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노시스의 영성

케노시스의 영성

[ 주필칼럼 ] 주필칼럼

이홍정 목사
2014년 12월 31일(수) 14:14

 
총회 제99회기 주제 '그리스도인, 복음으로 사는 사람'이 제시한 세 가지 해석학적 실천적 차원은 '복음의 (재)발견, 복음의 삶, 복음의 확산'이다. 이것은 심층적 상호연관성을 지닌 지속가능한 지역교회 성장의 순환의 삼박자로, 개 교회중심의 양적 성장을 위한 전략과 방법과 프로그램에 집착해 왔던 이제까지의 교회성장론의 패러다임을, 복음이 지닌 생명력과 생태적 운동성, 총체성과 온전성이라는 신앙의 존재론적 양태로 변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때 교회성장은 시대적 상황과의 깊은 상관성 속에서 진행된다. 시대적 상황의 변화에 따른 교회의 복음적 사회적 응답이 교회성장환경을 만들어내고, 이것이 성장의 기회와 함께 한계도 노출 시킨다. 오늘 한국교회의 성장환경에 드리워진 가장 어두운 그림자는 바로 한국교회의 존재양태가 소금처럼, 빛처럼, 꽃의 향기처럼, 바람처럼, 선전선동을 넘어서는 복음의 존재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는데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임마누엘의 성육신 사건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바른 길이 '케노시스'(자기비움)요, 교회공동체의 존재론적 양태가 바로 '케노시스'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첫 형상화인 '빈 무덤'은, 영원한 생명력은 자기비움의 과정을 관통한 '텅 빈 충만'을 통해서 비로소 증거된다는 의미를 역사적으로 형상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교단은 제99회 총회 결의를 통하여 교회성장운동지원본부를 설치하고 향후 5년 간 교회성장운동에 진력하기로 하였다. 다음 세대, 청년세대, 장년세대, 노년세대에 따른 세대별 성장전략과 정책을 개발하고, 여기에 지도자영성훈련을 더하여 균형성장과 동반성장, 그러므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어가고자 한다. 이는 교회 내외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증가와 한국사회의 인구학적 변화가 가져오는 한국교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성장의 심박동이 멈추고 이를 인지하지도 못한 채 뇌사상태로 빠져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행하는 심폐소생술에 해당하는 응급행위이다. 성공적인 소생을 위한 '생존의 사슬'은 심폐활동정지 상태를 조속히 인지하고 구조를 요청하는 한편, 인공호흡과 인공순환 등의 기본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심방(심실)세동을 정상조율로 되돌리는 제세동 등의 전문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것인데, 이런 일련의 행위들이 사슬처럼 신속하고 정확하게 서로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같은 '생존의 사슬' 엮기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속에서 '케노시스'의 영성이 펼쳐내는 생명살림의 예술이다.
 
'그리스도인, 복음으로 사는 사람'이라는 주제 아래 펼쳐지는 교회성장운동이 한국교회의 생명력을 소생시키는 '생존의 사슬'이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복음으로 사는 사람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케노시스'를 살아내는 존재다. 교회성장운동의 과정과 방법론이 케노시스적이여야 하며, 이 운동에 참여하는 교회지도자들이 '케노시스'의 영성을 실천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러할 때 교회성장운동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생존의 사슬'을 엮는 생명살림의 예술로 승화될 수 있다. 생명체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생명운동은 일상의 삶의 호흡운동이요 신진대사운동으로, 모세혈관에 이르기까지 산소가 공급되고 피돌기가 이어지는 순환운동이다. 이 같은 순환운동의 일상성이 가져올 수 있는 안일함과 순환을 저해하는 독점과 사유화의 유혹을 극복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기를 비워내며 생존의 사슬을 엮어가는 것이 생명살림의 예술이다. '텅 빈 충만'을 선물로 가져오는 케노시스적 교회성장운동은 무엇일까? 케노시스적으로 교회성장운동에 참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케노시스를 지향하는 교회성장운동은 어떤 존재론적 양태와 전략을 가지고 전개되어야 할까? 2015년 신년 벽두에 던지는 교회성장운동에 대한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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