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무섭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무섭다

[ 4인4색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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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04일(화) 14:00

윤학원
인천시립합창단 예술감독

 
세상이 너무 무서워졌다. 모 합창대제전에서 영어로 부른 곡 중에 찬송가 선율이 나왔다는 이유로 지휘자가 사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고 시에서는 그것을 수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타종교 관계자들이 연주회장에 들어와 그런 곡을 발견하려는 목적으로 앉아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전에도 두 사람의 지휘자가 앙콜로 부른 성가 때문에 문제가 돼 경고를 받기도 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합창이라는 것 자체가 성가에서부터 내려온 음악의 부류이다. 성가의 시작은 가톨릭의 그레고리안 첸트에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더 오래전으로 올라간다면 다윗의 시편도 있고 모세와 미리암의 찬양도 있지만 근세에 와서 이야기를 한다면 합창의 주류는 가톨릭의 예배의식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제는 이 모든 성가들이 클래식 합창에 교과서가 되어있다. 합창 음악회에서 성가를 빼놓고 큰 연주를 구성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성가는 합창음악의 근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합창 연주회에서 성가를 빼고 노래하라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시립 무용단은 바라춤이나 나비춤, 법고춤 등 수 많은 불교의 의전으로부터 나온 춤의 종류들을 공연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인들이 공연을 관람하고 종교적인 이유로 중간에 퇴장을 하거나 시에 항의하는 일은 없다. 그것이 예술적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할 때는 열심히 박수도 치고 심지어 기립박수도 친다.

공연이 음악적으로 좋을 때, 무용적으로 좋을 때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예술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든 타종교의 음악과 춤을 예술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 그것을 무대에 올린 사람의 삶까지 송두리째 앗아간다면 그것이 과연 그 종교의 정신과 맞는지 의문이다. 오랜 훈련과 노력을 통해 청중들에게 아름다운 선율과 화음을 선사해 온 음악인으로서 이 세상이, 종교인들이 참 무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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