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삶의 의지를 위한 힘은 어디서 올까?

새로운 삶의 의지를 위한 힘은 어디서 올까?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sscc1963@daum.net
2015년 02월 03일(화) 11:32

   
 
내일을 위한 시간
(감독: 장 피에르ㆍ뤽 다르덴, 드라마, 12세, 2014) 

영화는 한편으로는 그동안 간과했던 현실을 다시 보게 하거나 혹은 새롭게 보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적인 이슈를 화두로 삼아 그것의 의미를 성찰한다. 이렇게 해서 영화는 우리가 그간에 몰랐던 것을 알게 하고 간과했던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해서 삶의 교훈을 얻게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또한 시대정신을 이해하는 데에도 기여한다. 영화가 소통을 위한 매체로 이해되는 까닭이다.
 
'내일을 위한 시간'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을 보여주면서 다시 한 번 우리 노동 현실을 돌아보게 하고 또한 21세기 경제 한파가 세계적인 현상임을 실감케 한다. 계약직 문제를 중심 화두로 삼으면서 직장에서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미생'의 여운이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시기라, '내일을 위한 시간'은 우리 노동 및 정치 현실을 재차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두 영화가 비록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진 않아도, 삶의 자리는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미생'이 캐릭터 보다는 주로 다양한 군상들 사이에서 얽히고 설킨 사건 전개와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내일을 위한 시간'은 캐릭터에 초점을 맞춰 인간의 본질을 성찰한다.
 
특히 '내일을 위한 시간'은 다르덴 형제 감독의 1999년 작 '로제타'의 연장선에서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케 한 이 영화는 신자유주의가 우리 삶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조명했다. 벨기에에서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각인시켰고, 결국 '로제타법'을 제정하게 할 정도로 강력한 영향을 미친 영화다. 이에 비해 '내일을 위한 시간'은 경제 한파의 현실에서 흔히 나타나는 갈등과 냉혹한 노동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돈과 사람, 나와 너, 나와 우리, 아내와 남편 등 여러 관계에서 나타나는 갈등을 감독 특유의 사실적인 영상으로 담아냈다.
 
'내일을 위한 시간'의 원제는 '이틀 낮, 하룻밤(two days, one night)'이다. 영화의 의미와 관련해서 '내일을 위한 시간'으로 번역했다고 한다. 시간적인 표현은 상황의 긴박함을 암시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표출되는 인간의 다양한 반응을 통해 감독이 관심을 갖고 보여주려는 것은 캐릭터 곧 인간의 본질에 반영된 시대정신이다. 질문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시대의 깊은 우울증을 극복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난 사건을 통해 시대정신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의 '4개월, 3주 그리고 2일'과 유사한 구조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황금종려상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제에서 인정을 받은 작품으로, 감독은 이 영화를 매개로 이틀 사이에 일어나는 불법 낙태 시술을 계기로 인간의 탐욕스런 본질을 드러냄으로써 당시 루마니아의 폭력 정치 상황을 폭로하였다.(이하 스포일러 있음)
 
다르덴 형제 감독의 관심이 다만 캐릭터에만 집중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영화는 주인공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 분)가 왜 우울증에 걸렸는지에 대해 철저히 침묵한다. 아마도 그녀가 무기력한 상태임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영화는 심한 우울증으로 몇 달을 휴직한 후 복직하려는 때에 갑자기 해고 소식을 들은 후부터 시작한다. 휴직 기간에 회사는 아무 문제없이 운영되었다고 생각한 사장은 굳이 산드라를 고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장은 직원 한 명을 줄일 수 있으면 대신에 다른 직원들에게 보너스로 1000유로를 주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자본가는 노동자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잘 안다.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미끼로 회사 이익을 창출해내고 또한 노동자들의 연대감을 무너뜨린다. 뜻밖의 보너스를 받을 수 있게 된 다수의 직원들은 동료직원 산드라의 생계나 그간에 함께했던 관계보다 결국 보너스를 선택했다.
 
   
산드라는 회사와의 투쟁 끝에 복직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만 자신 대신 계약직 직원을 내보낼 것이라는 말을 듣고는 과감히 회사를 떠난다.
한편 투표 과정에서 팀장이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 위협적인 발언을 한 사실이 발견되어 재투표를 하게 되었다. 재투표까지 남아 있는 시간은, 제목이 말하듯이, 이틀 낮과 하룻밤이다. 이 기간 동안 산드라는 직원들의 과반수 이상을 자신의 복직에 찬성하도록 설득해야만 했다. 직원들의 집을 일일이 방문하면서 희비가 엇갈리는 다양한 반응을 보아야 했는데, 산드라는 자신의 삶의 의욕 때문에 오히려 동료의 가족 안에 갈등이 일어나고 직원들 사이가 불화하며, 심지어 이혼까지 결심하는 동료가 생기는 것을 겪어야 했다. 복직을 위한 노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본 산드라의 마음고생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설득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살을 시도할 정도였다. 더 이상 삶의 의욕을 가질 수도 또 내비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을 지지해주는 동료 직원에 힘입어 응급처치를 통해 위기를 넘긴 후에 다시금 삶의 의지를 얻은 산드라는 자신의 복직을 위한 노력을 계속 이어간다. 그러나 결국 과반수 이상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장은 산드라가 복직할 뿐만 아니라 또한 모든 직원이 보너스까지 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산드라는 거절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복직 대신 계약직 직원 한 사람을 내보내야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투표함으로써 재계약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을 지지했던 그 사람을 자기의 삶 때문에 버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든 결과를 뒤로하고 새로운 출발을 계획하면서 "난, 행복해"라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은 그간의 우울하고 침울했던 영화 전체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기에 충분했다. 다시 말해 산드라가 깊은 우울증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의 의지를 가질 수 있었던 까닭은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들이 돈보다 사람이나 관계를 더욱 중시하며 자신을 도왔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포기할 수 있는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우울증 상태에서 자신을 포기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미생'과 '내일을 위한 시간'의 공통점이 있다면, 두 작품 모두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조직 혹은 돈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데에서 나옴을 역설하는 것이다.

최성수 목사/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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