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6월3~8일

[가정예배]6월3~8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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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 21일(화) 15:51

월-말씀을 깨닫고 헌신하자. 
본문: 눅 10:38 -42  
찬송가: 546
 
베다니 마을에 한센병자 시몬의 집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삼남매를 시몬의 집 자식으로 불렀다. 마을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던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 그 가르침에 큰 은혜를 받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완고한 어른들이 없는 그들의 집은 예수님이 베다니에 오실 때마다 마음 편하게 머무시는 집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믿고 의지하던 마르다의 오빠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다. 오빠의 죽음 앞에 좌절하며 슬퍼하던 자매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죽어 나흘 된 나사로를 무덤에서 다시 살려 주셨다.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어 주신 이 은혜는 이 가정에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큰 은혜가 되었다. 받은 은혜가 커야 크게 섬길 수 있게 된다.
 
그 후 십자가를 지시기 전 유월절에 베다니에 오신 예수님은 자신이 속죄의 제물로 죽으실 것에 대하여 가르치셨다. 마리아는 이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의 감동을 통해서 예수님의 죽으심이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온 인류의 속죄의 제물로 죽으실 예수님을 향기로운 제물로 구별하는 일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마리아는 자신의 가장 귀한 재산 1호 향유 옥합을 가지고 나와 그것을 아낌없이 개봉하고 어린 양 제물 되실 예수님에게 부어 드린 것이다.
 
이 일을 보고 제자들이 쓸데없이 비싼 향유를 허비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마리아가 행한 일은 예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이해함으로서 행한 봉사였다. 예수님은 그것이 성령의 감동으로 된 일임을 아셨다. 그 뜻을 아시고 칭찬하시며 이 일을 기념하도록 명하셨다.
 
기념하도록 하신 것은 이후의 모든 봉사자들이 주님의 뜻을 이해하고 성령께서 감동해 주시는 말씀으로 봉사하라는 뜻이다. 교회에서 주님의 일을 하려는 주의 일꾼들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여야 한다.
 
교회에서 자기를 자랑하고 나타내기 위해서, 자신의 뜻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주님의 뜻과 무관하게 제 마음대로 일하려 하는 일꾼들은 교회의 시험거리가 되기 쉽다. 이들은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을 때에 쉽게 불평하고 원망하며 낙심하게 된다.
 
먼저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경청하자. 내게 주시는 말씀이 심령에 들려지고 생각나고 깨달아질 것이다. 그렇게 주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주님과 교회에 유익한 일을 하는 일꾼이 될 수 있다. 주의 말씀을 내 심령에 품고 나의 품은 뜻과 주님의 뜻이 같게 되어져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감당하자.
 
<오늘의 기도>
주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영의 귀를 열어 주옵소서.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의 지혜를 주옵소서. 깨달은 말씀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섬길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광영 목사 / 삼덕교회


화-자비를 베푼 사마리아 사람
본문: 누가복음 10:25~37
찬송가: 503장
 
영국의 중세 신학자이며 철학자인 프란시스 베이컨은 거미, 개미, 꿀벌의 특성을 통해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거미형의 사람, 개미형의 사람, 꿀벌형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거미형의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약한 사람들이 걸려들도록 해서 그 법망에 걸리면 그걸 이용해 자기의 유익을 취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남에게 피해를 주며 사는 사람,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개미형의 사람은 부지런히 노력하며 산다.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고 유익도 주지 않고 오로지 자기만을 위해 사는 이기적인 사람으로서,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다. 꿀벌형의 사람은 열심히 노력하고 많이 수고한다. 자기도 살고 남에게도 유익하게 하는 사람으로서,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람이다.
 
오늘 본문은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는 어떤 율법교사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답변하시면서 하신 비유로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라고 한다. 어떤 유대인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마침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고, 레위인도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여행하는 중에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최선을 다해 구해 주었다. 이처럼 오늘 본문에도 세 종류의 사람이 등장한다. 거미형의 사람은 강도이다. 강도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어떤 사람의 소지품도 몽땅 빼앗고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게 하였다. 개미형의 사람은 제사장과 레위인이다. 제사장은 레위인 중에서 다시 성별된 아론의 자손들로서 직접 하나님께 제사하는 직책이었고, 레위인은 12지파 중에서 성별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지파이다. 그런데 제사장도 레위인도 그곳을 지나다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는 그 곳을 피해갔다. 꿀벌형의 사람은 사마리아인이다. 사마리아인은 그곳을 지나다가 강도 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겨 최선을 다해 구해 주었다. 고대 역사를 보면 사마리아 사람도 본래 이스라엘 백성이었다. 그러나 주전 721년경에 북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에게 멸망당하였다. 앗수르 왕 티글랏 빌레셀 3세의 인구혼혈정책으로 인해 북이스라엘은 더 이상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혈통의 순수성을 내세울 수 없는 사마리아인이라는 혼혈족이 된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시하고 미워하고 개처럼 취급하였고, 상종을 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인생에 강도를 만나 신음 중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을 생각하면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축원한다.  
 
