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0월7~12일

[가정예배]10월7~12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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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04일(금) 10:03

월-비상하는 신앙생활
본문: 사 40:27~31
찬송가 : 354장
 
비행기 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 때는 비행기가 뜰 때와 착륙할 때라고 한다. 오늘 우리는 현실에서 탈피하여 비상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다.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가 앗수르와 바벨론에 각각 망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포로로 끌려갔다. 그들이 절망 가운데 헤어나오지 못했을 때 이사야 선지자가 소망의 말씀을 전하였다. 우리 믿음이 어떻게 하면 독수리처럼 하늘 높이 비상할 수 있을까?
 
첫째, 현실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멀리 떠나시고 버리신 것 같다'고 현실만 바라보고 탄식했다.
 
심리학자 맥스웰 말프는 사람의 95%는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람은 어려운 상황을 기회로 알고 비상한다. 보이는 것(환경)만 주목하는 사람은, 일이 잘되면 신이 나서 용기가 넘치다가 일이 잘되지 않으면 힘을 잃어버린다. 우리 믿음도 현실에 매이면 하늘로 비상할 수 없다.
 
둘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확신해야 한다.
 
하나님을 알 때 믿음이 생긴다. 그냥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 그냥 아버지가 아니라 나의 아버지, 그냥 능력자가 아니라 나의 능력자, 이렇게 나와 관련시키면서 성경을 읽으면 믿음이 생긴다.
 
최용우씨의 글에 이런 글이 있다. "흐리멍텅하지 말고 야물딱지게 신앙생활을 하자. 미지근하지 말고 야물딱지게 신앙생활을 하자. 근심 걱정 염려하지 말고 야물딱지게 신앙생활을 하자. 여기저기 한 눈 팔지 말고 야물딱지게 신앙생활을 하자" 야무지게 신앙생활하면 하늘 높이 비상할 수 있다.
 
셋째, 하나님을 갈망하기 바란다(30-31절).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성령의 능력)을 얻는다. '앙망'이란 히브리어로 '카바'인데 '간절히 바라보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 함께 묶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신학대전을 저술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평생 예수님을 증거하는 글을 썼는데, 기도 중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에 대해서 잘도 글을 썼구나,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그 말에 아퀴나스는 "나에게는 아무 것도 필요 없습니다, 나에게는 오직 당신뿐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현실만 바라보는 것은 불신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나와 관련하여 믿고, 하나님을 갈망하므로 성령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기를 바란다. 그래서 독수리처럼 힘차게 비상하는 믿음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힘들고 답답한 상황 속에서도 믿음의 눈을 뜨고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지금까지 지내온 길에 함께 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갈망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인근 목사 / 원주제일교회


화-기도하고 바라리이다
본문 : 시 5:1~12
찬송 : 369장
 
실제 있었던 일이기도 하고 어느 영화에서 인용되었던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있다. 달걀을 파는 트럭이 신호위반을 했다. 달걀장수는 요즘 장사도 안 되는데 한번 봐달라고 빌지만, 경찰관은 요지부동이다. 할 수 없이 달걀장수가 뇌물을 줄 생각으로 지갑을 펼친다. 그는 만 원을 주면서 정말 미안하지만 오천 원을 거슬러 달라고 한다. 거스름돈을 주겠다며 차로 간 경찰관은 그냥 출발해 버린다. 이제 달걀차가 경찰차를 쫓아가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달걀장수는 신이 나서 마이크에 대고 소리친다. "경찰차 정지, 정지! 내 오천 원 내놔!"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쫓김이다. 쫓길 때는 무척이나 힘들어 하던 달걀 장수가 쫓을 때에는 완전 다른 모습을 보인다. 웃음을 터뜨리고 경적을 마구 울려대면서, 말할 수 없는 희열을 표출하는 장면이 영화에 펼쳐진다. 이렇듯 쫓는 것은 희열이지만 쫓기는 것은 고통이다. 
 
쫓기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돈에 사람에게 두려움에 걱정에 조급함에 쫓긴다. 위대한 왕 다윗도 쫓기는 자로서 고통 속에 살았다. 젊어서는 사울왕을 피해 노년에는 아들의 반란으로 또 쫓기는 자가 되어야 했다. 불확실한 미래는 사람을 극도의 불안으로 내몬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이 고백한 시편 5편을 통해 쫓김에서 해방되는 믿음의 열쇠를 보여주신다. 이 시의 처음은 고통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소리로 출발한다. 2절엔 얼마나 답답한지 상대방을 욕하며 울부짖는다. 그런데 11절은 오히려 기쁨을 노래하고 즐거움을 선포한다. 어떻게 이런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을까? 그 이유를 3절의 고백에서 발견한다.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죠지 뮬러는 부모님의 지갑에서 돈을 훔치던 문제아였다. 그러나 간절한 무릎 기도에 감동을 받고 난 후, 그는 5만 번 이상 기도응답을 받는 기도의 사람이 된다. 그가 고아원을 운영한 것은 오직 기도의 힘이었다. 겨울에 보일러가 고장나 아이들이 얼어 죽게 생겼다. 보일러 수리는 일주일이 걸린다. 그때 그는 날씨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봄 날씨같이 따뜻한 일기를 달라고 기도드렸다. 그가 간절히 부르짖는 동안 갑자기 동풍이 불어 영국 전체가 일주일동안 봄 날씨로 바뀌는 기상 이변이 일어났다. 기도에 관하여 죠지 뮬러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기도를 시작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응답 받을 때까지 끝까지 기도하십시오. 대부분의 경우는 복을 주실 때까지 기도를 계속하지 못하고 또 쉬지 않고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이 가을에 다시 주님께 나아가자. 기도의 양을 회복하자. 그리고 기도했다면 끝까지 기대하자.
 
