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3월 3~8일

[가정예배]3월 3~8일

[ 가정예배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4년 02월 25일(화) 17:04

월-실패 위에 피어난 사명의 부활
본문 : 요 21:1~14
찬송 : 456장

1093개의 특허를 얻고 제너럴 일렉트릭을 건립한 토마스 에디슨은 기차실험실에서 사고로 청각장애를 얻게 된다. 하지만, 전기를 빛으로 바꾸고자 하는 그의 열정은 1000번의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실패가 아니라, 나의 공식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은 1000가지 예를 발견한 것 뿐"이라면서 끝내 전구를 발명해 낸다.
 
이 사례를 통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3가지를 질문해 볼 수 있다. 첫째, 1000번의 실패를 겪더라도 꼭 이루고자 하는'하나님께 받은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 둘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해본 적이 있는가? 셋째,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미리 사명을 포기하지는 않았는가? 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성공과 실패를 수없이 겪는다. 과거의 실패에 얽매이면 그것이 올무가 되어 우리의 성장을 방해한다. 그 실패를 통해 얻은 경험을 피드백을 통해 긍정의 자원으로 삼아 '사명의 부활'의 기회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베드로는 3년 반 동안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며 말씀을 배우고 기적의 현장을 체험했다. 몸소 전도여행에 참가하여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기도 하였고,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의 해같이 빛나는 모습을 친히 보기도 했다. 놀라운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보고 만지고 느낀 사람이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았음에도 주님을 끝까지 따르겠다는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군병들에게 잡히시던 밤 베드로는 허망하게도 3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며 뒤돌아서게 된다. 역시 신앙은 '혈과 육'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겨자씨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되기까지, 천국 열쇠를 손에 쥐고도 휘청거리며 실패를 경험한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오늘 디베랴 바닷가에서 예수님을 만나 사명을 회복하고, 오순절 성령강림을 경험한 베드로는 완전히 새사람으로 변한다. 결국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사도로 성장하게 된다.
 
우리는 때때로 실패할 수 있지만, 주님은 그것을 멋지게 승리로 바꾸신다. 우리의 삶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주신 사명 아래서 살아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묻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지금 이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는 줄 믿는다.
 
지금까지의 작은 실패들이 피드백이 되어 오히려 큰 부흥의 역사로 나타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하나님! 저희는 늘 실패하며 고개를 숙이고 자책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피드백을 통해 실패가 성공으로 거듭나는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중호 목사
/수원명성교회


화-복의 통로가 되는 사람
본문 : 창 13:8~18
찬송 : 359장

성도는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복의 통로가 되는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아브라함은 가족 간에 다툼을 피하고 화평의 길을 만들 줄 알았다. 언제나 다툼, 분열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브라함의 종들과 조카 롯의 종들이 날마다 서로 싸우는데, 이유는 그들이 소유한 가축에 비해 거주할 땅이 좁아서였다. 이익을 위하여 서로 갈등할 때, 이를 막는 최고의 방법은 한쪽의 양보이다. 이때 아브라함은 먼저 양보의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좌로 갈지 우로 갈지 선택권을 준다.
 
아브라함의 이 양보가 다툼을 막는 복의 통로가 되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세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분량 차이이기도 하다. 믿음이 큰 사람이 마음그릇도 크다. 결국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크기가 이런 결과를 만드는 능력이 된다. 이제 롯은 요단지역으로 당시 풍요의 대명사로 불리는 애굽 땅과 같은 지역을 선택하고 떠났다.
 
양보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다. 그리고 동서남북 모두를 선택하게 하시고, 아브라함과 후손들에게까지 자자손손 물려주겠다고 말씀하신다. 자기의 이익을 취해 떠나간 롯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는 기록은 없다.이는 양보의 미덕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보여주시는 한 단면이라 하겠다.
 
끝으로 아브라함은 자기를 찾아와서 언약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 비록 양보했기에 좀 열악한 환경에 처했지만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믿기에 제사 곧 예배로 새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눈여겨봐야 할 문구는 '여호와를 위하여'라는 문구이다.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께 올리는 제사는 사람을 위한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제사여야 한다는 것이다. 은혜는 하나님께 합당한 온전한 제사를 드릴 때 임하는 것이다. 예배가 온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것을 말씀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복의 통로가 되는 사람으로 쓰임 받은 것은 가족 간에 다툼이 일어날 상황에서 양보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희생의 고통이 수반되었다. 그때 사람은 몰라줘도 하나님께서 알고 찾아오신다는 것이 성경적인 진리이다. 그리고 그 위로와 은혜에 감사해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를 취할 때, 우리는 어떤 상황, 어떤 경우에도 복의 통로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브라함의 양보와 믿음과 제사의 헌신을 본받아 우리 역시 복의 통로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홍무열 목사
/동대천교회


수-요나의 무관심(1)
본문 : 욘 1:2~3
찬송 : 528장

서머셋 모옴은 '사랑의 비극은 무관심이다'라고 했다. 무관심은 비극을 만들어 낸다. 데니스 웨이딜리교수가 쓴 '위대한 사랑의 씨앗'이라는 책은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분석했다.
 
