 연평도가 포격의 흔적을 극복하고, 주님 주신 평화를 지키는 복음의 전초기지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limsk@pck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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