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6월10~15일

[가정예배]6월10~15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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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6월 04일(화) 13:26

월-꿈이 있는 가정
본문:시편 128:1-6
찬송가: 559 장
 
본문은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하면서 불렀던 노래이며 기도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한 성전을 오르면서 뜨거운 열정으로 노래 부르며 기도했던 것은 꿈이 있는 가정이다. 새로운 이스라엘 된 우리도 꿈이 있는 가정을 위한 노래를 부르며 기도하자.
 
꿈은 성격상 환상적인 희망 사항이다. 분명 현실과 차이가 있지만 전혀 동떨어진 것도 아니다. 오늘은 어제의 결과이듯이 내일은 오늘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환상적이고 희망하는 꿈의 가정을 만들자.
 
첫째, 믿음의 가정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다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잘 공경하고 두려워할 줄 아는 믿음의 가정을 만들어야 한다.
 
이 말씀은 꿈이 있는 가정에 관한 대전제이다. 세상만사가 먼저 기본이 있어야 하듯이 우리들 가정의 기초는 믿음이다. 예수 잘 믿는 가족이 되자.
 
둘째, 수고와 열매가 있는 가정이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며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라는 말씀처럼 되어야 한다. 일하지 않고 먹는다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그러므로 수고할 줄 알고 그만한 결실을 얻는 것이 행복이다.
 
수고하고 노력해서 그 대가를 받도록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귀하게 여기며 감사하자.
 
셋째, 사랑의 돌봄이 있는 가정이다.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다고 하였다. 지주를 타고 올라가서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와 어린 감람나무는 돌봄의 대상이다.
 
포도주를 마시듯 흥겹고 즐거운 부부, 지금은 상에 둘러앉아 주는 것을 바라고 있지만 장차 큰 나무로 자라는 기대가 있는 다음세대를 든든히 세우자.
 
토마스 칼라일은 "인간은 희망에 기초를 둔 존재다. 그러므로 나는 내 소유를 다 빼앗긴다고 하여도 오직 한 가지 희망 그것을 갖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꿈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이며 삶의 원동력이다. 꿈이 있는 가정이야말로 행복한 가정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온의 복과 예루살렘의 번영, 그리고 평강의 대물림을 받는 가정은 꿈의 가정이다. 우리 가족들이 믿음으로 살고, 수고하므로 열매를 얻고, 사랑의 돌봄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꿈의 가정을 만들자.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예루살렘 성전을 오르면서 불렀던 순례자들처럼 기도합니다. 믿음으로 살고, 수고하여 열매 맺게 하시며, 사랑의 돌봄으로 꿈의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권영욱 목사 / 경주시민교회


화-예수를 믿는 다는 것
본문: 이사야 57:15
찬송가: 365장
 
중국의 어느 농촌에 어느 신자가 논에 물이 다 말라서 양수기로 밤을 새워 물을 퍼 논에 채웠다. 그리고 이튿날에 논에 가 보니 아래 논 임자가 물꼬를 터서 물을 다 빼어 자기 논에 채웠다. 신자는 화가 났지만 참고 다시 물을 퍼서 논에 채웠다. 그리고 다음날 가 보니 또 아래 논으로 물이 다 빠져 버렸다. 신자는 화가 너무 나서 목사님께 찾아가 사연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목사님은 "당신이 무엇을 할까 생각하지 말고, 주님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 뜻에 순종하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은 오늘 밤 아래 논에 물을 먼저 채우고, 당신의 논에 물을 채우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아래 논 임자가 찾아왔다. "당신이 나를 죽이려고 좇아올 줄 알았는데 도리어 내 논에 물을 채워 주다니요! 예수를 믿는 것이 그런 것입니까? 나도 당신처럼 예수를 믿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 것은 돌이키는 것이다. 하던 일을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따라 돌이켜 새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을 회개라고도 한다.
 
