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성장과 청년 (4)지도력 개발

교회 성장과 청년 (4)지도력 개발

[ 특집 ]

박기철 목사
2014년 07월 25일(금) 13:26

'배려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박기철 목사
총회 회록서기ㆍ분당제일교회

오늘 날의 시대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가치관이 대세를 이루는, 오직 이기기 위해서는 남을 배려하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사회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세상을 섬기는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에서조차 이러한 이기주의가 팽배하여 교인들 사이에 갈등으로 교회들이 분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한 결과로 사회가 오히려 교회를 걱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도 일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 가운데에서 교회와 교인들의 배려심 회복은 급히 이루어져야 할 과제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픈 사람의 곁에 함께 있으며 함께 울어주는 위로자로서 존경받았던 배려의 사람 바나바의 일화는 현대의 교회들에게 배려의 지도력을 가르쳐준다. 극심한 핍박과 위협으로 자신의 몸 하나 운신하기도 버거웠던 초대교회의 상황에서 바나바의 배려의 지도력을 통하여 현대의 교회들이 치유되기를 소망한다.

먼저 '배려'의 사전적 의미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쓰는 것'으로 풀이 된다. 급해 보이는 사람에게 자신의 앞자리를 내줄 수 있는 마음을 '양보'라고 한다면, 공공장소에서 남에게 방해될 짓을 안 하고 머물다가 나올 때에는 다음 사람을 위해 깨끗이 정리해 놓고 오는 것이 바로 '배려'이다. 양보는 타인을 위하여 내가 손해를 보는 것인 반면, 배려는 희생이라고 할 것도 없이 상식에 따른 마음 씀씀이로 타인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다.

배려를 받아 본 사람은 그 때 기분을 알기 때문에 물질과 시간에 손해가 날 수 있지만 상대방을 위해 양보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 배려가 익숙해지면 양보까지 전진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선비는 길을 가다가도 돌부리가 있으면 남이 다칠세라 치워놓고 가는 것을 당연시 했고, 급한 사람을 위하여 길가에 화장실을 만들고 개방하는 것은 옛 부자들의 덕목이었다. 이처럼 섬기고 나누며 사는 배려가 생활 속에 배어 있었기에 그들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초대교회 성장의 모델이 되었던 바나바는 어떠한 배려의 삶을 살았을까?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행 9:26)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섭게 교회를 핍박하던 청년 사울이 어느 날 예수님을 만났다면서 사도들과 사귐을 원했으나 예루살렘 교회는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비록 박해자에서 전도자로 변화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그를 의심해 교회의 내부사정을 파악하기 위한 위장전술로 곡해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스데반을 죽이던 현장에 증인으로 참석할 정도로 기독교를 증오하던 사람이 바로 사울이었다. 그런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가 되었다니 누가 그것을 믿어주겠는가?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동부 지중해에 위치한 구브로섬 출신으로 레위지파 후손인 바나바가 등장한다. 그는 약한 자를 배려하고 슬픈 사람들을 위로하며 양보하는 덕행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는 참으로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바나바를 정이 많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바나바', 즉 권위자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에게는 사람의 진실성을 볼 수 있는 영적인 안목과 남의 형편을 잘 살펴서 적절한 도움을 주는 분별력이 있었다. 사람을 대할 때에는 편견으로 치우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는 순수성과 배려심도 있었다. 바나바는 사울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를 적극적으로 변호했다.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행 9:27) 바나바는 청년 사울의 신원 보증인이 돼주었다. 만약 바나바가 없었다면 사울은 무명의 전도자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200km 이상 떨어진 다소에 있었던 사울을 찾아가서 자신이 개척한 안디옥교회로 청빙하여 함께 사역을 했고, 이러한 바나바로 인해 사울은 유럽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었으며, 성경의 많은 부분을 기록하는 등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인 사도 바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성경은 약자를 돌보시고 지켜주시고 배려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토지가 없거나 농사를 짓지 못하는 약자들을 위하여 추수할 때 곡식 전부를 베지 말고 밭모퉁이의 곡식은 남겨두게 하셨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남겨진 이삭을 주워 갈 수 있도록 약자를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몸으로 낮은 세상에 보내셨다. 또한 이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계실 때 그늘진 곳에서 소외된 약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그들을 배려하셨으며 제자들에게 역시 늘 배려하라고 가르치셨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배려에 익숙해져야 되는 이유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향한 배려가 없이 자기중심적으로만 산다면 그는 아직 미성숙한 신앙인에 불과한 것이다. 바나바는 배려의 사람이다. 바나바는 예수님을 닮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바나바의 배려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바르게 깨달은 영성에 그 뿌리가 있다.

남을 배려하는 리더십으로 오늘의 위기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모두가 상대적 박탈감으로 또한 빈곤감으로 지쳐 있는 시대이다. 기댈만한 사람이 그리워지고 힘겨운 인생의 무게 때문에 마음마저 힘들어 하는 때에 진정한 위안을 줄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이 바로 배려의 지도력을 지닌 사람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았고 배려를 받은 사람들이다. 이제는 우리가 배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주님의 마음으로 감싸주고 격려하고 세워주어야 한다. 참된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참된 사랑을 할 수 있듯이, 섬김의 에너지원이 되는 배려는 배려를 받아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특별히 교회의 청년들이 사회에서 배려를 실천하는 섬김의 지도력 모델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청년들은 다양한 영성훈련과 프로그램들을 통해 사랑과 섬김을 경험하고 훈련받아야 한다. 그래서 바나바가 보여 주었던 배려의 지도력을 스스로 개발해 나가야 한다. 마치 제자의 발을 씻기셨던 예수님처럼 말이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면 모두가 행복질 것이고,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있게 된다.

배려는 양심적인 책임의식과 박애적인 사랑의 속성이다. 배려는 사람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위대한 힘이다. 영성적 삶을 실천한 헨리 나우엔(Henri Nouwen)의 권면에 따르면 "진정한 친구는 절망과 혼란에 빠져있을 때 조용히 함께 있어주고, 슬픔과 사별의 시간을 함께하며, 애써 알려고 하거나 치료해 주려고 하지 않고, 무력한 현실을 함께 직시한다"고 했다.

감사와 나눔과 섬김이 담긴 배려의 지도력 개발은 건강한 영성을 위한 출발점이다. 배려의 지도력으로 사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다. 이것은 가치 있게 사는 인생이며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다. 이 시대는 도움이 필요한 약한 자를 배려하던 바나바와 같은 배려의 지도력을 갈망하고 있다.

오늘 날의 한국교회는 바울과 같은 인물을 키워내야 하는 시대적 요청을 받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청년 바나바가 필요한 상황이다. 바나바와 같은 인물을 통하여 세상을 변화시키고, 오늘의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고 진정한 영적 부흥과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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