LOVE, L:Listening 사랑은 먼저 듣는 것이다. O:Over-joyed 기쁨에 넘치는 것이다. V:Valuing이다. 가치를, 상대의 존재를 인정해주게 된다. E:Expressing 사랑은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행동이다. 행동은 무엇인가? 그 사람을 믿어주는 것이다. 의심하기 시작하면 이미 사랑은 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쳐라"고 말씀하셨으나 요나는 무관심했다.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 누워 깊이 잠이 들었다. 배 위에서는 폭풍우가 몰아치고 사람들이 물건을 바다에 던지고 있는데 요나는 무관심하다.
 
요나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가드에서 욥바로 내려갔다. 가드나 욥바는 항구에 위치하고 있다. 요나가 욥바 항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욥바 항구는 요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닥쳐오는 유혹이다. 진리를 따라 사는 것보다 쉬운 길을 택한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길이 아니다. 지옥의 길은 내려가는 길이다. 아마겟돈은 므깃도의 구릉이라는 뜻이다. 므깃도는 골짜기요, 구릉은 그 골짜기의 얕은 언덕이다. 아마겟돈은 악의 세력의 마지막 패배 장소이다. 신앙생활이 점점 나빠지면서 가는 곳이 바로 아마겟돈이다. 믿음이 무엇인가? 믿음은 내가 좋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길을 따라 가는 것이다.
 
요나가 자기 고집을 버리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것이 요나의 존재이유이다. 그렇다면 나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 세상에서 오직 믿음으로 살다가 천국으로 오라고 우리를 세상에 잠시 보내신 것이다. '오직 믿음' 이것이 우리의 존재이유이다.
 
요나서 1장 2절에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쳐라"고 한다. 여기에 급진적 동사가 3번 나온다. '일어나라, 가라, 외쳐라' 이것은 요나 스스로 일어나야 하고 가야 하고 외쳐야 한다. 요나가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인 단어이다.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기도하라, 너희는 나를 믿으라,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은 우리가 거역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님을 기억하자.
 
오늘의 기도
 
우리로 하여금 존재이유를 알게 하시고 나의 고집을 버리고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권용숙 목사
/보성교회


목-두 아들 이야기
본문 : 눅 15:11~32
찬송 : 525장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하루는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나중에 물려받을 유산을 지금 당장 내놓으라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성화에 못이겨 서둘러 유산상속을 마쳤다. 둘째 아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물려받은 유산을 모두 현금으로 바꾸어 먼 타국으로 떠난다. 그리고 먼 나라로 가서 자기 마음대로 욕망이 이끄는 대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았다.
 
16절에 둘째 아들의 삶을 예수님은 '허랑방탕'이라 하셨다. '허랑방탕'이란 헬라어 원어의 뜻은 '구원에 합당하지 않은'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둘째 아들은 구원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산 것이다. 멸망의 길을 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재산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그 땅에 흉년이 들었다. 그렇게 둘째 아들의 화려한 삶은 끝이 난다.
 
가난을 한번도 겪어보지 않은 둘째 아들에게 가난은 혹독했다. 배고픔은 수치심마저 잃게 한다. 그는 돼지 치는 집 머슴으로 들어갔다. 유대인들이 증오하는 직업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우선 살고 봐야 했다. 하지만 집 주인은 먹을 것마저 충분히 주질 않는다. 둘째 아들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그리고 정신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으냐 그런데 나는 여기서 굶어죽는구나 이제라도 아버지에게 돌아가  잘못했다고 빌자."
 
사람은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다. 문제는 '다시 일어나느냐'이다. 둘째 아들은 일어났다. 20절에 "이에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고 했다. 여기서 '일어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나스타스'는 부활을 뜻한다. 둘째 아들은 일어났다. 부활한 것이다. 24절 아버지의 말씀을 보면 이를 좀더 분명히 알 수 있다.
 
아버지는 아낌없는 사랑으로 둘째 아들을 받아주었다. 하지만 큰 아들은 아니다. 그는 불만으로 가득차 아버지에게 화를 낸다. 28절에 '그가 노하여서'에서 '노하여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르기조'의 뜻은 과일 속에 과즙이 꽉 차 오른 상태를 말한다. 그러니까 큰 아들은 오래전부터 그 마음속에 불만을 쌓아 온 것이다. 그렇게 그 안에 꽉 차오른 불만이 마침내 터진 것이다. 29절에 '내가 여러해 아버지를 섬겨'에서 '섬겨'에 해당하는 헬라어 둘류오의 뜻 가운데 '노예가 되다' '종처럼 섬기다'란 뜻이 있다. 큰 아들은 분명 아들인데도 아들이 아닌 종처럼 살면서 아버지에 대해 불만을 쌓아왔던 것이다. 그러니까 진짜 탕자는 둘째 아들이 아니라 큰 아들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각자 자신을 되돌아보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주님, 죄악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구원해주시고 자녀 삼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삶 주님만을 사랑하며 살길 원하오니 도와주시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성철목사
/운암신안교회