<오늘의 기도>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끝까지 기도하고 바라는 믿음으로 주님의 기적을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호성 목사/금성교회


수-하나님과 워낭소리
본문 : 사 38:1~8
찬송가 : 539장
 
오래 전 '워낭소리'란 다큐영화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한 노인과 소의 일상을 그린 영화로 감독은 1년 후면 소가 자연사할 것이라 생각하고 촬영을 시작했는데 소는 예상을 넘어 3년 후에나 수명을 다해 결국 영화도 3년에 걸쳐 찍었다.
 
소의 보통 수명은 20년이라는데 이 소는 40년을 살았다. 그 이유가 뭘까? 소의 임자 할아버지의 뜨거운 사랑과 소의 사명감 때문이 아닐까. 할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해 어딜 가든 소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9남매를 길러냈다. 그야말로 소와 일심동체가 되어 40년을 한결같이 살아온 것이다.
 
할아버지는 아무리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도 사랑하는 소의 딸랑거리는 워낭소리만 들리면 번개같이 일어나 달려가곤 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소리에 반응하시는 모습 같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워낭소리를 내야 할까?
 
본문에 의하면 히스기야왕이 병들었는데, 이미 이 병은 죽을 병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포기하지 않고 기도를 시작했다. 현재 사형선고의 말씀보다 더 앞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었기에 그는 그 말씀을 믿고 기도한 것이다. 그 약속은 시편 34편 6절에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 하셨도다", 34편 17절에 "의인이 외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저희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이다. 히스기야는 '벽을 향하여 기도를 시작하였고' '심히 통곡'하며 기도했다.
 
히스기야의 기도 모습을 상상해 보자. 벽을 향하였다는 것은 이미 이 세상에는 기댈 대가 없다는 것을 인정한 태도이며, 심히 통곡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히스기야가 통곡하는 시간에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신다. 시간차가 없는 빠른 응답이 떨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너무나도 마음이 크시고 사랑이 넘치는 분이다. 히스기야의 워낭소리에 진한 감동을 받으셔서 히스기야가 부탁하지 않은 것까지도 마구 복을 내려 주신다. 너를 고쳐줄 것은 물론이고 네 생명을 15년 더 연장해 주겠다. 또한 보너스로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 주고 이 성을 계속해서 보호해 주겠다는 약속까지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워낭소리를 들으면 마음도 바꾸신다. '너는 살지 못하고 죽으리라'하셨지만 히스기야의 워낭소리에 그 뜻을 돌이켜 살려 주셨다. 단순한 워낭소리, 짧막한 워낭소리, 그 소리를 그렇게도 듣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자주 워낭소리를 들려 드려서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순간마다 놓칠세라 우리를 살피시는 은혜를 감사합니다. 성령님의 반응을 오늘도 깨닫고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정자 목사/한강성심병원 원목


목-하나님 원하시는 마음
본문 : 신 6:5
찬송가 : 301장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외모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이다. 오늘 본문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  문제는 마음이고,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마음 상태를 보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마음이란 어떤 마음인가?
 
첫째로, 하나님 원하시는 마음은 겸손한 마음이다. 겸손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할 태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가르치시고 보여주신 것이 겸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예루살렘에 입성 때도 나귀를 타고 들어가셨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겸손한 마음이야말로 가장 칭찬 받는 마음이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마음에 은혜를 부어 주신다. 은혜는 겸손하게 주 예수를 영접할 때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기뻐하시고 찾고 계신다. 그래서 잠언 18장 12절에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귀히 쓰지 않는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시고 교만한 자의 기도는 물리치신다. 신앙인들이 자주 빠지게 되는 시험이 바로 영적 교만이다. 주님이 기뻐하는 사람은 말 잘하는 사람이나 재능 많은 사람이 아니라 겸손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사람이다.
 
둘째로, 하나님 원하시는 마음은 정직한 마음이다. 하나님은 거짓을 미워하시고 속임이 없는 정직한 사람을 기뻐하신다. 단지 정직이 도덕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정직이란 단어에는 온전하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마음을 기뻐하시는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은 나뉜 마음을 싫어하신다. 나뉜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두 마음을 품는 것이며 불신앙의 마음이다. 그래서 잠언 14장 11절에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고 하셨다.
 
