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청지기가 칭찬받은 이유

불의한 청지기가 칭찬받은 이유

[ 성서마당 ] 평신도 성서마당

차정식 교수
2014년 12월 08일(월) 19:03

한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이 들려 주인은 그를 추궁하며 해고하기로 작정했다. 청지기는 이 통보를 듣고 해고 이후의 생계가 걱정이다. 그래서 떠올린 묘안이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찾아가 그 채무증서의 빚을 대폭 탕감해줌으로써 그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었다. 주인의 채권을 주인 몰래 일개 청지기가 함부로 처분하니 사기이고 문서를 불법으로 변경하니 공문서 위조에 해당하는 중죄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주인은 놀랍게도 이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했다. 그가 처한 곤경 속에서 지혜롭게 처신했다는 것이 그 표면상의 이유다.

이 비유는 신약성서에서 가장 난해한 본문으로 알려져 있다. 해석상의 난점은 주인이 이 청지기의 불의함을 알고도 어떻게 그의 그런 기만적 행동을 칭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학자들은 그간 다양한 돌파구를 모색해왔다. 주인이 칭찬한 게 청지기가 긴박한 상황에 민첩하게 대응한 전략적 행동이지 그 불의함 자체는 아니었다는 해석이 나왔고, 주인이 칭찬한 것이 아니라 본래 냉소적으로 비난한 것이라는 반어법적인 해석도 있었다. 근래에는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제기된 전복적 해석이 주목을 받았다. 비유 속의 주인은 부재지주로 그동안 소작농들을 착취하여 불의한 방식으로 재산을 축적했는데 이 청지기의 도발적인 저항 행동으로 비로소 경제정의가 실현되었다는 해석이 그것이다. 그런가 하면 '수치-명예'를 중시한 당대 로마사회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이 청지기가 그 도발적 행동을 통해 역설적으로 주인의 명예를 높여주었기 때문에 그 진가를 알고 주인이 칭찬했다고도 보았다.

그러나 이 모든 해석들의 '일리'에도 불구하고 이 비유의 해석상 초점은 제자교육의 연장선상에서 규명되어야 한다. 필자는 이 비유의 핵심 메시지가 '생존 지향적 지혜'에 있다고 해석했다. 구약성서와 고대 유대교의 지혜신학적 전통에서는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는 현실주의적 감각과 함께 자신의 떡을 물 위에 던지거나 일곱 또는 여덟 사람에게 나눠주면 재앙의 날 보응이 있으리라는 생존 지향적 조언이 중시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제자들이 이리 앞의 양처럼 마냥 순진하고 취약한 상태에서 아무런 보람 없이 어리석은 희생물이 되길 예수께서는 원치 않으셨다. 적극적인 투자와 도전적 모험, 생존 지향적 처신을 통해 제자다운 삶의 꼴을 갖추어 살길 그는 오히려 원하셨다. 오늘날 기독교 신앙은 더러 '무모한 순진함'과 동격인 양 취급된다. 그러나 이 비유에 투사된 예수의 제자도는 '순진이여, 안녕!'을 선포한다. 하나님 나라마저 폭력에 의해 굴절되는 세태 속에서 비둘기 같은 순결함만으로는 우리 앞의 숱한 현실적 난제를 헤쳐 나갈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차정식 교수 / 한일장신대학교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