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9월2~7일

[가정예배]9월2~7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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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8월 26일(월) 13:24

월-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본문 : 시 118:5~16
찬송가 : 405장
 
우리의 인생은 누가 내 편이 되어 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본문을 보면, 시편기자가 처해 있는 상황이 나온다.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뿐만 아니라 "뭇 나라가 나를 에워쌌으니…그들이 벌들처럼 나를 에워쌌으나…"라고 말한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 사면초가의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뒤에서 몰래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는 자까지 있다고 말한다. 오늘 우리의 상황과 비슷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시편 기자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오히려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라고 고백한다. 기쁜 소리와 구원의 소리가 그의 장막에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여호와가 자기의 편이 되어주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주시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첫째, 나를 넓은 곳에 세워주신다. 창세기 26장을 보면, 그랄의 목자들이 여러 번 이삭의 우물을 빼앗을 때, 이삭은 그대로 양보하고 떠난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이른 곳이 '르호봇'(장소가 넓다)이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위하여 넓은 곳을 예비하시고 번성케 하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주시면, 손해 보고 억울한 상황에서도 오히려 하나님은 나를 넓은 곳에 세우시고 번성케 하신다.
 
둘째는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신다.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하나님께서 내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을 붙여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주시면, 생각지도 않는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통해서 문제가 해결되고 도움의 손길을 받는다.
 
셋째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모든 결박을 끊어주신다. 사울은 다윗을 잡기 위해서 3천 명의 군사를 풀지만 다윗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주시면 나를 묶고 있는 결박들이 끊어지게 되어 있다.
 
넷째는 우리의 가치가 달라진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주시면 이제까지 버린 돌 같던 인생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과 같이 바뀐다. 갈릴리 바다 출신의 시몬이 예수님을 만나고 베드로로 바뀌어 거룩하게 쓰임받았다. 내 인생의 가치를 높이는 길은 하나님께서 내 편이 되어 주시는 것이다.
 
돈, 명예, 권세, 친구, 건강 등은 잠시 내 곁에 있어도 결코 끝까지 내 편이 되어 주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끝까지 내 편이 되어 주신다. 그때 내 인생에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오늘도 나의 편이 되어 주시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인호 목사/예명교회


화-포이에마
본문 : 엡 2:8~10
찬송가 : 563장
 
바이올린이 어린 아이의 손에 들려있다면 장난감에 불과하겠지만, 세계적인 연주가의 손에 들려있다면 아름다운 선율로 수많은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명기가 될 수 있다. 우리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있을 때 많은 사람을 위로하고, 기쁨을 주는 하나님의 명품악기로 쓰임 받을 수 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고 했는데, '만드신 바'는 헬라어로 '포이에마', 바로 '작품'이라는 뜻이다. 즉 우리는 하나님이 손수 정성껏 만드신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작품'이다.
 
그런데 우리는 진정 '작품다운 삶'을 살고 있는가? 과연 어떻게 해야 진정 작품다운 인생으로 회복될 수 있을까? 8절을 보면 먼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 삶이 망가지고 구겨진 이유는 '죄'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대하시고, 계획하신 작품다운 작품으로 살기 위해서는 먼저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구원'이다. 그런데 본문은 구원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이라 말하고 있다. 물에 빠진 사람이 구조대원의 손을 잡아야 살 수 있듯이, 우리도 손을 내밀어 하나님이 보내주신 구조대원, 예수님의 손을 잡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받아들여야 비로소 '작품인생'으로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작품'으로 만드신 이유가 무엇일까? 10절을 보면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선한 일을 행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선한 기대를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진정 하나님의 작품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이유와 목적을 따라 세상의 빛으로, 세상으로 소금으로 살아가야 한다. 빛된 삶으로 세상에 감동을 주는 진정한 하나님의 '포이에마'가 되자.
 
11절 이후에 우리가 더 멋진 하나님의 작품이 될 수 있는 길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원래 성도들은 남남이었는데 그리스도의 피로 서로가 가까워졌고, 우리 사이에 막힌 것들이 허물어졌다. 모든 원수된 것이 십자가로 소멸되었다. 이제 서로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고,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다. 이것이 무엇인가? 바로 '교회'이다. 교회 공동체의 지체가 되어 살아갈 때 더 귀중한 작품으로 완성될 수 있다. 모자이크 작품을 보면 한 조각, 한 조각은 보잘 것 없는 파편에 불과하다. 그러나 서로가 모여서 형형색색 아름다운 작품을 이룬다. 교회도 서로 모여 연합할 때 온 세상을 구원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룰 수 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의 작품으로 지음받았음을 깨닫고,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더 멋진 삶을 살 수 있게 하시고, 교회 또한 연합을 이루어 찬란한 빛을 발하는 주님의 포이에마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우식 목사/신흥교회


수-선한일, 악한일
본문 : 요 5:29
찬송가 : 569장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선하게 살아야 한다. 말씀대로 선한 일을 행하는 자는 생명의 부활로 부활하게 된다. 반대로 악한 일을 행하는 자는 심판의 부활로 부활한다. 결국 지옥이다.
 
