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가야할 본향은 하늘나라

먼 훗날 가야할 본향은 하늘나라

[ 4인4색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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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7일(금) 14:56

이창연 장로
소망교회

요즘같이 햇살 가득한 날이면 마치 까마득히 먼 옛날 떠나온 고향처럼 마음 속에 문득 그리움이 솟구친다. 단풍이 더 진해지면 정신 산만할지도 모른다. 타박타박 걷는 것이, 그냥 걷는 것이 딱 좋을 때는 바로 지금이다. 이런 날은 늘씬하게 올라간 나무 사이로 그물처럼 총총한 나뭇잎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이 영롱하다. 하늘은 청명하고 나무는 아직 초록 일색이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가을 풍경은 이제 노오란 수채물감을 덧 바른 듯 애잔하다. 그 숲엔 지금 눈처럼 흰 등골나물 꽃과 보라색 꼬리 풀꽃이 쑥부쟁이나 소국 같은 국화류의 잔 꽃들과 함께 지천일 것이다. 겁이 많아 살아 남은자의 부끄러움으로 이 계절은 필자를 늘 고개 숙이게 한다.

젊은 꽃송이 뚝뚝 떨어져 내린 그 붉은 서울의 봄 이후엔 늘 슬프기만 하다.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린 그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핏빛 날을 세운 그들이 무서워 필자도 현장을 피해 다녔던 겁보의 부끄러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봄에 일어났던 사건 때문에 후유증은 가을이 왔을 때에야 몸에 발열이 일어났다. '아, 그때 그렇게 할 걸!' '더 좋은 기회가 있지 않을까' '내 인생에 마이너스가 되면 어쩌지'… 의심과 후회, 머뭇거림으로 지리멸렬해진 삶!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자세로 살아왔던 세월이 후회되기도 한다.

완벽한 기회, 그것은 아무리 기다려도 절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게 된다. 동기, 그런 것은 없어도 된다. 행동을 하면 동기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때문이다. 살아 있음의 눈부신 희열과 삶에 대한 비극적 인식에 새삼 눈뜨는 계절이기도하다.

'사람이 외로운 것은 귀가 있기 때문이지만, 그 외로움이 아니라면 그대에게 가지 못하리'라고 노래한 유강희 시인의 시는 별 표시 해놓고 외웠다가 머플러를 날리며 산길을 걸을 때 읊조리고 싶은 시다.

필자가 늘 그리던 고향의 풍경은 이랬다. 해 설핏한 시간 텅 빈 하늘 빈 감나무 끝의 까치집, 너른 마당과 그 너머의 채마밭, 장독대 옆에 핀 채송화, 맨드라미, 봉숭아, 분꽃, 토란잎 아래 징그럽게 큰 두꺼비, 핏빛 벼슬의 장(숫)닭, 휘휘 감기던 무더위와 모깃불, 동구 밖 멀리까지 길고 길게 이어지던 상여행렬과 가랑가랑 멀어지던 소리꾼의 구슬픈 만가, 낮잠에서 일어난 옆집 아저씨가 게으른 하품을 하며 냇가에 나가 투망을 던져 퍼덕대던 붕어를 퍼 올리던 곳, 새끼 우렁이 돌확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개울가, 유년시절 필자가 살던 고향은 물 맑은 득량만과 순천만을 앞바다로 두고 있는데다가 다시 섬진강 상류를 이루는 수향(水鄕)이다. 그곳은 예로부터 물빛이 맑고 깨끗하기로 이름난 곳이다. 옛날에는 물줄기 따라 천렵도 성했고 여름이면 강변에 가마솥을 걸고 벅수로 메기며 붕어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던 곳, 그곳이 고향이다.

유년의 시절 그것이 부러워 "나도 빨리 어른이 되어야지"했다. 무서리 내리던 들판마다 감나무가 홍시를 달고 있는 곳… 그렇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그런 고향을 잃어버리고 아스팔트 위의 사람들이 되었다. 그 고향은 이제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고 찾아가 보아도 다시 만날 수가 없다. 혹시 가장 최근에 '북받치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횡경막 아래 어디쯤에서 먼 세월을 건너와 목울대로 눈시울로 휘몰아치는 그리운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필자는 최근에 남행열차를 타 본적이 있다. 고향으로 가는 남행은 그래도 차창으로 짙은 녹음을 볼 수 있어서 옛날을 추억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 녹음이 다시 햇빛에 반짝이는 푸른빛으로 이어지기 까지는 산과 들이 몇 번씩이나 숨고 나타나기를 거듭했다. 고향은 어머니 젖가슴 같은 포근함과 따뜻함을 준다. 우리는 땅에 있지만 하늘의 소속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고향이 포근하고 따뜻해도 주님이 계시는 하늘나라만큼 되겠는가. 머지않아 우리의 사명을 마치면 가야할 본향은 더욱 포근하고 따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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