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현지인 사역자들의 헌신과 수고

<6> 현지인 사역자들의 헌신과 수고

[ 땅끝에서온편지 ] 땅끝에서온편지

송광옥 선교사
2015년 02월 02일(월) 17:27

마루쿠스 목사와의 20년 동역

선교사는 동료 선교사도 잘 만나야 하지만, 특별히 현지인 사역자를 잘 만나야 한다. 초기 한국교회 성도들이 선교사들을 열심과 특심으로 도왔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음은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엔 선교사들을 이용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선교사들을 통해 이득을 보려는 자들은 지금도 득세한다. 필자가 사역의 열매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열심히 나를 도와 동역하였던 현지인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특별히 현지인 동역자 마루쿠스 목사가 마음에 남는다. 이 목사를 만난 것은 20년 전 이었다. 당시 마루쿠스 전도사는 칼리만탄 '다약' 족속이었다. 가난한 집안이었으나 예수님을 잘 믿는 부모님 밑에서 성장했고 자신이 주의 종이 되겠다고 신학공부 후 자신의 종족이 사는 서부 칼리만탄에서 사역하게 되었다.

현재 서부 칼리만탄은 450만의 인구를 가진 지역이다. 그 당시 기독교 인구는 5% 정도였고, 산간 오지 마을엔 정령숭배자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나는 그때 마루쿠스와 함께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1시간 20분 여를 가는 서부 칼리만탄의 오지 마을을 다니며 교회 개척을 하게 되었다. 현재 서부 칼리만탄은 기독교인이 40%가 되었다. 오래전 마루쿠스의 소원은 두 가지였는데 그중 하나는 "이브 송(필자)의 고향 땅 한국 구경"이었다. 나의 대답은 "기도하라"였다.

   
▲ 서부 칼리만탄 'SETIA Ngabang' 신학교 졸업식에서. 맨 오른쪽이 마루쿠스 목사.
어느 날 공군교회 팀(우기식 목사 인도)이 방문해 소원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마루쿠스 전도사는 "한국 구경이요"라고 즉답했고, 이 소원이 이뤄졌다. 한국에 와서는 매서운 추위(5월 초)를 경험하며 교회와 기도원 방문, 찜질방, 상암월드컵경기장 등을 구경하고 돌아갔다.

몇 년 후 그의 고향에서 군 의원을 선출하게 되었는데, 마루쿠스 목사가 출마를 하게 됐다. 자신의 고향 마을에서 유일하게 대학 졸업장(신학교)을 가진 자였기 때문이었다. 출마 포스터를 만드는데, 한국 월드컵경기장에서 찍은 사진을 프린트했다. 많은 오지 마을 사람들은 마루쿠스 목사의 선거 유세 프린트 보면서 "와! 저 후보 한국에도 갔다 왔데!"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로 군의원에 당선되었다. 그 후 3선 군의원을 지내고 지난해 5월엔 도의원이 되었다. 지금은 'SETIA Ngabang 신학교' 부학장(학장은 필자)을 겸하고 있는데, 정부 지원을 받아와서 학교 안팎으로 아스팔트도 깔아주고, 우물도 파주고, 모자라는 전기도 끌어오고, 특히 학교 건물을 지을 때 정부 지원금을 받아오니 얼마나 좋은가? 물론 당선된 이유는 그가 오지 마을 구석 구석을 돌아보며 마을 주민들과 신뢰를 쌓았기 때문이다.

둘째는 20년 전에 만났을 때 그는 나에게 "이브 송, 유일하게 우리 다약 종족만 교단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때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서 "아! 그래 그럼 네가 만들어라"라고 했고, 그는 "네!"라고 대답했는데, 20년이 지난 작년에 '다약 종족을 위한 교단'이 설립되었다.

필자가 신학교에서 전도와 개척 강의 시간에 개척을 준비(땅, 나무, 강에서 퍼온 모래)하면 교회를 지어주겠다 했고 이 말에 '아멘'한 제자들은 지금도 오지 마을마다 교회를 설립하고 세워 나가고 있다.  특히, 티모르 섬 출신 아스낫 목사를 소개하고 싶다. 그는 신학 전에 고아원에서 봉사를 하다가 신학교 졸업 후 교단에서 서부 칼리만탄으로 사역지를 정해 주었다. 아스낫 전도사는 여성이지만, 용감하게 무교회 지역에 교회를 개척해 나갔다. 원래 노래를 잘하고 학교에서 지휘를 하여 전국대회 상까지 받은 인재였다. 그러나 그는 타(다약) 종족에게 들어가 헌신적으로 사역하였다. 정령숭배를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변화시켜서, 마을에 교회를 세워 나갔다. 서부 칼리만탄 꾸알라 베헤 면에 23개 마을에 교회 건축을 하였는데 그 중에 21개 마을엔 한국교회 성도들의 헌금으로 교회가 세워졌다. 그녀의 수고와 헌신을 통해서 한 개의 면이 예수쟁이 마을로 변화되었다. 또한 선거 때 그 지역 출신 후보(마루크스 목사)를 군의원으로 당선시키는데 공헌했다. 선거 때만 되면 신학교 출신들이 군의원으로 출마를 한다. 이유는 각 정당은 종교권 마다 출마자가 있어야 하고 남녀가 함께 한 팀을 이뤄야 하는데, 특별히 오지 마을 출신 여학생들은 그 지역에서 귀한 대학 졸업생이기에 인기가 높다.  

인도네시아 송광옥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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