금-봉사는 주님처럼
본문 : 눅 4:16~21
찬송 : 430장

3월 2일은 교회력으로는 사순절을 앞둔 산상변모주일이다. 절기로는 경칩을 앞두고 있어, 봄바람 따라 산책을 하다보면 산개구리들의 이른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오늘 말씀에 주님께서는 고향 마을의 회당에서 이사야서 61장의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라는 말씀을 읽으시고,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사실 주님께선 이루어졌다라고 하시지만 여전히 주님의 곁에는, 그리고 지금까지도 우리의 곁에는 기쁨 없이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 몸과 마음이 자유롭지 못한 포로로 살아가는 사람, 보아도 보지 못하는 눈이 먼 사람,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다 억눌려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주님께서는 무엇을 이루셨다는 것일까?
 
복음서에 기록된 주님의 생애를 생각해보면 주님께서는 한 순간도 당신이 힘들여 일하신 결과를 두고 일희일비하지 않으신 것을 발견하게 된다. 주님께서는 그저 당신이 뜻하고 이루고자 하신 바의 길을 따라 당신과 함께하려는 제자들과 함께 웃고 울고 놀고 일한 분이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두고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신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으로 우리에게 온전히 드러났던 것이다. 결국 오늘 말씀에서 주님의 '이루어졌다'는 말씀은 그저 실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주님께서 이사야서에 예언된 메시아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고 결단한 그 순간,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가난하고, 억눌리고, 상처를 입은 채 아픔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것이 될 것이라고 주님은 믿고 나아가신 것이다.
 
3월 2일 주일은 총회가 정한 사회봉사주일이다. 무릇 봉사라는 것은 주님처럼 이웃과 자연을 사랑하려는 그 다짐과 결단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중요한 일이다. 나의 봉사를 통해 어떤 일들이 이루어지고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결과를 바라보는 순간, 봉사는 그 의미가 퇴색하고 만다. 봄볕이 머문 자리에 돋아나는 새싹들은 가을의 열매를 미리 계획하고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생명의 기운을 따라 지금 여기에서 온 힘을 다해 푸른 생명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사회에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묵묵히 자기의 맡은바 소임을 기쁨으로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한 주간이 되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의 곁에 있는 가난하고, 억눌리고, 상처를 입은 채 아픔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의 마음과 손과 발이 함께 움직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진형 목사
/청지기교회


토-지금은 회개하며 기도할 때
본문 : 욜 2:12~17
찬송 : 280장

이 주간 사순절이 시작된다. 참회의 수요일(3월 5일)로부터 시작해서 부활절 전날까지(4월 20일) 평일 40일과 여섯 번의 주일을 합쳐서 46일간이다. 이 기간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다리며,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명상하며 거기에 함께 참여하는 경건훈련을 하는 사순절이다. 교회사적으로 이 날에 사람들은 회개를 상징하는 베옷을 입고 그 위에 재를 뿌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사순절을 맞이해야 할까? 요엘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진정 해야 할 회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회개이다. 본문 12절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며 내게로 돌아오라"하신다. 13절을 보면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신다. 이는 하늘에서 회개의 경종이 울리는 광경이다. 우리는 지금 겸손히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서 스스로 자신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 음성을 낮추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둘째, 기독교 안의 도덕적, 영적 위기는 위험수위에 올라와 있다. 회개는 기독교 안에서 먼저 일어나야 하며, 특히 복음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먼저 있어야 한다. 나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보자. 진정 깨끗한 양심과 마음의 청결이 있는지를. 그리고 진정 진리와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을 각오가 되어 있는지를.
 
셋째, 지금은 기도할 때이다. 오늘 우리의 형편은 영적인 비상사태일 뿐 아니라 이 땅에도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여러가지 비상사태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어찌 우리가 안일하게 낭만적으로만 기도할 수 있겠는가? 울며 통곡하며 매달리는 기도를 할 때이다. 기도함으로 우리들 모두가 하나님의 뜻이 우리들을 통해서 이 땅 위에 이루어지게 된다. 18세기 영국의 목사였던 로오는 '경건한 삶을 위하여'에서 아침 9시의 경건기도에는 겸손의 기도를 하고, 정오인 12시의 경건시간에는 중보의 기도를, 저녁 시간에는 회개의 기도를 하도록 권면한다. 이제 우리는 세상과 다르게 살아야 한다. 겸손과 중보와 순종과 회개의 기도를 매일매일 드리자.
 
예수님의 겸손과 온유로 하루를 시작하자. 하나님의 뜻은 완전한 우리의 순종에 있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에 우리를 쳐서 복종시키자. 참된 회개는 내일을 향한 새로운 출발이 된다.
 
오늘의 기도
 
주여, 마음을 찢어 회개하고 기도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남식 목사
/남원산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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