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아서 산다는 것

속아서 산다는 것

[ 목양칼럼 ] 목양칼럼

곽충환 목사
2014년 11월 10일(월) 16:31

어느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라며 자기를 소개했다. 30년도 훌쩍 넘긴 세월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자기도 교회를 다니며, 어느 교회의 중직이라고 했다. 친구인 내가 목사라서 자랑스럽다며, 동창 아무개도 교회 다니고 누구는 장로라며 제가 알만한 친구들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의심은 되었으나 앞뒤 말이 잘 맞았다. 자기는 사업을 하다 부도를 맞았고, 지금은 택시운전을 한다고 했다. 이제 곧 인천에서 서울로 이사 오려고 하는데 그리되면 우리교회로 나오겠다고 아내와 합의했단다. 목사는 늘 그 대목만 나오면 언제나 감동한다.

한결 가까워진 마음에 자식들 이야기까지 무르익을 무렵, 어려운 부탁이 있다며 운을 띄웠다. 부담되면 없었던 이야기로 해달라고 했다. 자기 아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돈이 없어 퇴원을 못한다며 조금만 빌려달라고 했다.

약간은 망설였으나 기꺼이 얼마를 주었다. 교회에 나올 예정이라는데…. 그래도 몰라 집 전화와 핸드폰 번호를 받았다. 그가 떠난 먼발치에서 전화를 돌렸다. 둘 다 없는 번호였다. 물론 졸업생 앨범에도 그가 말한 이름이 없었다.

그렇게 속았다. 교회를 나가고 있는 그를 보았지만 쫓아 가지 않았다. 나와 내 주변에 대해 연구한 값은 된다고 생각했다. 목사가 똑똑하여 속지 않은 것보다 어수룩하여 믿어주었다는 것 또한 위로거리가 되었다. 언젠가 또 만날 날이 있겠지 하며 잊었다. 

그리고 2년쯤 지났다. 부교역자실에 갔더니 부목사들이 상기된 모습으로 방금 어느 분이 다녀갔다고 했다. 그 분의 사연이 너무 절절하여 그냥 있을 수 없었다며 한 영혼을 향한 간절한 관심을 이야기했다.

요지인즉, 찾아온 사람이 자기는 장로라고 했단다. 아내는 신학을 해서 전도사였는데, 집을 나간 상태이고 우리 동네 근처에 있다고 하여 왔으나 못 찾았단다. 딸이 있는 울산까지 가야하는데 가진 돈은 얼마고, 얼마가 부족하니 도와 달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부목사와 전도사가 가진 돈을 털어 정녕 도와주었다. 그리고 정말 그 장로님이 안됐다며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인상착의를 물었다. '앞니가 빠지고, 머리는 조금 벗겨지고, 키는 자그마한 사람아니냐'고 했더니 '맞다'고 했다. 어떻게 아냐고 되물었다.

2년 전 바로 그 사람이 다시 온 것이다. 그리고 또 우리 부교역자들도 깜박 속아 정말 아깝지 않게 작은 소자라고 생각하여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부교역자들이 허탈해 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참 다행입니다. 그래도 속을 만큼 믿어주는 마음이 있어 소망스럽습니다. 닳고 닳은 마음보다 그렇게 속는 것이 오히려 교역자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놈(?)이 또 다시 훗날 찾아올까? 돈 갚으러 온다고는 했지만…. 일단 만나면 사진부터 찍어야겠다. 주변 교회에 알려서 같은 피해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니 말이다.

곽충환 목사 / 나눔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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