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월27~2월1일

[가정예배]1월27~2월1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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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1월 23일(목) 10:46

월-하나님이 찾으시는 참 예배자
본문 : 요 4장 3~39
찬송가 : 85장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지방 수가라 하는 동네에서 죄 많은 한 여인과 대화하시면서 영원한 생수의 근원인 메시아가 자신임을 밝히시며 여인의 영적 육적 목마름의 갈증을 풀어주신다. 그러면서 여인으로 하여금 여전도자로 변신해 가는 과정 속에서 나눈 대화 가운데 일부이다. 여인이 예수께 이런 질문을 했다. "주님 우리 조상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한다고 말합니다. 어느 것이 옳습니까?" 예수께서는 이렇게 답변하셨다. "너희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분을 알지 못한 채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 유대인들은 바로 알고 예배를 드린다. 그것은 유대인(예수를 가리킴)을 통해서 이 땅에 구원이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말을 잘 들어라 예배를 드리는 장소는 그리심 산도 아니요 예루살렘도 아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는 이제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라고 하시면서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장소에 연연하지 말고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합당한 참된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한다.

왜 우리 주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을까? 영적으로 예배드리는 자들이 희귀하다고 말하시는 것이다. 그렇지만 찾으신다는 말씀에는 그러한 성령의 사람들로 만들어주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따라서 그에게 예배드리는 모든 크리스찬들은 영적이고 진실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창세기 4장에 보면 카인의 제물은 안 받으시고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다. 카인은 형식적이고 의식적이고 마지못해서 억지로 드렸고, 아벨은 자기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렸기 때문이다.

남부 멕시코 산중에 사는 첸탈 인디언은 예배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끝장내는 것'이라고 한다. 모든 세상적인 자신의 욕망을 끝을 내게 됨으로써만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참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일진대 바로 내가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한 사람 중에 하나가 돼야 하지 않을까? 예배는 하나님 앞에 넘어져서 자신을 쳐 복종시키면서 우리를 구속하여 주시고 천국까지 인도하여 주실 은혜를 생각하면서 찬양과 감사가 넘치는 가운데 몸과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께 겸손히 나아가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자를 찾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찾고 계시는 예배자가 바로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유기삼 목사/산성교회 


 

화-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기뻐하노니
본문 : 요 11:1~16
찬송가 : 292장

인생에 고난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비교적 낙관적으로 받아들인다.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만한 시험만을 허락하신다고 믿기 때문이고, 둘째는 우리에게 불필요한 고통은 주시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고, 셋째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한 사람이 죽을 병에 걸렸다. 본문에는 두 번이나 나사로를 가리켜 사랑하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한 번은 나사로의 누이들이 예수님께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고 했다.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속히 내려오실 것이라 생각했는지 모른다. 아니면 빨리 내려오셔야 한다는 강한 요구를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라는 설명에 언급된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은 즉각 오시지 않았다. 오히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며 이틀이나 더 머물러 계셨다.

예수님의 말씀과는 달리 이틀을 머무는 동안 사랑하시는 자가 죽었다. 왜 예수님은 이틀이나 더 지체하신 것일까?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무슨 말씀인가? 점점 이해할 수 없다.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쌍소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에고이즘에 갇혀서 느리게 행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다. 그들의 특기는 느리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완전히 녹아웃 시킨 뒤 문 밖으로 몰아내는 것이다"라고 현대인들을 꼬집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예수님의 사랑은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왜 예수님은 이틀이나 더 머물렀을까? 주님의 말씀에서 그 뜻을 알 수 있다."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하시더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 머물러 계셨던 이틀이라는 시간은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시간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주기를 원하신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의 차이를 영광에 참여할 시간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평생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시간으로 채워지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가정이 평생을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병철 목사/초대교회


수-예수님을 믿는 가정
본문 : 에베소서 6장 1~4절
찬송 : 찬송 559장

하나님은 가정을 소중하게 여기셨다. 건강하고 축복받는 가정은 어떠해야 할까?

첫째, 대화가 있다. 가족들 간에 많은 대화가 있어야 한다. 건강한 가정의 기준은 대화다. 배우자의 대화 자녀들과의 대화를 많이 나누고 살면 행복한 가정이 된다. 마음을 닫아놓고 대화가 없으면 결코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없다. 서로를 이해하고 닫힌 마음 문을 여는 열쇠는 대화다. 대화를 통하여 서로를 이해하며 힘든 문제를 풀어 나가면 화목한 가정이 된다. 믿음의 가정은 크게 두 가지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첫째, 하나님과의 영적 대화다. 기도하는 가정은 믿음이 건강하여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다. 둘째, 가족 간의 대화다. 대화는 행복을 옮기는 바이러스다. 대화가 많으면 서로를 이해하고 문제를 예방하기에 건강한 가정이 된다.

