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눈물을 닦아주세요

농부의 눈물을 닦아주세요

[ 기획 ] <연중기획>이웃의 눈물

임성국 기자 limsk@pckworld.com
2014년 02월 07일(금) 16:27

<농부의 눈물③>
생명의 뿌리인 농촌 함께 지켜내야…지금도 손길 묵묵히 기다려

신동리교회 오필승목사, 농부로 마을 이장으로 1인 3역 감당
귀농귀촌지원센터 조직, 체험사업 추진, 시범지구 선정 등 농촌 살리기 앞장
"교회와 농촌 힘 모으면 농부의 눈물은 과거 될 것"

   

【홍성=임성국 기자】 충남 홍성의 한 농부는 오늘도 눈물을 흘린다. 요즘은 이 눈물이 멎을 날이 없다. 논밭에 오곡백과를 보아도 그렇고 TV를 보고, 라디오를 듣다가도 농촌의 암울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냥 눈물이 흐른다.

"인생은 흘린 '눈물'의 깊이 만큼 아름답다"는 말도 있지만 농부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낭만적이지 않다. 그 눈물이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것도 농부에겐 큰 병이다. 1년 동안 정성껏 보살핀 농산물을 유통하는 상인, 도시에 나간 자식 앞에서 만큼은 절대 안 보이려 다짐 했건만, 눈가엔 눈물이 또 고인다.

이렇게 농부의 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 우리의 농촌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피폐해 있다. 농촌 살리기 전문가들은 "농촌이 생동감을 잃어버린 채 겨우 연명한다"고 절망 섞인 분석을 한다. 누가 이런 아픔 속에 처한 농부들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을까! 농부들은 고령화, 부채증가 등과 함께 농촌이 쇠락의 길을 걷는 동안에도 눈물 닦아줄 손길을 묵묵히 기다렸다. 하지만 그 믿음은 '허망'이라는 단어로 돌아왔고, 쓰린 가슴은 또 다시 무너졌다. 절망의 절벽 앞에 선 모양새다.

그럼에도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젊은이와 귀농 귀촌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외치는 소수의 사람으로 농촌은 희망의 끈을 이어간다. 농부들 또한 자발적 노력을 기울이며 미래를 위한 생명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 눈물은 닦는 것보다 흘리지 말아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은 셈이다.

충남 홍성군 장곡면 신동리 이장, 오필승 목사(신동리교회) 또한 11년간 지역 주민과 함께 흘렸던 뜨거운 눈물을 기억하며 미래의 희망을 노래하기 위해 굵은 땀을 흘린다.

'이장'과 '농부', 그리고 '신동리교회의 목사'로 1인 다(多)역을 하고 있는 오 목사는 "이대로 내버려두면 10~20년 후에는 마을 자체가 사라지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마을이 없어지면 교회의 존재 이유도 없을 것"이라 내다보며, "지금의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생각하고, 건강한 생산 영역 가운데 핵심 영역인 농업을 평화의 근거지이자 생명의 뿌리로 삼아 함께 지켜내는 것이 농부들의 눈물을 거두게 하는 지름길이라 생각했다"고 전했다.

과거 자본주의의 거대한 틀과 논리 속에서만 바라보던 농촌 사회를 앞으로는 개인이 몸담은 공동체를 통해 농촌의 소중함을 재발견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오 목사는 농촌의 사람과 정보를 이어주는 허브가 되길 자청했고, 변화와 소통의 중추적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중이다.

이를 위해 오 목사는 2011년 3월 창립된 홍성군귀농지원연구회의 초대 회장을 시작으로 홍성군 귀농귀촌지원센터를 조직해 사무국장을 역임하며 농촌 귀환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다. 또 사단법인 홍성귀농지원연구회 창립도 구상 중이다.

더불어 오 목사는 신동리를 비롯한 인근 3개 마을 농부들과 함께 '장곡면 살기좋은 마을만들기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살기좋은 마을 만들기 사례발표 및 주민토론회를 가졌다. 농부들의 눈물을 닦아 줄 마을의 자원, 보물을 찾기 위한 선구자로 나선 것이다.

위기 속에 농부들의 공감대 또한 굳건히 형성됐다. 그 결과 홍성군은 정부에서 '농촌마을 종합계발사업' 시범지구로 선정돼 42억여 원이라는 지원금도 이끌어 냈다. 이뿐만 아니다. 소규모 농사, 친환경농업, 생명농업 등을 진행하는 농부들을 위한 가공센터 및 창업센터도 구축하게 됐다.

