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특집/ 2.목사와 장로의 소통

10월 특집/ 2.목사와 장로의 소통

[ 특집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4년 10월 17일(금) 14:45

고시영 목사
부활교회ㆍ전 총회 정책개발연구위원장

 
지금 한국교회는 저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앞으로의 전망도 매우 부정적이다. 한국교회가 저성장으로 진입한 원인은 다양하다. 그런데 그 중 하나가 목사와 장로의 갈등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 문제를 공론화하여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목사와 장로의 갈등은 그 원인이 다양하다. 교권갈등일 수도 있고, 상호보완의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일방적 관계에서 오는 갈등일 수도 있다. 인격과 신앙의 문제일 수도 있고, 역할에 대한 오해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상호소통이 잘 되지 않은 데 있다.

소통이란 대화를 통해 서로 그 입장을 이해하려는 행동이다. 소통이 잘 되면 서로 상대의 생각이나 감정에 공감할 수가 있다. 인간적이고 영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목사와 장로가 소통을 잘하게 되면 서로의 이해관계가 잘 조정된다. 모든 인간관계는 이해관계이다. 이기심은 본성이다. 목사도, 장로도 인간이기 때문에 이기적인 본성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러므로 목사와 장로는 필연적으로 이해관계로 묶여 있다. 소통이 잘 되면 이런 이해관계를 잘 조정할 수가 있다. 공존의 길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목사와 장로가 서로 잘 소통이 되면 결과적으로 교회 성장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소통하려면 먼저 목사는 장로의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 소통의 첫 걸음은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다. 장로는 교인들에 의해서 선출된 사람들이다. 대표성이 있다. 장로는 대부분의 경우 신앙심이 있다. 그들은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해 왔다. 쉬운 일이 아니다. 장로로 선출되기 위해 나름대로 다양한 봉사를 하기도 했고, 교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도 했다. 순수여부를 떠나 그러한 수고를 목사들은 인정해야 한다. 목사들은 장로의 협력을 얻어야 목회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주님도 제자들과 여인들의 도움을 받아서 선교활동을 했다. 혼자는 아무 것도 못 한다. 그러므로 목사는 장로야말로 자신과 운명을 같이할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장로는 협력자지 경쟁자가 아니다. 상대를 경쟁자로 생각하면 상대와의 소통은 정치 공학적이 된다. 순수와 정직은 사라지고 자신도 모르게 술수가 생긴다. 매우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다.

역시 장로도 목사의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 목회의 최종적 책임자는 목사에게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교회의 문제는 그 원인이 목사에게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최종 책임은 목사에게 귀결된다. 그러기에 목사의 책임은 막중하다. 모든 조직은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는 사람에게 권한과 권위가 부여된다. 이는 만고의 조직 원리이다. 그래서 장로는 목사의 권한과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권한과 권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모든 문제에 대해 목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이는 모순이다. 장로는 목사의 전문성을 인정해야 한다. 장로의 신앙이 목사의 신앙보다 더 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성에 관한한 목사는 장로보다 한 걸음 앞서 있다. 목회 20년 정도면, 교인 수에 관계없이 목사의 전문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기에 장로는 목회에 대해서 목사에게 다양한 조언이나 견제는 할 수 있어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장로는 목사가 특별히 영적으로 선택된 사람임을 인정해야 한다. 장로도 선택받은 직책이다. 그러나 목사는 설교와 성례, 축도, 교인의 신앙 지도 등 특별한 일을 위해 선택된 사람이다. 목사와 장로는 다 하나님과 교인들에게 선택받은 사람들이지만 그 역할은 다르다. 이는 차별이 아니라 차이이다. 장로는 목사가 직업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목사는 목회를 통해 생존하고 자녀들을 양육한다. 목사의 생존권을 인정해야 한다.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위는 범죄이다. 장로는 목사에게 축복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목사가 이 축복권을 남용, 오용하면 목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그러므로 장로는 정직하고 진실하며 영성이 뛰어난 목사를 존중해야 한다.

그렇다면 목사와 장로가 잘 소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서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목사는 장로 입장에서, 장로는 목사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대화를 하는 것이다. 상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소통의 첫 단계는 상호 이해이다. 둘째는 소리 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목사와 장로 사이는 협력 관계이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경쟁관계가 될 수 있다. 그러기에 서로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하기가 어렵다. 존중해서 말을 아끼는 경우도 있고, 오해가 될까 말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적대 관계가 되면 더욱 말을 하지 않게 된다. 목사와 장로 사이는 가까운 사이요, 협력 관계지만 서로 어렵기에 충분한 대화가 이루어지기가 어려운 관계이다. 그래서 소리 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최고의 경청은 침묵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셋째, 서로 솔직하고 정직해야 한다. 서로 정직하고 솔직하지 못하면 불신하게 되고 결국 멀어진다. 서로 정치적인 언어를 사용하다보면 언젠가는 거리가 멀어지고 결국 파탄으로 치닫게 된다. 넷째, 목사와 장로는 공존의 관계임을 명심하여 서로 조금씩 양보하려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설득, 의견제시 등을 하다가 일치가 어려우면 서로 양보해야 한다. 서로 자존심을 지켜 주어야 한다. 서로 이기려고 해서는 안 된다. 타협은 패배가 아니다. 공존의 지혜이다. 서로의 자존심을 지켜 주는 승리이다. 다섯째, 인간적 교류가 있어야 한다. 목사, 장로 이전에 인간임을 명심해야 한다. 목사와 장로는 그 역할이 다르고 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서로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하면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 인간관계의 기본은 주는 것이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목사와 장로는 서로에게 줄 것이 많다. 마지막으로 목사와 장로는 심판받는 직책임을 알고 의무적이라도 공존의 길을 가야 한다는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목사와 장로가 소통에 실패할 수 있다. 그래도 적이 되면 안 된다. 목사와 장로가 적이 되면 하나님이 가장 슬퍼하시고, 그 다음 교인들이 불안해하며, 결국 교회는 멸망의 길로 접어든다. 현대는 한번 교회가 파탄나면 회복할 기회가 없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목사와 장로는 하나님과 교인들에게 심판을 받는다. 치욕이다.

개혁교회의 특징은 문자 그대로 개혁이다. 교단 장기발전연구위원회 위원장과, 정책개발연구위원회 위원장으로서의 경험을 종합해 보면 목사와 장로의 대립구조는 앞으로 격화될 전망이다. 매우 염려스럽다. 대타협이 필요하다. 소통을 하면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교인들은 근본적인 해결방법으로 위임목사제도 폐지, 장로 단임제를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목사는 10년에 한 번씩 신임투표를 하고, 장로는 7년 단임으로 그 임기를 정하자는 의견이다. 계속 목사와 장로가 대립되면 교인들의 주장이 수면 위로 올라 올 것이다. 교인들을 저항 세력으로 만들면 안 된다. 만약 교인들을 저항 세력으로 만들면 그들은 교회를 떠날 것이고, 변종 교회들이 많이 생겨날 것이며, 재정도 어려워져 결국 교회는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목사와 장로가 싸우는 것을 슬퍼하신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