둘째, 서로 존중하라. 가정의 구성의 세 가지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부부다. 서로 존중하고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 부부간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면 자녀들에게 덕이 되지 못한다. 부부가 믿음, 정서적으로 건강하면 가정에 어떠한 어려운 문제가 밀려와도 헤쳐 나갈 수 있다. 모든 문제의 시작은 부부관계에서 온다. 둘째, 부모는 자녀를 믿음으로 양육하라. 위대한 부모는 자녀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자다. 자녀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많이 해주자. 자녀들에게 부모를 공경하도록 하라. 십계명 중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게 네 생명이 길리라"고 했다. 셋째, 자녀들은 부모의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아야 한다. 야곱과 요셉은 아버지의 축복기도를 받고 가는 곳 마다 축복을 이끌고 다니는 주인공이 되었다. 또한 자녀들은 형제간의 우애를 나누워야 한다.

셋째,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라.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하면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은 항상 웃음꽃이 피어나는 가정이다. 화목한 가정이란 어떤 가정일까? "주님께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으며, "근심하지 말라"고 하였다. 부모는 자녀에게 근심의 짐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근심 있는 얼굴 웃음이 피어날 수 없다. 우리는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지나친 욕심 때문이다. 욕심 때문에 부부가 다투고 형제끼리 싸운다. 서로 이해하면 화목한 가정이 된다. 믿음 안에서 화목한 가정을 만들자.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행복은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야 한다. 가정을 천국으로 만들자. 믿음은 행복의 바이러스다.

<오늘의 기도>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가정,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가정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승익 목사/무등벧엘교회


목-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본문: 히11:1~7
찬송가: 새545장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했다. 믿음이 우리를 살린다. 믿음은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케 하며, 의와 구원이라는 은혜의 선물을 누리게 한다. 그래서 성경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였다. 우리는 행함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최고의 복음이다.

그러나 믿음은 마음 속에서만 이뤄지는 수동적이고 정적인 것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소극적인 믿음도 포함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적극적인 믿음을 포함한다. 즉 바른 믿음은 움직이는 믿음, 행동하는 믿음이다. 공관복음에서는 믿음을 '피스티스'라는 명사형으로 쓰고 있지만, 요한복음에서는 믿음을 '피스튜오'라는 동사형으로 표현한다. 요한복음 11장의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시는 현장에서 믿음의 절정을 이룬다. 마르다의 믿음이 명사형의 믿음 고백의 소극적인 믿음이었다면,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동사형의 믿음 즉 돌을 옮겨 놓는 행동의 믿음을 요구하셨다. 참 믿음은 실천으로 드러나야 한다.

믿음은 그저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믿음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오늘 본문 말씀에 열거된 믿음의 선진들을 보라. 그들 가운데 누구도 그저 입 벌리고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던 사람은 없다. '동사형' 믿음을 가졌다. 이 믿음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이런 살아있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 믿음의 선배들을 따라 사는 것이다. 그들이 행한대로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믿고 제자의 길을 따라나서야 한다. 내 신념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신앙 선배들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그 믿음이 내 삶에 구체적인 기적의 역사를 일으킨다. 믿음의 실증자로 살게 한다.

둘째,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야 한다. 믿음은 우리는 피조물이요,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가 따로 있음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일 뿐 아니라, 우리 인생을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분이다. 그 믿음으로 겸손히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아벨의 제사가 바로 그런 믿음이다. 겸손히 내 삶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맡겨드리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에녹의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따라 동행한 삶이다. 성경이 증언하는 믿음으로 살면, 우리는 의롭고 영광스런 자리에 앉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 참된 믿음의 사람으로 살기 원합니다. 성경의 믿음을 바로 알고 실천하는 주의 자녀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손은기 목사/엄정교회


금-새로운 사명
본문 : 행 1:6~11
찬송가 : 511장

우리는 전도에 의무감을 갖고 전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전도하지 못하고 죄책감을 갖는다. 효과적인 전도에 어떤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게 아니다. 문제는 성령의 감동과 역사하심이다. 주님은 약속하셨다.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우리는 때로 "성령을 주십시오. 왜 안주십니까?"라고 하지만, 내가 환영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육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살고, 사탄의 유혹에 걸려 넘어졌기 때문이다. 공기가 세상에 가득하여 코로 숨을 들이키면 공기가 몸 안에 들어오듯, 성령이 임하신다. 물 속에 들어갈 때 압력이 있어서 입을 열면 물이 쏟아져 들어오듯, 하나님의 영은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압력을 가하여 몰려 들어오신다. 기도하고 사모하라. 마음을 열고 주의 영의 임재를 받고 권능을 입으라.

