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신승 목사, 제2의 선교지 태국에 정착

염신승 목사, 제2의 선교지 태국에 정착

[ 땅끝에서온편지 ]

염신승 선교사
2014년 03월 03일(월) 11:26

   
▲ 파얍대학교 멕길버리 신학대 2008년 졸업식 장면.
 2004년 2월 3일 태국 방콕에 도착했다. 한국은 아직도 겨울이었는데 태국은 여름이었다. 사역은 치앙마이에 있는 파얍대학교 신학대학의 전임교수로 이미 결정된 상태였다. 그러나 "태국어를 공부하는 데는 방콕이 좋다"는 선임 조준형 선교사님의 조언에 따라 1년 정도 방콕에 거주하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곧바로 언어공부를 시작했다. 사역을 위한 첫 준비는 역시 현지어 공부다. 스페인어는 그리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고 배웠었던 것 같은데 태국어는 왜 이리 어려운지. 우선 암기력이 둔해졌다. 여러차례 시행착오 끝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이듬 해 언어 시험에는 합격 했다.

 방콕에 있는 동안 여러 한인교회들과 현지인 교회들을 다니며 예배를 드렸다. 또 현지인들과의 예배를 통해 태국인들의 찬양과 설교, 활동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마침 안식년으로 떠나시는 선교사님의 사역지에 공백이 생겨 방콕과 코랏의 교회를 교차로 방문하며 현지교회를 섬길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모양으로 준비하시고 훈련시키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해 12월 치앙마이로 이사를 했다. 한 나라 안이지만 거의 700km의 먼 길이었다. 치앙마이는 한국으로 치면 평양과 닮았다. 그래서 평양신학교 격인 태국기독교(CCT)의 신학교가 아직도 1,000만 도시인 방콕에 있지 않고 30만 정도의 치앙마이에 있다. 뿐만 아니라 총회 소속의 전도부, 여전도회, 청년국, 교육국, 기독학교 재단, 연금재단, 목회자 훈련원, 심지어 에이즈센터, 성경통신센터까지 작은 도시 치앙마이에 그대로 남아있다.

 파얍대학교는 1889년에 작은 신학교로 시작해 지금은 13개 단과대학에 영어로 수업하는 국제과정과 대학원 등을 두루 갖춘 종합대학으로 성장했다. 태국 정부에서는 그동안 사립대학을 허락하지 않다가 1974년 파얍대학교를 태국의 첫번째 사립대학로 승인하기도 했다. 신학대학은 한국의 언더우드 선교사님 격인 맥길버리 선교사님을 기념해 맥길버리 신학대학으로 명명 되었다. 맥길버리 선교사님은 1858년 서른 살에 선교사로 태국에 입국해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태국 북부와 라오스까지 다니시며 신학교와 교회 개척, 병원, 학교 설립의 산파 역할을 감당했다.

 내가 맡았던 첫 강의는 2005년 8월, 영어로 조직신학을 강의하는 것이었다. 낯설기도 하고 처음 맡은 강의라 밤을 새우며 준비했다. 원어민 교수들 사이에서 강의하려니 쉽지 않았다. 태국어로 하는 조직신학 강의는 10월부터 시작됐다. 이제 본격적인 사역이 시작된 셈이었다. 태국의 대학 강의 시간은 90분인데 첫 강의 때는 그 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주중에는 신학교 사역으로 바쁘게 지내면서 주일사역을 위해 기도했다. 그러던 중 선임 선교사님의 주선으로 이곳 태국총회 제3노회를 소개받아 노회 협력 선교사로서 교회 사역을 겸하게 됐다. 집에서 교회까지는 왕복 220~420km 까지 떨어져 있었다. 당시 나는 주일 예배 설교를 했고, 아내는 교회학교 교사, 큰 딸은 바이올린, 작은 딸은 키보드, 막내 아들은 풀룻을 준비해 '주일 팀사역'을 하고 돌아왔다. 이제는 세 아이들이 모두 집을 떠나고 우리 부부 둘만 남았다. 매주일 더운 날씨, 장거리 운전에 사역이 쉽지는 않았지만 게으르고 부족한 저희들을 기다리시는 사랑하는 태국의 영혼들을 생각하면서 지금도 매주일 아침 교회를 향해 길을 떠난다. 할렐루야!

본교단 파송 태국 염신승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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