<오늘의 기도>
긍휼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 이제부터는 갈등과 편견의 벽을 넘어 복음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며,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고백인 목사 / 성민제일교회


수-사랑과 믿음
본문: 약 2: 1-13
찬송가: 427장
 
갈라디아서 5장 6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라고 설명한다. 믿음의 이러한 양면성이 본 장에서 논의된다. 근본적인 개념은 진정한 성경적 믿음이란 죽은 것이 아니며 사랑으로 나타나고 행함으로 나타난다는 데 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믿고 가슴으로 믿지 않는다. 이들은 기독교의 사실을 믿는 역사적인 신앙은 가지고 있으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믿는 구원받는 신앙은 가지고 있지 않다. 믿음의 가정들은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같은 믿음은 사랑으로 입증될 수 있다. 우리는 단순히 믿음을 소유하고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신앙을 고백한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으며, 사단도 일반적인 의미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생각할 때 믿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란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인격적인 믿음을 말한다.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란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명확한 위탁이다. 여기서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타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또한 그들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고 생각함으로써 사랑을 표할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정죄해서는 안된다. 가난한 사람들보다 부자들을 더 존중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무서운 죄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부요하도록 하시기 위해 가난하게 되셨기 때문이다.
 
과연 사람을 외모로 취한다는 것은 그처럼 죄악된 일인가? 한 가지 예로, 그렇게 하면 우리가 판단하는 자가 되나, 하나님만이 사람을 정직하게 판단하실 수 있다. 여기서 '차별한다'는 말은 '나눈다'는 뜻이며, 그것은 1장 8절에서 제시한 두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우리를 되돌아가게 한다.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자가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언급하셨다. 야고보는 부자들이 성도들을 압제하며 그들을 법정으로까지 끌고 간다고 상기시킨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은 죄이며, 계명 하나를 어기는 것은 율법 전체를 범하는 죄가 된다. 동일한 하나님께서 모든 계명을 주셨으며, 모든 계명을 순종하고 실천해야만 한다. 우리는 심판을 받을 자처럼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데, 이는 우리가 모세의 법으로서가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기록된 사랑의 법, 보다 준엄한 '자유의 법'으로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성령 하나님, 우리로 온전한 믿음 안에서 사랑으로 행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성준 목사 / 경동제일교회


목-참 빛, 생명의 빛
본문: 요한복음 1:1- 13
찬송가 : 84장
 
우리들은 좋은 것을 가지고도 그것이 좋은 줄 알지 못하며 살고 있다. 오래 전 유홍준 교수의 문화유산답사기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그는 남도로부터 문화유산을 소개하는데 강진에 다산초당, 백련사, 영암 월출산의 무위사, 담양의 소쇄원, 면앙정, 취가정, 환벽당 등을 다뤘다. 책을 보고 책에 나오는 문화유산을 찾아가 보았다. 책을 읽었기에 그 아름다움과 훌륭함과 단아함이 보였다. 만약 책을 읽지 않고 그냥 봤더라면 그저 평범해 보였을 것이다. 그는 책에서 말하기를 '온 국토가 박물관'이라고 했다. 필자가 살고 있는 광주에서도 몇 년 전 지하철 공사를 하던 중 옛 우물이 발견되었다. 나주 반남에는 고분이 얼마나 많은지! 그런데 그 고분 위를 나주 임씨 선산으로 썼다고 한다. 그 고분에서 금관, 금 신발, 놋거울이 나왔다. 우리가 밟고 다니는 흙도, 돌, 공기, 물, 하늘, 저 태양도 국보나 보물로 정해지지 않았어도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귀히 여기는 보석, 다이아몬드 없이는 살 수 있지만 흙, 공기, 물, 태양 없다면 어떻게 살겠는가?
 
본문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 말씀, 하나님, 만물을 지으신 분, 생명, 빛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지만 어두움인 사람들이 빛을 깨닫지 못한다고 말한다. 빛이 비추이고 있음에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언젠가 비가 많이 내리는 날 비행기를 탄 적이 있다. 조금 후에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올라 구름위로 올라갔을 때 눈부신 태양이 떠있고 하늘은 파랗고 하얀 구름은 겹겹이 쌓여 있었다. 탄성이 나왔다. 온 땅이 어둡고 빛이라곤 없어보였는데 먼 하늘의 태양은 여전하구나! 당장의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여 태양이 없는 것이 아님을 통해 새삼 많은 것을 느꼈다.
 
예수님은 빛이시며 빛으로 오셨다. 빛은 생명의 빛이기에 생명을 이루고 생명의 능력이다. 예수님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예수님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 안에 영생이 있고, 예수를 영접하여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있다.
 
