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유목회(三由牧會)'에 대한 소고

'삼유목회(三由牧會)'에 대한 소고

[ 목양칼럼 ] 목양칼럼

유석균 목사
2014년 12월 30일(화) 16:27

목회라는 필드에서 늘 두 가지 문제로 고민해 왔다. 하나는 그것이 유용하냐(유용성)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효과적(효율성)이냐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유효성'의 문제다. 그것 때문에 고민도 했고 기도도 하게 된다. 그러나 근간에는 고민이 하나 더 늘었다. 그것은 '유덕성(有德性)'이다. 그것은 덕스러움인가 하는 것이다.

인간이 발전하고 싶다는 것은 어떻게 하면 효율성을 좀 더 높일 수 있을 것인가 이었다. 최소의 것으로 최대의 것을 산출해 낼 때 효율성은 높아지기 때문이다. 먼 거리를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더 빨리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결과 비행기와 자동차를 발명하고, 고속도로, 고속철로를 개설하였다. 그리고 그만큼 효율성이 높아졌다. 지금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과감하게 투자하고 그 결과 앞 다투어 신제품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이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여 목회의 효율성을 높이려고 했다. 많은 답답함이 해소되었고 성과도 높았다. 다음으로는 유용성에 대한 고민이다. 이것은 사용 가능의 여부를 묻는 질문이다.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고 대단한 것이라도 실제적으로 사용될 수 없는 것이라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어디든 또는 어떤 계층에서든 어떻게 하면 유용하게 쓰일 수가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하다. 좁은 시골 촌길에는 첨단 성능을 갖춘 고급승용차보다 리어카나 자전거가 안성맞춤이다.

거의 한국인들은 휴대폰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뛰어난 성능을 갖춘 휴대폰을 말이다. 그런데 뛰어난 그 효율적 성능을 활용하지 못하고 겨우 전화를 걸고 받는 정도로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단다. 머리를 싸매고 연구하여 계발하여 내어 놓은 뛰어난 효율성의 혜택을 누리지 않으면서 비싼 기술 값은 지불하고 있는 격이다. 어떻게 보면 효율성을 창출해 내는 자나 그것을 유용하고 있는 자 모두 피해자라 할 수 있다.

목회도 마찬가지다. 멋진 시스템을 갖추고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많은 변화도 가져왔고 결과도 좋았다. 그런데 화려한 것은 없지만 그저 묵묵히 믿음의 삶을 살아온 순수한 신앙인들의 소외된다. 그들은 어떤 시스템에 적응하거나 새로운 프로그램을 소화할 만한 여유나 능력이 없다. 그러나 교회를 지키는 저변의 힘은 저들에게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도 정말 목회가 힘들고 어려울 때 격려해준 이들은 유능한 어떤 이들이 아닌 오히려 저들이었다. 효율성을 우선하는 곳에서는 앞선 것은 있으나 갈등과 소란도 많다. 구성요소들은 뛰어나고 유능한데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큼직한 사건 사고들이 줄지어 일어나고 있다. 목회에서는 효율성 못지않게 또 다른 중요한 것이 있다. 답답함과 능력에는 뒤떨어짐이 있을지라도 유용성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목회자가 우후죽순 격으로 쏟아져 나온다. 교회도 다들 효율성 가치를 노리고 화려한 스펙을 가진 인물들을 찾는다. 그런 것이 없는 소명된 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유덕성이다. 그래서 임지가 없어 갈 곳 없는 목회자들을 부교역자로 모셔왔다.

사람이 방언을 하고, 천사의 말을 하고, 많은 지식, 열심, 능력을 갖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성경은 말한다. 효율성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것 못지않게 유용성을 인정하고 유덕성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효율적인 가치를 살리되 반드시 유용성을 생각하고 그것도 일회성이 아닌 영원성을 가진 효율성과 유용성을 아우를 수 있는 사랑을 근본으로 하는 유덕성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유용성, 유효성, 유덕성이 있는 '삼유목회(三由牧會)'를 생각해 본다. 일류도 못되고 이류도 아닌 '삼유' 말이다.

유석균 목사 / 병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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