한편 신동리는 '작목반'도 구성해 마을 최대 수확 농산물인 '냉이'를 공동으로 작업하고 판매한다. 마을기업도 신설해 인건비, 중간 유통과정의 손실도 줄인다는 계획이다.

이외에도 농부들은 '오누이마을'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고향을 떠난 자식들이 카페에 접속만 하면 마을의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마을소식지 '정들면 고향, 신동리 마을신문'도 배포해 협동하는 마을공동체를 형성했다. 그 결과 마을총회에서는 신동리 발전을 위한 마을공유지 마련을 결의했고, 마을 전체 71가구 모두가 마을발전분담금 30만원 이상을 내기로 했다. 지금까지 흘렸던 슬픔의 눈물이 기쁨의 찬 눈물로 바뀐 셈이다.

매년 논농사를 지어온 오 목사도 지역 주민들의 힘을 얻어 최근 교회 앞마당 한편에 수세미 체험장을 만들었다. 체험교육을 통해 도시 사람들의 유입을 이끌어내고, 생동감 넘치는 마을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또 '마을 박물관'도 설계해 농촌의 역사와 전통을 오가는 후손들에게 계승한다는 계획이다.

오 목사는 "지금까지는 산업화로 도시로 빠져나간 사람들이 많았지만 앞으로는 귀농 귀촌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정책적으로는 농촌을 살리는 지속적인 대안이 마련되고, 생명농업을 통한 먹거리의 소중함을 위해 농촌교회와 농부들이 손잡고 긍정적인 상생을 준비하면 농부의 눈물은 멈출 뿐만 아니라 새로운 도약의 발판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오 목사는 "농촌과 농부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농촌교회도 마찬가지다"며 "목사와 농부가 손잡고, 교회와 농촌이 힘을 모으면 농부의 눈물은 과거의 역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비자, 생산자 모두 '협동조합' 필요
 
농민들의 가장 큰 고민은 1년간 피땀 흘려 키운 작물을 어떻게 합리적인 가격을 받고 판매할 수 있을까에 관한 것이다.
 
교회가 농부의 눈물을 닦아주려면 이러한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농산물을 대부분 소비하는 주체인 도시 주민들에 의한 운동이 필수적이다. 생활협동조합의 결성은 이러한 농촌살리기 운동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본교단에서는 1995년 영세소농인 농촌교인들에 대한 선교의 일환으로 예장생활협동조합(예장생협)을 출범한 바 있다. 농촌의 생산자 교회와 도시의 소비자 교회를 연결시켜주기 위해 시작된 예장생협은 한때 유기농산물에 대한 붐이 일어 사업이 확장되기도 했지만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걷다가 결국 과도한 부채만 남기고 실패로 끝났다. 그 이후 총회 차원의 생협운동은 사실상 자취를 감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예장생협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때마침 올해부터는 협동조합 기본법 시행으로 조합 설립의 문턱이 낮아지고 다양한 혜택도 주어진 만큼 농촌을 도울 수 있는 생활협동조합을 다시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농촌의 필요에 발맞춰 교단 내에서는 총회 관계자들과 농촌운동가들에 의해 실제로 예장생협을 부활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러나 과거 예장생협의 실패로 이에 대한 접근이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 그렇다면 과거 예장생협은 왜 실패했던 것일까?
 
이에 대해 한경호 목사(횡성영락교회)는 "예장생협 실패의 핵심적인 원인은 협동조합 원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으로 진단한다. 그는 "생활협동조합은 협동과 민주 등의 협동 가치와 원칙이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고 개인사업체화 되었던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라며, "협동조합의 원칙은 로치데일에서 1884년 협동조합운동이 성공한 이래 170년 동안 세계적으로 인류가 쌓아온 지혜인데 당시 예장생협은 조직도 졸속으로 됐고, 조합원들의 의식교육이 병행되지 않았으며, 실무도 전문적인 지식 없이 진행됐기 때문에 실패했었다"고 진단했다.
 
한 목사는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 도시에서는 소비자협동조합을, 농촌에서는 교회 중심의 생산자협동조합을 만들어 협동조합 정신에 맞게 운영하는 것이 교회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협력"이라며, "교인들이 적극적인 조합원이 되어 농촌살리기 운동에 적극 참여할 때 농촌이 맞닥뜨린 커다란 파도를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표현모 hmpyo@pck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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