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트와 마찬가지로 틸리히 역시 히틀러의 나치스 운동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1932년 4월 13일 틸리히는 종교사회주의 운동을 한 것과 유대인 학생들을 도우면서 반체제 행위를 한 혐의로 교수직에서 쫓겨났고 그의 책들은 불온 문서로 불태워졌다. 바로 이 때 미국 뉴욕 유니온신학교에서 틸리히를 철학부 교수로 초빙하겠다는 제의를 해왔다. 처음에 틸리히는 그의 나라를 떠나야 한다는 점에서 이 제의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으나 독일에서 그의 교수직이 영구 박탈되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이 초청을 수락했다. 춥고 비 오는 10월 말의 어느 아침 학자로서의 경력을 확고히 하고 있던 47세의 폴 틸리히는 가족과 함께 문화와 언어가 완전히 다른 땅을 향해  떠났고 그 날 이후 그의 삶은 미국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정든 조국을 떠나 낯선 땅으로 가면서 그는 창세기 12 장의 아브라함의 기사를 깊이 묵상하였다고 한다. "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12:1-2)

미국에 도착한 틸리히는 영어와 문화적 차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그의 학문 세계는 신대륙의 문화가 주는 도전으로 인해 더 깊어갔다. 1948년부터 1963년 사이 틸리히는 그의 신학 및 철학 사상을 연이어 책으로 출판해 내는 사상의 황금기를 맞았다. 1948년에 그의 책'프로테스탄트 시대'가 영어로 번역되어 나왔고 첫 설교집인 '흔들리는 터전'이 출판되었다.

1951년에는 그의 주저인 '조직신학' 제1권이, 1952년에는 그의 두 번째 설교집인 '새로운 존재'가 나왔다. 또한 이 해에 케글리와 브레탈이 공동 편집한'폴 틸리히의 신학'이 출판되면서 틸리히는 미국의 학계에서 죤 듀이, 앨프래드 화이트헤드, 버트란트 러셀 같은 수준의 사상적 거인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1957년에 조직신학 2권인 '실존과 그리스도', 1963년에 그의 조직신학 3권인 '생명과 성령 및 역사와 하나님의 나라'가 나옴으로써 3권으로 된 그의 조직신학 체계는 완결되었다.

1955년 틸리히는 65세의 연령으로 유니온신학교에서 정년 은퇴하고 하버드대학의 특임교수가 되어 1962년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1962년 여름 하버드대학에서 은퇴한 뒤 시카고대학에서 가르쳤고 그 마지막 해에는 종교학자인 멀치아 엘리야데와 함께 종교사에 관한 세미나를 이끌었다.

비록 학자로서 최고의 존경과 영광을 누린 틸리히였지만 그 역시 질병과 노쇠를 피할 수는 없었다. 1964년 1월부터 6월 사이에 그는 폐렴과 기관지염으로 여러 차례 입원하였으며 이로 인해 강의 요청들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1965년 10월 11일 저녁 틸리히는 사람들 앞에 그의 마지막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시카고대학 신학부가 주관한 강연회에서 "조직 신학자에게 있어서 종교사의 의미"라는 최후의 강연을 했다. 다음 날 아침 심장에 충격이 왔고 갑자기 위독하게 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1965년 10월 22일 이 땅에서의 삶을 다 마치고 별세하였다.

한 시간이 못 되어 틸리히의 죽음은 주요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 신문들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그에 관한 기사는 뉴욕타임스 전면에 사진과 함께 게재되었으며 독일과 영국 그리고 미국 각처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예배가 거행되었다. 그의 시신은 화장된 후 이스트 햄프턴에 매장되었다가 그의 미망인의 희망 따라 1966년 5월 29일 성령강림절 주일에 인디아나 주 뉴하모니 마을의 폴 틸리히 공원으로 옮겨져 그의 영원한 장지가 되었다. 그의 추도사를 실은 뉴욕타임스 사설은 틸리히를 평하기를 "그는 인간 삶의 전 분야를 자신의 신학의 주제로 삼았던 … 현대의 모든 신학자와 구별되는 예외적 거인"이라고 하면서 틸리히의 공헌은 회의의 시대에 기독교의 진리를 성공적으로 해석해 준 데 있다고 칭송하였다.　

박만 교수 /부산장신대ㆍ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