우리는 '먹고 살기도 힘든데, 직장과 사업과 살림과 아이들 양육도 수고스런데 언제 복음을 전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다음에, 아이를 키우고 나서, 학교를 보내고 나서, 졸업하고 나서, 결혼시키고 나서, 손주 봐주고 나서라고 미루지만, 나이 들고 약해지면 기회는 다 지나가고 후회밖에 남는 것이 없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하셨다. 지금 은혜를 받으라. 성령을 받으라. 권능을 입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라.

한 기타 연주자가 있었다. 비싼 기타를 샀고, 밤무대에 서서 돈을 벌고 방탕했다. 그가 예수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거듭나자 기타를 깨트려 버리기로 했다. 다음날 기타를 팔아 돈을 받아 선교비를 보내기로 했다. 다음날 기타를 다시 연주하되 하나님을 찬양하기로 했다. 그가 버리고 떠나야 할 것은 기타가 아니라 방탕한 죄요, 자기 자신이었다. 오히려 그 기타로 주님을 섬겨야 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려면 '버려야 한다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땅 끝으로 아프리카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버릴 것은 내적인 문제요, 나 자신이다. 우리가 있는 곳이 이미 보내심을 받은 곳이며, 우리가 가야할 땅 끝이다.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한 것, 지금 직장에서 일하는 것, 참여하고 있는 모임과 단체, 거기가 주의 보내신 곳이다. 거기서 행복과 돈과 즐거움을 얻으려 하나, 거기서 주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이 있다. 그날까지 우리는 성령의 임하심을 받고, 권능을 받아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살아야 한다.

<오늘의 기도>
성령의 권능을 받아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새롭게 사는 사람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재범 목사/일신교회


토-도우시는 하나님
본문 : 삼상 7:12~14
찬송가 : 370장

엘리가 제사장으로 있던 시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하고 이방신을 숭배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침공을 받아 엘리의 두 아들이 전사하고 그 소식을 들은 엘리도 충격을 받아 죽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법궤마저 빼앗겼다. 이 무렵, 그동안 엘리 제사장을 도와 성전을 섬기던 어린 사무엘이 장성하여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가 된다. 사무엘의 지도를 받은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사무엘은 돌을 취하여 기념비를 세운 후 에벤에셀 즉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며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다.

승리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가. 바로 기도였다. 사무엘의 인도를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스바로 모였다. 오로지 기도하기 위한 하나의 목적에서였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섬긴 것을 회개하고 금식하며 기도하였다. '블레셋의 손에서 우리를 구해 주옵소서'라며 전 민족이 하나가 되어 부르짖었다. 기도의 함성이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였다. 한 사람 한 사람 부르짖는 기도의 불씨가 합하여 불덩이가 된 것이다. 하나님은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가 떨어지게 하여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안겨 주셨다.

그 후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지켜 주셨다. 여호와이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았다. 사무엘이 살아서 하나님과 국가 안위를 위해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의 손이 이스라엘을 떠나지 아니하고 지켜주셨다는 말이다. 이 세상의 모든 움직임, 국가나 자연계의 모든 움직임은 하나님의 손길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땅까지 회복하게 해 주셨다. 이스라엘은 언제 그 땅을 잃어버렸는가. 하나님을 떠났을 때였다. 언제 그 땅을 찾았는가. 하나님께로 돌아왔을 때였다. 회복의 길은 한 가지 뿐, 오직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니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고 말씀하셨다. 잃어버린 기도, 잃어버린 찬송, 잃어버린 봉사, 잃어버린 기쁨을 회복되길 바란다. 가난에서 회복되어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병마에서 회복되어 건강한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 위에 평화를 더하셨다.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사람이 만들어 가는 평화는 한시적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만이 참된 것이다. 새해에는 가정과 교회 그리고 나라, 특별히 남북 간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가 가득하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에벤에셀의 삶을 체험하는 한 해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 되어 기도하는 교회 되게 하옵소서. 회복의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주님이 평안으로 채워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병일 목사/남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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