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눈물, 어디서 기인하는가?

농부의 눈물, 어디서 기인하는가?

[ 기획 ] <연중기획>이웃의 눈물

박성흠 기자 jobin@pckworld.com
2014년 01월 24일(금) 10:27

<농부의 눈물②>
산업화 도시화에 밀린 '農者天下之大本'
세계화에 '농부의 눈물' 마를 날이 없다

2010년대 대한민국에서 농민은 가장 소외받는 사회적 약자의 한 부류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국가의 가장 큰 덕목이자 철학으로 삼아온 대한민국의 농업은 수천년의 세월을 지내고도 급격하게 치고들어온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정보화와 세계화에 밀려 이제 설 자리마저 잃고 있다.

농민들의 딱한 사정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힘입은 농민운동이 전개되면서부터다. 이후의 국내 농민운동은 세계화의 물결 속에 우루과이라운드(1986~1995년, 관세및무역에관한일반협정 다자간 무역협상)와 WTO(세계무역기구) 결성, FTA(자유무역협정)에다 최근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까지 숨가쁘게 이어지는 세계경제의 흐름을 따라 거의 사라져 버렸다.

가톨릭농민회와 기독교농민회 전국농민회 등 1980~1990년대 농민운동을 이끌었던 단체들은 거의 모두 활동을 멈추었고, 활동가들의 대부분은 농업 현장에서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 이렇다할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농부의 눈물은 이같은 현실인식을 기반으로, 우리 시대의 농민이 '사회적 약자'로 전락한 암담한 현실에서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 '농투성이'로 산다는 것은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얻지 못해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한 소농 양성'을 목표로 하는 정부의 목표에 의지한다면 농부는 어느 직업에 못지 않게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특수작목으로 큰 돈을 만지는 농부들의 사례가 심심찮게 메스컴을 통해 보도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사례들이 대한민국 농부의 현실을 대변하지는 못한다.

대한민국의 농부는 더이상 농자천하지대본을 앞세워 당당하게 농부로서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산업화에 밀려났고 도시화에 허리가 휘청거려야 했으며 정보화에 소외되어 사회가 거들떠보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농사지어봐야 가난하고 빚에 허덕여야 하는 슬픈 현실을 지켜본 '다음세대'는 더이상 농사꾼으로 살지 않으려 하고 부모세대는 자녀들이 농사짓지 않기를 바라고 도시로 나가 성공할 것을 부추긴다.

농민운동 1세대들은 "지속적으로 차별하고 소외로 내모는 사회의 모순과 현실이 오늘날 농부를 눈물짓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196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시작된 '농업의 지구화'는 농업기술을 바탕으로 '지구적 시장'에 사적 영리사업에 뛰어드는 거대 기업농과 신흥 농업국을 등장시켰고 '식량안보론'으로까지 확산됐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이 물량 기준으로 27%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미국 독일 영국 일본 등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식량자급률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인이라는 것이 식량안보의 골자다.

식량안보에 이어 식량주권(식량안보에 관한 정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정치적 인간적 권리와 권리를 유지할 수 있는 조건)까지 언급되는 현실과는 달리 농부가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는 정책은 나오지 않는다. 자동차를 팔기 위해 쌀을 양보하고 소고기를 개방하는 FTA에 이어 아시아태평양의 16개 나라가 동시다발로 FTA를 하게 되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행보는 농부의 눈물을 마르게 하는 일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금융산업에는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도 농민들에게 지급하는 쥐꼬리만큼의 보상금을 두고서는 왈가왈부하는 세상에서는 농부의 눈물이 멈출 수 없다. 농민과 농민운동가들은 농민의 기본적인 소득을 법으로 보장하거나, 생산한 농작물을 내다 팔아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얻을 수 있어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자동차를 팔기 위해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는 정부의 정책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 세계사적인 흐름에 따르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나라가 망할 것처럼 호도하던 정부의 정책은 그러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경우가 많다. FTA를 해서 값싼 포도주를 마시고 저렴한 농산물을 신선하게 공급받을 것으로 홍보한 예측은 빗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세계의 식량을 쥐락펴락 하고 있는 거대한 국제 곡물기업들은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곡물의 80%를 쥐고 흔들면서 "종자에서 식탁까지" 먹을거리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다. 식량안보와 식량주권을 들어 '유사시에 대비해 식량자급률을 높여야 한다'는 경고는 "외국에서 값싼 식량을 수입해다 먹을 수 있다"는 '자유무역' 논리에 언제나 묻히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 우리 농부들의 눈에선 피눈물이 솟구치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농을 꿈꾸는 사람들은 말한다. "세계화에 덜 포섭된 형태로 먹거리가 유통되고 소비될 때 도시와 농촌이 공존할 수 있습니다. 과거 정권들의 농업정책은 사실상의 농촌 수탈정책이었습니다. FTA와 WTO 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농업정책의 근간을 흔들고 값싼 수입 농산물을 정책적으로 들여와 농촌해체를 가속화했습니다. 도시농업 활성화로 도농교류를 일으켜 세우고 여기서 희망을 봐야 합니다."

수년전까지도 경쟁적으로 행해지던 노ㆍ동교회간 직거래 운동은 이런 저런 이유로 '한물 간' 사업으로 치부되고 있지만 여전히 도ㆍ농교류는 우리나라의 농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훌륭한 대안으로 회자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유엔이 '가족농업'에 주목하고 올해를 '세계 가족농업의 해'로 지정한 데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농부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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