본문은 이사야가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 뒤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할 것이라고 선포하는 내용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 범죄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지만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다시 구원의 은총이 임할 것이라고 선포한다. 하나님과 우리 관계에서 가장 자주 일어나야 할 일은 회개의 사건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회개의 의미는 무엇일까?
 
첫째, 버리는 것이다. 회개는 마음과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 욕심을 채우려는 것을 바꾸어 마음을 비우고 탐욕을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성도의 탐심의 죄악으로 인한 것임을 깨닫고 그 탐심을 버리는 것이다.
 
둘째, 겸손하여 낮아지는 것이다. 우리의 영이 소생하려면 통회하고 겸손하여 낮아져야 한다.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셋째, 위로와 고침을 주신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겸손하여 낮아진 자에게 하나님은 위로와 치료를 허락하신다.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한 우리 마음은 평강이 없다. 죄를 자백하고 회개한다면 마음의 무거운 짐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영이 소생함을 입을 것이다.
 
<오늘의 기도>
진정한 회개로 새롭게 거듭나게 하옵소서. 우리의 슬픈 마음을 기쁨으로 소생시켜 주시고, 삶과 몸과 생활을 고쳐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길용철 목사 / 숭덕교회


수-자라가는 신앙
본문: 사사기 18:1-10
찬송가: 312장
 
이 시대의 화두 가운데 중요한 화두는 어떻게 하면 건강과 젊음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건강식품이나 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몸 안 생성되는 성장 호르몬이다. 성장 호르몬이 잘 생성되어야 건강과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몸 안 성장 호르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의 성장 호르몬이다. 우리 속에 믿음의 성장 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되기를 축복한다. 그래서 믿음이 자라나고 믿음이 성장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12지파 가운데 단지파가 나온다. 단지파는 불행하게도 믿음이 점점 퇴보하고 소멸되어 가는 지파이다. 그 이유는 삶의 태도에 있었다. 본문 1절의 말씀에 단지파는 거주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여호수아 19장을 보면 이미 기업분배가 끝났었고, 단지파에게 분배된 지역에는 아모리 족속이 살고 있었다. 아모리 족속은 굉장히 강한 족속이라 저들을 이길 수 없다 생각한 단지파는 그들을 피해 산속으로 간다. 단지파는 자기들이 거주할 곳을 찾다 평안하고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라이스'를 찾게 된다. 단지파는 순박한 사람들을 침략해서 그들을 죽이고 불을 지르고 성을 빼앗았다. 단지파가 주님을, 상급을 바라봤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이 맡기신 기업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싸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에 쉬운 길, 편안한 길만 갔고 그래서 소멸되는 지파가 되고 말았다. 우리 신앙도 자칫 잘못 하게 되면 퇴보할 수 있는 것이고 소멸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서 깨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주님이 주시는 상급은 나의 삶의 태도와 연관된다. 그 상급을 바라는 사람은 오늘 쉬운 길, 편한 길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 속에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사라져가고 직장에서나 어디에서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숨어서 믿는 신앙, 미지근한 모습이 팽배해져 가는 시대이다. 신앙은 편함을 좇는 것이 아니다. 쉬운 길을 가는 것이 아니다. 부지런하고 열심을 품고 열정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것이 성장하는 신앙이다. 빌립보서 3장의 사도바울은 "오직 한 일, 곧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적들을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주시는 부름의 상을 위해서 좇아간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루하루 헛되이 보내지 말고 쉬운 길만 찾지 말고 주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며 복되게 여러분 자신을 드리며 살 수 있기를 축복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의 신앙이 자라가는 신앙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에게 주어질 상급을 바라보면서 주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며 그 일에 열심을 다해 복된 길, 바른 길, 주를 섬기는 길을 걸어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허태호 목사 / 새희망교회


