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시선, 사람의 시선

주님의 시선, 사람의 시선

[ 4인4색칼럼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4년 12월 09일(화) 17:33

조현진
작가ㆍ
높은뜻정의교회

 

 
필자는 스물 두 살 때 첫 번째 장편소설 '쌔드 이미테이션'을 발표하면서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이 책은 강원도 철원의 GOP에서 보초근무를 서면서 틈틈이 써 두었던 것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미숙했고, 불완전한 그래서 부끄러운 작품인 이 책은 '완벽한 형에 대한 동생의 질투'를 다루었다.

이제 고백하자면 여기에서 완벽한 형은 전지전능한 창조자를 상징하였고, 동생은 창조자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모조품 즉, 이미테이션을 의미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청년시절의 나는 '그럼 나는 진짜가 아닌 겨우 모조품이라는 건가?'라고 해석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줄거리는 슬픈 모조품인 동생은 형을 죽이려고 노력하면서, 모조품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자아를 찾으려는 노력이었다. 물론 결국은 실패하지만.

그리고 20년 후, 마흔 세 살에 나는 '시선'이라는 소설을 썼다. 이 책은 이스말르라는 가상의 국가에서 피랍된 선교팀에 대한 이야기였다. 서울의 대형교회에서 단기선교를 떠난 팀원들과 현지 선교사가 분리주의 이슬람교도들에 피랍된 후, 그들이 구출 될 때까지 선교사, 목사, 선교대원들, 이슬람교도들, 한국의 정부와 교회, 매스컴과 인터넷에서 보여지는 소란을 800여 매의 원고지에 나는 풀어내 보았다. 선교 팀이라는 포장 속에 감추어져 있던 각자들의 민 낯을 들추어 낸 후, 우리가 정말 집중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나는 소설을 통해 던져보았다. 감사하게도 이장호 감독님이 영화로까지 만들어 주신 이 소설을 통해 나와 당신이 발견하기를 희망했던 것은 나의 시선, 타인의 시선이 아닌 바로 '하나님의 시선'이었다. 가식과 진실, 기독교와 이슬람 그리고 순교와 배교라는 갈등의 상황으로 이어지는 이 소란을 내가 아닌 그 분은 어떻게 보실까? 내 시선에서 중요한 문제라고 여겨지던 고민과 갈등이 과연 주님의 시선에서도 중요한 것일까를 소설을 쓰는 내내 나는 자문했었다. '시선'의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풀려난 선교대원들이 돌아온 인천공항이 무대이다. 게이트를 열고 그들이 나왔을 때, 공항에는 이들의 생환을 환영하는 기독교인들과 이들을 조롱하는 반기독교 인파들로 나뉘어져 있다. 그 뿐 아니라, 선교대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성경에 칼을 꽃는 배교의 행위를 한 주인공 구 목사를 향해 어깨에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띠를 맨 어떤 이는 계란을 집어 던지기도 한다. 이 아수라장 속에서 주인공은 어느 쪽으로 걸어가야 할지를 망설이면서 소설은 끝난다. 그가 어디로 걸어 갔을까? 나는 안다. 그는 하나님이 예비하셨고, 이끄시는 방향으로 걸었을 것이다.

20년 전의 나처럼 "왜 내가 당신의 모조품입니까?"라고 항변을 해도, 근래에 "하나님 도대체 이 나라, 이 교회를 어찌해야 하나요?"라고 투덜거려도 결국 그것은 나의 시선의 문제일지 모른다. 하나님의 시선은 더 큰 비전과 긴 호흡으로 결국 우리를 안전한 물가로 이끄실 것이다. 요즘 필립 얀시가 말 했던 한 문장이 자꾸 떠오른다. "주님이 우리를 더 사랑하게도, 덜 사랑하게도 할 수 없다"라고. 그러게 말이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나를 보고 이웃을 봐야 하는데, 자꾸 내 시선으로 하나님을 독해하려고 든다. 그러지 말자. 내 시선이 아닌, 주님의 시선으로 문제를 보고 해결하고자 노력하겠다고 고백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크리스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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