그런데 과연 선한 일은 무엇이고 악한 일은 무엇인가.
 
먼저 선한 일이란 엡 2:10, 딛 2:14, 전 3:12, 전 12:13~14, 고후 5:8~10을 보면 알 수 있다.
 
'선한 일'이라는 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에 선한 일, 즉 착하게 행동하는 것으로 도덕적 윤리적인 차원으로 생각할 수 있고, '악한 일' 또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생각하는 도덕적 윤리적인 차원의 악한 일, 살인, 강도 등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선한 일, 성경에서 말하는 악한 일이 과연 무엇인가를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선한 일은 창조의 목적과 구원의 목적이며 그것은 곧 한마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분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다. 결국은 아가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선을 행할 때에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만드시고 구원하신 창조의 목적이요 구원의 목적이다.
 
그렇다면 악한 일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롬 7:12ㆍ19, 롬 13:8~10, 느 1:7에 나와 있다. 악한 일은 율법의 요구를 저버리고 아가페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삶을 말한다.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아가페 사랑으로 하라는 것이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 곧 아가페 사랑의 실천이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사도 바울이 말하는 선한 일과 악한 일은 개념은 사랑하는 삶이 선이요 사랑하지 않는 삶이 악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며 선한 일을 행하며 아가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의 행위를 보이면 그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고 생명의 부활로 나오게 되지만 교회를 다닌다고 할지라도 악한 일을 행하여 즉 아가페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곧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고 하면서도 창조의 목적대로 살고 있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고 아가페 사랑을 실천하며 살고 있느냐는 것이다. 스스로 나의 신앙을 돌아보는 시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 그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를 세우셔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선한 일에 힘쓰도록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내 사명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두진 목사/신광교회


목-환경을 보전합시다 
본문 : 창 1:27~31
찬송가 : 69장
 
8월의 태양이 찬란하고 참 좋다. 하나님이 이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셨다.
 
태양이 지구와 조금 가까우면 타버릴 것인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4계절의 조화를 이루어가고 있다.
 
달은 지구를 돌고, 지구는 태양을 돌고, 태양은 은하계의 중심을 잡아준다.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 공간에는 다 신비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늘 마시는 물과 공기, 낮의 밝음과 밤의 어둠, 우리 주변의 나무와 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 바다의 어류. 이 우주의 창조자가 누구인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온 자연만물을 맡겨 주셨다. 감사하며 자연과 더불어 건강하게 복되게 살라고 하셨다. 찬양하며 경배하며 살라고 하셨다.
 
그런데 인류가 역사를 거듭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정면으로 대립을 하고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파괴했다. '지구 환경 보고서'에 의하면 1년에 최소한 5만종, 하루에 140여 종의 새들이 멸종하고 있다고 한다. 이 보고서는 지금의 지구 생태계가 얼마나 위험한 지경에 왔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생태계의 기본질서가 깨지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 오염문제,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가다가는 사람이 살 수 없고 살아도 질병의 노예가 되어 고통을 받고 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고 찬송하면서도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짓밟고 파괴한 것을 깊이 회개해야 람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땅을 정복하라"는 멋진 문화명령을 주셨다. 그런데 이 성서적 명령을 오해하여, 아름답고 균형 잡힌 자연을 오히려 파괴하고 이기적 욕망을 채우려고 마음대로 이용해 왔다. 만일 우리가 새롭게 변화되지 못하고 계속 자연을 훼손한다면 자연도 인간에게 해악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제 우리 귀를 열어 피조물의 신음소리를 들어야 한다. 썩어짐의 종노릇 하는 데서 해방되어 모든 한사람 한사람이 환경을 지키는 책임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욕심을 버리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생활을 바꾸어야 한다. 내일을 위해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후손들을 생각하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한다. 후손들이 풍요롭게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을 아름답게 보존할 수 있는 성숙한 성도들의 삶이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상렬 목사 / 경신교회


