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장애인 가로막는 '기독교'

르포, 장애인 가로막는 '기독교'

[ 기획 ] <연중기획>이웃의 눈물

박성흠 기자 jobin@pckworld.com
2014년 03월 07일(금) 11:35

휠체어 타고 대중교통 이용하는 출근길

당연히 수많은 장애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을 했고 각오도 했지만 '이정도일줄이야…' 하는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해서는 나름 알고 있다고 가졌던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고 무식해도 이렇게 무식한 일이 없었다. 동행했던 휠체어의 주인은 "비장애인은 잘 모르는게 당연하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건냈지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식함에 고개를 떨구었다.

   
▲ 전동휠체어를 타는 이계윤목사의 아침 출근길.
'눈물'은 장애인의 아침 출근길이 궁금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러시아워의 틈바구니에서 출근해야 하는 장애인들은 어떤 눈물을 삼키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본교단 이계윤 목사(전국장애아동보육제공기관협의회 고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서울시 용산구 이촌동에서 출발해 종로5가 백주년기념관까지 오는 길을 동행하기로 했다.

아침 출근길은 신체 건강한 비장애인이 견디기에도 버거울 정도다. 특히나 서울지하철 1호선은 출근길에 사람 많기로 이미 유명하지 않던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지옥철'을 타야 하는 이 목사와 동행한다는 중압감이 몰려왔다.

   
▲ 지하철에서 휠체어는 엘리베이터가 지상과의 유일한 통로다. 휠체어장애인들이 표지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절실하다.
아침 8시 이 목사의 집에서 이촌역까지 오는 길은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등교하는 학생들과 부딪히지 않아야 했고, 편도1차선의 도로를 건너거나 역주행해야 했지만 이면도로에 자동차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불법주차되어 있는 자동차를 피하고 스마트폰을 보며 걸어오는 학생들과 부딪히지 않으려 애쓰는 정도는 앞으로 마주할 어려움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 휠체어가 지하철 장애인용 개찰구를 통과하고 있다.
이촌역에 도착한 휠체어는 역무원을 호출하고 장애인 리프트를 탔다. "리프트는 기본적으로 불안전해요. 조금만 삐끗해도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아요". 이 목사는 가까운 일본만 해도 간이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서 안전을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프트 이용중 추락사하는 사고가 보고되면서 리프트의 적재중량도 250kg에서 300kg으로 늘렸지만 불안하기는 매한가지라는 것이다.

이촌역에서 이 목사는 장애인휠체어가 탈 수 있도록 된 전용칸 대신 일반석에서 기다린다. 휠체어 전용칸에 타게 되면 엘리베이터까지 멀기 때문이다. 열차가 서고 문이 열렸다. 승강장과 열차의 벌어진 틈을 보는 순간 아찔했지만 이 목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전동휠체어를 몰아 열차 안으로 들어섰다. 중앙선은 승객이 많지 않아 객차 안에서 전동휠체어가 자리잡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중앙선을 이용한 이 목사는 용산역에서 지하철 1호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그가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눈치없는 젊은 비장애인이 먼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차지한다. 나무랄 수도 없고 '저 멀쩡한 두 다리를 가지고 왜 엘리베이터를 타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지만 생면부지의 승객이 그런 마음까지 읽어낼 리가 없다.

   
▲ 비장애인에게 아무렇지도 않지만 장애인에게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은 때로 치명적이다.
"중앙선 용산역에 내리면 1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잖아요. 그런데 이게 딱 한 대 밖에 없어요. 고장이 나기도 하고 점검을 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우린 방법이 없어요.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어요, 건너가야 하잖아요"

시간이 꽤 지났지만 여전히 1호선 열차엔 출근길답게 사람으로 가득차 있다. 하릴없이 한 대를 그냥 보내고 두번째 열차에는 우격다짐으로 휠체어를 밀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휠체어를 맞이하는 승객들은 가뜩이나 비좁은 열차에 들어오는 휠체어가 반가울리 없겠지만 조금씩 움직여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으리라.

종로5가 역에서 이계윤 목사는 엘리베이터를 찾지 못해 당황해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 하는 수 없이 무작정 오른쪽 방향으로 정하고 휠체어를 움직이는데 역무원인듯 보이는 사람이 "반대로 가셔야 해요"라며 거든다. 비장애인의 눈높이에 맞춰 부착된 표지판은 장애인에게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무용지물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천장에 매달려 있어야 해요. 그래야 어디서든 보고 찾아갈 수 있어요" 그가 말했다.

종로5가 지상으로 나와서는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백주년기념관으로 가기 위해 왕복 8차선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데 횡단보도는 종로4가에나 있었다. 다시 광장시장 보도블럭을 따라 횡단보도로 가는 길은 험하다. "이런 도로를 척추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건 엄청난 고통이에요. 울퉁불퉁 충격을 온몸으로 그대로 받아내야 하잖아요" 그가 또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기독교연합회관에 도달했지만 현관출입문까지는 도저히 접근할 수가 없다. 보도턱이 높아 인도로 올라설 수 없는데다 턱이 없는 곳이라곤 차량입구와 출구가 유일한데 출구로는 위험을 무릅쓴 역주행을 감행해야 하고 입구로는 차단기 밑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관리인으로 보이는 관계자는 "구청에다 할 이야기를 왜 우리한테 하느냐"고 오히려 역정이다.

   
▲ 휠체어장애인은 한국기독교연합회관으로 들어가려면 머리를 숙여야 한다?
연합회관 출입시도를 포기하고 백주년기념관으로 휠체어를 몰았다. 현관에 설치된 램프를 따라 출입문까지는 도달했지만 입구에서 여닫이문에 부딪힌 휠체어는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없이는 한 발도 들여놓을 수 없었다. 로비를 따라 들어간 장애인 화장실은 출입구가 좁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으니 있으나 마나다. 현관을 통과해 엘리베이터까지 가는 로비에는 점자 유도블록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시각장애인들에게 불편을 줄 것으로 염려됐다.

   
▲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의 미닫이 출입문은 휠체어장애인의 출입을 '봉쇄'하는 장해물이다.
4층에 입주한 사회봉사부 사무실로 들어가기로 했다. 양쪽 여닫이로 되어 있는 출입문은 한 쪽 철문만이 열려있어 역시 휠체어는 진입할 수 없다. 도움을 요청해 양쪽 철문을 열고서야 비로소 입성이 가능했다.

비장애인이었다면 30~40분이면 족할 거리를 1시간 넘겨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지하철과 지상 횡단보도의 위치와 같은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야 교회가 당장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두 건물은 장애인 접근권에 대한 심각한 고민과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기 총회가 정한 주제는 '그리스도인,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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