그분은 말씀이시며, 하나님이며, 태초부터 계신 분이다. 이 세상 만물이 그 분 없이는 지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의 몸을 누일 곳이 없었으며 알아보지도 못한 것은 우리들의 어리석음이자 죄가 아니겠는가? 이 죄를 어떻게 할까? 빛이신 예수님을 보아야 한다. 그 빛을 받아야 한다. 온 세상에 깔려 있는 보물을 내 것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이 귀한 보물을 널리널리 나누어 주어야 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기 바랍니다. 귀를 열어 주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열어 주셔서 주님이 주신 온갖 보화를 알고 또한 나누어 주는 백성이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태완 목사 / 옥합교회 


금-온전히 맡기세요.
본문: 시 46:1-11
찬송가: 310장
 
한 수도사가 올리브 나무 한그루를 심었다. 그리고 기도한다. "이 연약한 나무뿌리에 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단비를 내려 주옵소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비를 주셨다. 또 기도한다. "주여, 이 나무가 잎사귀가 피기위해 태양 빛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 기도를 들으셨다. 구름을 걷고 햇빛을 비춰주셨다. 또 기도한다. "주여 이 나무가 더 튼튼해지기 위해서는 때론 서리도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자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 나무 잎사귀 사이사이 작고 빛나는 서리를 맺게 하셨다. 그런데 그 작은 나무는 얼마 살지 못하고 말라 죽어버렸다.
 
그 수도사는 동료의 방을 찾았다. "왜 그 나무가 말라 죽었을까요? 무엇이 부족했을까요? 도대체 제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동료가 입을 연다. "나도 작은 나무 한그루를 심어 키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제 나무는 아주 잘 자라납니다. 저도 당신처럼 하나님께 나무를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나무가 잘 자라게 해주세요. 이 나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시옵소서. 바람이던, 햇빛이던, 또한 비나 서리던, 주님께서 때를 따라 주시옵소서." "형제님 저는 이 나무를 하나님께 맡깁니다. 이 나무를 심은 것은 나지만, 이 나무를 만드신 이는 하나님이시잖아요. 그분은 나보다 더 이 나무를 잘 아시거든요. 이 나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그 것과 그 때를 아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내 방식이나 내 생각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신뢰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하여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 자신을 믿어달라고 떼를 쓴다. 탕자가 그 아비에게 강력하게 간구한다. "아버지 일단 믿어달라니까요. 제 몫을 주세요. 제가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니까요"
 
내게 필요한 것을 주께서 주심을 믿고 간구하는 것 좋은 믿음이다. 주께서 들어 주실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생각을 온전히 신뢰하고 모든 것을 맡기는 것, 우리 인생의 운전대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겨버리는 것, 주님의 다스림에 온전히 내어드리는 것, 그것이 보다 더 훌륭한 믿음이다.
 
은혜의 영역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은혜는 주인이 선택하는 것이고, 참 풍요로우신 자가, 나를 위해 선택하여 주는 선물이다. 은혜는 나의 교만을 꺾은 후 들려오는 그분의 소리요 그분의 손길이다.
 
반드시 그의 언약은 이루어진다. 그의 은혜는 부어질 것이다.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5절)." 하나님이 새벽에 도우실 것이다.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은 늦은 적이 없다. 내가 정해놓은 내 시간, 내가 정해놓은 내 방법을 고집하지 말고, 그의 예비하신 일들을 기다리라.
 
<오늘의 기도>
모든 것을 지으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주님의 주권을 인정합니다. 오셔서 다스려 주옵소서.우리의 인생에서 주의 뜻을 이뤄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안성국 목사 / 평안교회


토-풍성하고 충만한 삶을 위하여
본문 : 엡3:14-21
찬송가 : 368장
 
우리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왕의 자녀답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세상 앞에서 무기력하고, 작은 어려움에도 좌절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산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그것을 풍성하고 충만한 삶이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풍성'이 양적인 강조라면, '충만'은 질적인 강조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풍성하고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본문의 사도 바울처럼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담대하게 구해야 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구해야 할까? 본문의 사도 바울의 기도를 통해서 살펴보면 첫째,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건하게 되기를 구해야 한다. 현대는 외모지상주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외모를 가꾸는 데 관심이 많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겉사람보다 속사람에 더 관심을 갖고 열심히 가꾸어야 한다. 겉사람보다 속사람이 강건해져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속사람이 강건해질 수 있을까? 16절을 보면 "그의 성령의 능력으로 너희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시오며"라고 했다. 즉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의 능력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며 간절하게 기도해야 한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시기를 구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신다는 것은 단순히 거한다는 말이 아니라, 주인이 되셔서 계신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계실 때, 손님으로 계시기를 원치 않으신다. 손님으로 계시는 한 그분은 아무런 역사도 하지 않으신다. 주인으로 계셔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께서 내 마음의 모든 영역, 내 생각의 모든 영역들을 온전히 지배하는 주인이 되셔야 하나님의 자녀다운 풍성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위해 늘 기도해야 하고, 또 주인되신 주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해야 한다.
 
셋째, 그리스도의 넘치는 사랑을 알기를 구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알게 되면, 우리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가를 알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풍성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의 넘치는 사랑을 깨달아 알기를 간절히 구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응답해주시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풍성하고 충만한 삶의 길이 있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로 하여금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풍성하고 충만한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병철 목사 / 오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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