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의 화가, 고갱 예술의 정수 '한 눈에'

낙원의 화가, 고갱 예술의 정수 '한 눈에'

[ 문화 ]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13년 07월 05일(금) 10:59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황색 그리스도' '최후의 만찬' 등
오르세ㆍ워싱턴ㆍ보스턴 등 30여 미술관서 엄선
작품 60여 점 전시, 서울시립미술관서 9월 29일까지
 
서른 다섯 나이에 전업화가의 길을 택한 고갱. 인상주의를 통해 화가로 입문한 그를 미술사는 후기인상주의 대표화가로 기록하고 있다. 브르타뉴의 시골마을 퐁타방에서 과감한 원색사용과 원근법을 무시한 화면분할법으로 현실과 상상을 접목한 종합주의 회화기법을 발명함으로써 미술사의 새로운 장을 연 고갱은 인상주의 시대의 종말을 고한 최후의 인상파 화가로 또한 기록되고 있다.
 
세기말 서구사회에 불어닥친 산업문명의 소용돌이를 뒤로하고 남태평양 타이티섬에서 원시적 생활을 통해 삶과 존재의 근원을 집요하게 화폭에 담아낸 그의 회화는 야수주의, 표현주의, 입체주의 나아가 추상미술에 이르는 20세기 미술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고갱의 예술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가 국내에서 처음 열리고 있다. 오는 9월 29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되는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 그리고 그후'는 보스턴 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워싱턴 국립미술관, 런던 테이트 갤러리, 파리 오르세 미술관 등 30여 미술관에서 엄선된 60여 작품이 전시됐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서는 고갱의 3대 걸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황색 그리스도' '설교 후의 환상'이 포함되어 고갱 예술의 정수를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되는 60여점의 보험평가액은 총 1조 5000억원으로 2007년 반 고흐 전시에서 기록한 보험평가액 1조원을 훨씬 웃도는 가격이라고.
 
사실 고갱은 모두가 꿈꾸는 지상낙원을 주제로 작품을 그려냈지만 정작 그의 삶은 가난이 주는 현실의 불안이 죽는 날까지 따라다녔고 생활의 불안함에서 오는 삶의 고뇌에 대한 성찰이 그의 작품 대부분을 지배한다. 특히 이번에 전시되는 폭 4m에 달하는 벽화양식의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는 탄생에서부터 삶과 죽음에 이르는 인간의 운명을 단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타이티의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어린아기부터 노인에 이르는 12명의 인물을 등장시켜 생명의 기원과 삶의 의미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기술하는 이 거대한 작품을 통해 고갱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이 작품 하나에 예술가로서의 사명을 다 쏟아버린 고갱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을 만큼 '정신적 예술적 유작'으로 남았다.
 
"… 나는 죽기 전의 내 모든 에너지를 이 작품에 쏟아 부었어. 가혹한 현실 속 나의 고통스러운 열정 그리고 한 생명이 탄생하는 것처럼 선명한 내 머리 속의 이미지를 옮겼지…"(고갱이 자살 시도 후 몽프레에 쓴 편지 중에서)
 
종교적으로 고갱은 가톨릭 신자로 알려졌지만 살아가면서 수많은 종교에 매료되었고 결국에는 특별히 믿는 종교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의 작품 '설교후의 환상(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황색그리스도' '최후의 만찬' 등을 보면 천주교와 같은 종교적 소재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황색 그리스도'는 퐁타방 인근의 트레말로 성당에 보존되어 있는 17세기 다색 나무 십자가를 모델로 삼았다. 그는 예술가가 신과 대등한 창조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한 그리스도와 본인의 소명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전부 바친 예술가의 삶을 같은 선상에 둔 것이다. 이 생각은 원하는 만큼 세간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서도 스스로의 예술세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회화에 대한 열정, 불굴의 신념, 그리고 타협을 거부하며 문명을 벗어나 이상향을 꿈꾸고 도전을 즐긴 고갱, 그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귀를 자르게 한 '친구'로도 유명한데, 이 둘은 20세기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거장으로 평가받으며 서로 비교되어 왔다. 그래서일까. 종교적으로도 빈센트 반 고흐가 복음 전파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스스로를 중생구제를 위해 나선 수도자에 비유했던 것과 인간의 본성을 파괴시키는 문명을 비판하고 화가로서의 야망과 사회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한 '성난' 고갱의 작품을 비교하면서 관람해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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