금-참다운 기적
본문 : 요 6:1-15
찬송가 : 198장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 근방 어느 산등성이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셨다고 말한다. 복음서들이 전하는 기적 이야기를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이 실제 있었던 일인가를 묻기 전에,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알리려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허기진 군중을 보셨다. 빌립은 상식의 차원에서 떡 살 돈이 없다고 말한다. 또 다른 제자 안드레는 한 소년이 가진 것을 보고 사람들이 무언가 가지고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먹었던 보리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는 별 것 아니다. 그런데 별 것 아닌 우리의 가난을 새롭게 볼 수 있게 해 주시는 분이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떡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린 후, 나누어 주셨다. 먼저 군중들을 풀 위에 앉도록 요청하신다. 사람들을 앉게 했다는 것은 존엄성을 가진 자유인으로 대우하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가진 떡 몇 개를 받는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떡을 나눈다. 요한복음은 주님께서 떡을 늘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에게 충분하게 떡이 나누어진다. 무한한 사랑이 그런 충만함을 가져온다. 사랑은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했다.
 
오늘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 배우라는 초대는 우리로 하여금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 사회를 건설하도록 자극하고 있다. 주님은 생명의 양식을 먹는 그리스도인들이 나눔을 통해 전체가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하되 사람 하나하나가 자유인으로 존중받는 사회를 이루라고 가르친다. 그런 자극과 가르침에 충실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오늘 복음은, 모든 사람이 다 먹고도 남은 음식이 있다고 말한다.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고 했는데, 이것은 의미심장한 숫자이다. 열둘은 이스라엘의 열두 사도들, 열 두 지파, 나아가 전체 백성을 의미한다. 나누는 행위는 전체 백성을 살릴 수 있는 길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잘못 이해했다. 예수님을 임금 삼아 먹는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예수님은 군중을 떠나셨다. 예수님은 우리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분이 아니다. 예수님은 나눔을 발생시킨 분이다. 간혹 신앙인들이 하나님에게 조금 바치고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끊어버려야 할 유혹이다.
 
내 것을 이웃과 나누어서 이웃이 하나님의 축복과 풍요로움을 맛보는 그런 나눔이 참다운 기적이다.

<오늘의 기도>
모두가 자신을 지키려고 애쓰는 세상에서 나는 생명의 양식이니 나를 먹으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것을 기쁘게 나누되 거만하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홍승표 목사/길벗교회


토-보고 듣고 알고 계시는 하나님
본문 : 출 3:7~8
찬송가 : 453장
 
하나님을 잘 섬기려면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한다. 호세아 선지자는 멸망의 위기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고 전한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 관점에서 보고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중심은 기도할 때, 보고, 듣고,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다.
 
보고 계시는 하나님
 
본문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계셨다. 요셉이 애굽 총리로 있을 때 기근을 피해 애굽에 온 야곱 가족이 70명이었다. 출 1:6절에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 사람은 다 죽었고"라고 했다.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였다. 요셉의 업적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애굽을 다스리니 그가 신민에게 이 백성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지혜롭게 하자. 전쟁이 일어날 때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고 감독들을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국고 성 비돔과 라암셋 건축하는 무거운 짐을 지워 학대를 하였다.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학대 받는 자기 백성의 아픔을 다 보고 계셨다.
 
듣고 계시는 하나님
 
애굽 간역자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벽돌 만드는 짚을 주지 않고 곡초뿌리를 주워서 전과 같이 하루의 숫자를 채우라 독촉하나, 같은 숫자를 채우지 못했다. 그러자 자기들이 세운 이스라엘 패장들을 때리며 학대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학대 받는 고통 때문에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애굽의 간역자들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계셨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
 
본문에 그 우고를 '알고'계셨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애굽에서 받는 학대와 노동의 짐이 너무 무거워 근심하고 괴로워함을 다 알고 계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겪는 이중, 삼중의 고통과 괴로움, 이러한 우고를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다.
 
내려오셔서 구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애굽에 있는 자기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들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가나인 땅에 인도하리라 하시고 모세를 보내어 구원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미달이다. 만일 경찰관이 교차로에 늘 서 있다면, 운전자들이 속도, 질서를 잘 지킬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보고, 듣고, 알고 계시는 줄 알면 하나님의 질서를 잘 지키며 잘 섬길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미달입니다. 보고 듣고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알고 믿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필옥 목사/명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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