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그리스도의 수난'

다시 보는 '그리스도의 수난'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sscc1963@hanmail.net
2014년 04월 08일(화) 09:48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감독: 멜 깁슨, 드라마, 15세, 2004)

   
 

그동안 예수영화(예수의 생애 혹은 일부를 다룬 영화)들의 경우 고난의 장면이 있지만 그렇게 사실적이지 않았다. 메시아 예언으로 읽히고 있는 이사야 53장의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는 말씀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보일 것인지는 성도들의 신앙적인 상상력에 맡겨질 수밖에 없어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04년 영화배우 멜 깁슨이 만든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마지막 3일에 집중하는데, 플래시 백 장면을 통해 생애의 다른 부분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와 땀을 흘리며 기도하면서 사탄의 유혹과 싸우는 장면에서부터 무덤에서 부활하는 순간까지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가장 큰 공헌은 주관적인 경험에 제한될 수밖에 없는 고통의 경험을 모두가 공유할 수 있게 해준 것이었다. 짐승처럼 질질 끌려 다니고,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얻어맞아 한 쪽 눈이 일그러졌으며, 살이 떨어져 나가는 채찍질을 당하고, 손을 부들부들 떠는 모습은 예수의 신성한 이미지를 여지없이 깨뜨리는 것이어서 매우 충격적이었다.  멜 깁슨 감독은 고난의 현실을 실감나게 표현함으로써 분명 이런 충격을 기대했음이 틀림없다.
그리스도의 고난에만 집중한 것이 감독의 의도이긴 했지만 오히려 수많은 비판을 일깨우는 이유이기도 했다. 가학적이라는 심리학적인 비판부터 반유대주의적이라는 인종주의적인 비판, 그리고 가톨릭 편향적인 성경 이해에 근거했다는 점이 대표적인 종교적 비판들이다. 특히 십자가를 지고 가는 동안 마리아를 계속 클로즈업함으로써 마리아에 대한 가톨릭 신앙을 의도적으로 노출시켰으며, 특히 예수의 시신을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은 미켈란젤로의 작품 '피에타'를 연출한 것이었다.
 
앞서 언급했지만, 멜 깁슨의 의도는 신화처럼 여겨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현대인들에게 감각적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것을 고난의 탈신화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고난을 감상적으로만 이해하거나 신화로 여겼던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고난을 공감하는 데에 많은 기여를 했다.
필자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처음과 마지막 장면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와 땀을 흘리며 기도했다는 기록을 감독은 사탄의 유혹과 싸우는 것으로 표현했다. 이것이 첫 장면이다. 이것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 예수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장면을 연출했는데, 이런 불필요한 상상력이 불러일으킨 반감을 염두에 둔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멜 깁슨 감독은 창세기 3장 15절의 말씀에 근거해서 예수가 유혹의 마지막 순간에 뱀의 머리를 짓밟고 일어서도록 함으로써 그리스도가 받게 되는 고난이 이미 승리한 자의 모습으로 비치게 했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장면에서는 골고다 언덕에 화면을 집중시키면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의 눈물이 지진을 일으키는 장면을 연출했다. 골고다 사건은 단지 인간 예수의 고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픔 그 자체였음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읽어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영화와 관련해서 크게 두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하나는 고난 장면의 의미이다. 고난을 알게 됨으로써 오는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기대한 것이었을까? 고난의 정도에 따라 그리스도의 사역이 더욱 빛난다고 생각한 것인가? 아니면 고난에 대한 현대인들의 감상적인 이해를 비판하는 것일까? 영화가 집중하는 고난의 현실성은 그리스도의 수난이 주는 메시지를 충실하게 전해주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고난과 관련해서 바흐의 마태 수난곡과 비교해보면 조금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흐는 주제를 밝히는 첫 부분 합창에서 십자가에 달려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하는데, 여기서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양과 같은 모습을 하며 인내하는 모습과 그리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그를 주목하는 인간들의 죄이다. 바흐는 고난의 의미가 결코 고통으로 끝나지 않는 것과, 그 중심에는 우리들의 죄가 있음을 환기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바흐는 루터의 십자가 신학을 음악적으로 훌륭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결코 그 정도에 따라 생각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사역이 나에게 일어나도록 순종했을 때, 나를 통해 그 뜻이 나타나도록 순종했을 때 겪는 아픔과 고통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고통의 정도와 고난을 비례관계로만 보지 않는다면, 고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관심을 환기하기에 충분한 영화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고난을 통해 그 빛을 발하게 되는데, 고난이 없는 기독교는 저급해지기 때문이다.

최성수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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