셋째로, 하나님 원하시는 마음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일종의 그릇과 같은 것이다. 성도가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될 때 비로소 은혜를 받을만한 그릇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감사의 그릇이 준비되면 하나님 앞에 더 풍성한 것을 받게 되고, 더 좋은 것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고 하셨으며,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고 하신 것이다. 기도할 때도 예배할 때도 성도의 태도는 감사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오늘의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오늘 하루도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하나님 원하시는 마음을 품고 사는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기수 목사/수동교회


금-삶의 초점을 다시 맞추라!
본문 : 롬 12:1~2
찬송가 : 546장
 
오늘의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 다운 신실하고 진정성 있는 믿음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본문 말씀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자.
 
첫째는 소유의 문제이다. 즉 우리는 누구의 소유이며 우리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문제이다. 베드로가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께서 택한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 표현한 것처럼, 하나님의 소유된 우리는 인생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께 바쳐지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라는 부르심을 잊어서는 안된다. 제물은 철저히 주인을 위해서 바쳐진 존재다.
 
내 삶을 내 뜻이나 내 욕망대로 디자인해서는 아무리 세상적으로 성공했다손 치더라도 절대로 행복할 수도 없고 유혹과 시험 많은 세상에서 승리할 수도 없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육신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된 것이라고 그들의 소속을 분명히 밝힌 후 실천에 대한 첫 지침을 이렇게 주면서 시작하고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의 소유로서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진 산 제물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만이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하여 그분의 뜻대로 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가? 하나님의 뜻에 내 삶의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도 자주 흔들리고 하나님의 뜻을 망각하기 쉬운 게 연약한 우리들인데, 하나님의 소유된 존재라는 영적 자각이나 각성없이 살기에 무기력하고 초첨을 잃은 낭비된 인생, 신실하지 못한 허무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둘째는 이 세대를 본받는 우리 모습이 정말로 큰 문제이며 시험거리다. 강신주라는 철학자는 이 세상 권세가 현대인들의 내면에 새기는 이미지 가운데 '욕망'과 '염려'의 이미지를 지적하고 있는데, 너무 정확한 지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살아가야 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하나님이라는 초점을 잃어버리고, 세상이 주는 염려와 근심 때문에 하나님이 선물로주신 시간과 삶의 은총들을 망각하면서 낭비된 삶을 허우적거리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인생 후회없이 살아가려면 오늘 본문말씀처럼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그분의 뜻을 따라 단순하게 사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삶의 목표와 초점을 분명히 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잘 분별하면서 내게 주신 건강,물질,은사들을 주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지혜롭게 사용케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학산 목사/김포이주민선교교회


토-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살자
본문 : 엡 5:1~4
찬송가 : 220장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생명체 가운데 사람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른다. 이는 만물을 보고 느끼고 다스리는 능력이 그 어떤 생명체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 다스리는 능력으로(靈長)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지음받았다. 그러나 불순종과 죄로 인하여 영적으로 죽은 자가 되었다. 이런 인간을 하나님의 사랑이 다시 살리셨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고백한다. 선물은 사랑하는 이에게 거저 주는 마음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은 자들은 그 사랑을 잊지 않고 감격하며 자랑하며 살아간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살기를 힘쓴 사람이다.
 
하나님은 사도바울을 통해 본문에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살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어떤 삶인가?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며 사는 삶이다. 사랑의 출발은 용서이다. 성경은 우리를 '불순종과 죄로 죽은 자(엡 2:1)'로 즉, 영장의 기능을 바르게 발휘하지 못하는 자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용서하셔서 살리셨다. 이 사랑을 입었으니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사랑을 받았으니 서로를 사랑으로 용서하며 살아야 한다.
 
복음적인 말을 나누며 살아야 한다.
 
복음은 기쁨이며, 평안이며, 위로이며, 소망이다. 살리는 생명이다.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입은 자는 언제 어디서나 복음적인 말을 나눔으로 생명을 생명 되게 해야 한다. 4절에 "누추함(더러운 말)과, 어리석은 말(저속한 말)이나, 희롱의 말(농담)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말씀한다. 사람은 누군가로부터 들은 말에 의해 생각하고 행동한다. 나로 인해 다른 이의 마음에 새겨질 말에 대해서 생각하는가? 불평이나 상처를 주는 말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복음적인 말을 마음에 새기는 연습이 필요한다. 칭찬하는 말, 고마운 말, 따뜻한 위로의 말, 근심이 사라지게 하는 평안의 말, 서로의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말, 행복한 마음을 갖게 하는 용서의 말들을 새기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세상은 우리가 받은 사랑을 드러내지 못하게 한다. 득이 없는 것이라고 속삭인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을 기억할 때 그 사랑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나게 한다. 믿음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하신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다. 이 은혜로 자신과 다른 이의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야 한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용서하시고 새 생명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사랑을 입은 자녀로서 날마다 삶의 자리에서 그 사랑을 기억하고 전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한병 목사/평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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