목-믿음의 눈
본문: 민수기 13:25~33
찬송가: 545장
 
좋은 환경과 여건이 성공을 보장한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태도와 목표가 좋은 여건보다 훨씬 더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어려운 처지이지만 반드시 이겨내겠다는 태도와 목표로 성공한 경우를 주변에서 자주 본다. 목표와 태도를 한마디로 줄여 말하면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드시 이룰 수 있고 이루겠다는 믿음과 확신이 실제 많은 경우 성공으로 인도한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런 믿음의 태도를 가지고 어떤 일에 임하곤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믿음의 태도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현실에서 그 있던 믿음이 약해지거나 모두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열두 정탐꾼은 당대 최고의 전사였고 신앙과 믿음의 태도 또한 누구보다 좋은 사람으로 선발되었다. 그런데 정탐꾼 12명 중 10명이 정탐 후에 가나안 땅에 대해 악평을 했다. 왜 믿음이 약해져 버렸을까?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을 호평했다. 어떻게 두 사람은 여전히 믿음의 태도를 견지할 수 있었을까? 이유는 한 가지였다. 바로 '눈'의 차이였다. 10명의 정탐꾼은 보이는 물량적인 수치를 우선해서 보았고 그것으로 우열과 강약과 성패를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비록 물량적으로는 미약하더라도 그 수량 대신에 하나님을 보면서 애초에 지니고 있었던 그 믿음의 태도를 계속해서 견지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물량적 수치 대신 하나님을 보면 그분의 능력이 보인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사람 대신에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더 나아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보았다. 바로 이것이 약해질 것만 같았던 믿음의 태도를 견고하게 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이 믿음의 눈으로 할 수 있다는 태도를 가지면 주저하지 않고 한번 해 보게 되고, 해 보면 할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과 힘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 상황마저도 유리하게 믿음의 사람을 돕는 쪽으로 선회한다. 하나님이 이기고 성공하게 하시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의 물량적인 것 대신에 하나님을 보게 되면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나게 된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상황 대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자, 이미 그들의 손에 붙여주시고 이미 주었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던 것이다.
 
현실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자. 이 믿음의 눈이 있으면 믿음의 태도를 지킬 수 있다. 쟁쟁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견인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믿음의 눈을 열어주옵소서.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기엽 목사 / 충무교회


금-모든 것을 이룬 자들
본문: 마 7:22-27
찬송가: 420장
 
얼마 전, 40대 후반쯤 된 부부가 상담 신청을 했다.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는 동네에 품위 있게 빛나는 벤츠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게다가 명품 옷에 명품가방, 온통 명품 일색이었다. 서울 대형교회에 다닌다는 그들은 아이의 일기장을 보여주며 한숨을 쉬었다. 일기장에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분노, 좌절이 자신을 향해 비수가 되어 쏟아지고 있었다. 16살 아이는 초점 없는 눈, 무기력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부모는 자조 섞인 질문을 던졌다. "모든 것을 해주었다. 모든 것을 해주었는데 왜?"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대 기독교는 척박한 땅에서 핍박이라는 자양분을 먹고 자라며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피웠다. 우리나라 근대사를 돌이켜보면 만약 기독교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나라자체, 존립마저 의심스럽다. 가마니를 깔고 앉은 허술하기 그지없는 예배당. 십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발품을 매일 팔아가며 새벽기도 한 번 빠진 적 없이 그들은 그렇게 사모하는 마음으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 눈물로 씨를 뿌렸다."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에서 가진 것 하나 없는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행함으로, 오직 그것 하나로 반석위에 가정을, 교회를, 나라를 세워나갔다.
 
