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더욱 사무치는 고향...가족 생각하며 눈물 참아

비가 오면 더욱 사무치는 고향...가족 생각하며 눈물 참아

[ 기획 ] <연중기획>이웃의 눈물 / 이주민의 눈물/ 1. 이주민의 눈물겨운 삶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4년 02월 17일(월) 16:05
   
▲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는 나라 씨는 언젠가 가족과 함께 살 날을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다.

"한국에 온 후 제일 슬플 때 혹은 제일 우울할 때가 언제예요?"
 
"비가 오면 마음이 좀 우울해져요. 내 나라 캄보디아는 비가 많이 오는 나라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비가 오면 더욱 고향이 그리워져요. 그러다가 가족들 얼굴이 하나 둘 떠오르지요. 우리 가족들 다 함께 살 때 행복했었거든요. 내리는 비 보면 함께 했던 추억들이 하나 둘 떠올라요."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온 지 4년 9개월째인 쏘반 나라 씨(31세). 쏘반 나라 씨는 일산의 한 농원에서 병아리를 부화시켜 업체에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남성인데도 160cm 남짓한 작은 체구의 쏘반 나라 씨는 자기 키 만큼이나 높이 쌓인 플라스틱 선반을 능숙한 솜씨로 트럭에서 내리고 이제 갓 부화된 병아리들을 옮겨 담는다. 하루 종일 병아리를 옮기고, 빈 선반을 닦는 것이 나라 씨의 주 업무다.
 
지난 13일 나라 씨가 일하는 농원을 방문했을 때 나라 씨는 한국인 아저씨들로부터 "바쁜 시간에 기자를 불러들였다"며 핀잔을 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 핀잔을 미안한 듯한 웃음으로 넘기는 나라 씨의 모습에서 한국인 직원과도 이미 좋은 관계를 맺어놓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라 씨의 임금은 시간당 5,210원으로 한달 125만원 정도를 받는다. 5,210원은 나라에서 정한 최저임금. 나라 씨는 이 월급 중 한달에 100만원 이상을 저금해 본국의 가족들에게 송금한다. "일이 힘들긴 하지만 임금에 대한 불만은 없다"는 나라 씨는 "다른 직장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거의 비슷하게 받는다"고 설명한다.
 
나라 씨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좋은 업주를 만나 비인간적인 대우를 당하지도 않고, 기숙사 시설도 좋은 편이다. 심지어는 가족들을 만나고 오라며 벌써 두 차례나 캄보디아에 특별휴가를 보내주기도 했단다.
 
그러나 나라 씨가 한국에 온 후 처음부터 이렇게 안정되고 비교적 마음이 편한 직장에서 일한 것은 아니었다. 나라 씨는 이곳에서 일하기 전 농업 현장에 일꾼을 대는 브로커 회사에 들어가 농업 일을 했었는데 그 일은 노동 강도가 너무 세고 작업환경도 너무 열악해 고생이 이만전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다행히 이직에 성공해 지금의 직장에 안착하게 되어 나라 씨는 나름 만족하고 있다. 현재 정부에서는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일할 동안 이직 횟수를 3번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이 횟수 제한에 걸려 맘에 들지 않거나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이직을 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세계적 인권운동단체인 국제앰네스티도 한국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직 횟수 제한은 인권적 측면에서 폐지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나라 씨는 현재 4년 9개월째 이주노동자로 체류 중이기 때문에 두 달 후 캄보디아로 일시 귀국할 예정이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5년 이상 체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라 씨는 두달 후 캄보디아로 출국한 후 한국어자격시험을 준비해 다시 한국으로 나올 예정이다. 단순히 단순 노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대학에 진학해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한 뒤 관련 분야에 당당히 실력으로 인정받아 보다 좋은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 나라 씨의 꿈이다.
 
힘든 타향살이 속에서 가장 위안이 되는 것은 인터넷과 핸드폰을 통해 가족들과 연락하는 것. 나라 씨는 가족들과 관계가 좋았던 만큼 유독 가족을 그리워한다. 또한, 주말에는 친구들과 함께 인근 일산승리교회 산하 승리다문화비전센터에서 한국어 공부, 이미용교육, 태권도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승리다문화비전센터의 이영주 팀장은 "불교 국가인 캄보디아에서 이미 세례를 받은 기독교인이었다는 나라 씨는  프로그램은 물론,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모범적인 신앙인"이라고 칭찬한다.
 
이제 두 달 후면 너무도 그리운 가족과 만나게 되는 나라 씨는 요즘 마음이 들뜬다. 그러나 나라 씨의 계획을 들어보면 가족들과의 행복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 같다. 나라 씨는 될 수 있는 한 빨리 한국으로 다시 나올 생각을 가지고 있다. 가족의 생계와 동생들의 학업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또 가까운 장래의 어느날 한국의 한 허름한 기숙사 창문에서 나라 씨는 창밖의 비를 보며 그리움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반복되는 그리움의 눈물이 언제 그칠 수 있을지는 나라 씨도 아직 모른다. 그저 언젠가 눈물 마를 날이 올 것이라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행복하게 함께 사는 날이 올 거라고 막연한 믿음을 가지며 스스로를 위안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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