모든 것을 해주었다는 세대, 물질적으로 결핍이 없는 세대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 간절함을 잃어버렸다, 물질문명에 길들여진 이 세대는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더, 더, 움켜쥐어 보려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물이 흘러가버리듯, 모래가 빠져나가듯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읽다 보면 인간의 속성을 꿰뚫는 문학적 상상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과학문명과 물질문명의 결합은 우리를 향해 과감한 유혹의 손짓을 한다. 하지만 반전은 뜻하지 않은 곳에 숨어 있다. 25절 말씀을 보면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인생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정답이다. 한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실패와 시련, 시행착오를 겪어내야 하는지 우리는 안다. 많은 것을 누려온 우리. 마치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우리의 내면은 더욱 공허해지고 삶은 불안하다. 하루하루 위태롭게 살아가다 결국 모래만 흩날리고 있다. 교회적 복음서이며 고뇌에 집중하는 복음서인 마태복음을 통해 이제는 우리의 삶이 모래에서 반석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한다. 믿음의 선진들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지만 오직 하나, 하나님의 말씀과 용기 있는 행동을 선택한 그들이 결국 모든 것을 단단하게 이루어 낸 것처럼.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물질을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 주님의 음성을 따라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순희 목사 / 하늘꿈교회


토-불평하는 도둑들
본문: 마 20; 1~16
찬송가: 310장
 
지난 여름 선후배 목사님 부부들과 휴가 겸 영화를 보게 되었다. 1300만의 관객을 동원한 '도둑들'이란 흥행작이었다. 무더웠던 여름 많은 사람들이 찾은 이 영화는 다소 뻔한 작품과는 달리 시종 내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길 수 있었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도둑들의 이야기였지만 지금도 강렬히 남아있는 장면 하나는 차 안에서 수갑이 채워진 채 바다에 빠져 죽음 직전까지 갔던 여주인공 펩시를 위해 '태양의 눈물'이라는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는 목적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망가던 길을 돌이켜 자신에게 닥칠 급박한 위기를 계산하지 않고 바다로 뛰어든 남주인공 마카오 박의 행동이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그녀의 목숨을 건져준 것에 대해 말하지도 않고 자랑하지도 않은 주인공의 모습이 자꾸 회상되었다. 비록 돈과 물질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속이기를 힘쓰는 도둑들의 이야기지만 그 장면만큼은 필자에게 묘한 교훈을 남겼다. 우리는 얼마나 계산하고 자랑하고 소문내고 사는지….
 
오늘 성경은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는 주의 말씀이다. 이 역설적인 메시지는 무슨 말씀 끝에 하신 걸까?
 
천국은 마치 포도원 품꾼의 이야기와 같다고 하신 비유 끝에 남기신 말씀이다. 주인이 품꾼들에게 일을 맡기는데 아침 9시부터 시작하여 몇 번에 걸쳐 오후 5시까지도 여전히 일거리가 없어 낙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속히 들어가 일하도록 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문제는 품삯을 계산할 때 발생했다. 9시부터 일한 사람들에게 약속된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것을 시작해서 마지막에 1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다음부터 잘하자며 품삯을 주었더라면 큰 요동 없이 넘어갔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나님 나라의 특성이 그랬던가. 겨우 1시간 일한 사람부터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것으로 시작하니 종일 수고한 사람들은 대박을 외치며 기대했다가 막상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에 그치자 온갖 실망과 원망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억하자. 인생은 성적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행복하고 감사하다. 주인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시되 우리의 시간과 형편이 어떠하든지 일하기를 원하고 기뻐하신다. 오늘 품꾼으로 불러 일을 맡기셨음을 잊지 말고 감사하자. 한 때 할일 없어 힘겨웠던 시간들이 있지 않았던가. 나는 감사하는 나중 된 자일까 불평하는 먼저 된 자인가. 1시간뿐 일지라도 개의치 않으시고 불러주시는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먼저 된 자로서 항상 먼저 되는 축복의 인생이 되기를 원한다. 이번 여름에도 신앙의 의미가 담긴 멋진 작품을 보는 행운이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의 기도>
비교하거나 불평, 원망하는 자 되지 않게 하옵소서. 자랑하는 자 되지 않게 하시고, 묵묵히 충성하며 항상 불러주시고 일꾼 되게 해주신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종엽 목사 / 함께하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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