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모라토리엄 통해 살아난 선교지, 케냐와 필리핀

선교 모라토리엄 통해 살아난 선교지, 케냐와 필리핀

[ 교계 ]

장창일 기자 jangci@pckworld.com
2013년 05월 15일(수) 14:38
자생력 키웠더니 PCEA 교세 5배 증가
UCCP, 정체성 회복ㆍ선교관계 재정립 …'선교 의존형'에서 '선교 동반자'로
 
   

1971년 동아프리카 장로교회 총무인 존 가투(John Gatu) 목사가 "서구 선교사들의 지도력과 재정지원이 현지교회의 자립과 자치를 막고 있다"면서, "(아프리카의) 미래에 대해 선교사와 토착교회가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 위해 아프리카 선교사들이 5년 동안 철수하는 게 어떤가"라는 제안으로 부터 시작됐던 이른바 '선교 모라토리엄'(Moratirium) 논란이 과연 "WCC가 선교를 버렸다"라는 근거없는 오해만을 유산으로 남겼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존 가투 목사가 속한 동아프리카 장로교회(PCEA)가 선교 모라토리엄을 통해 교세가 크게 늘어난 대표적인 사례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선교지였던 케냐,특히 동아프리카 장로교회는 선교 모라토리엄을 선포한 뒤 현재까지 교인이 5배 정도 성장해 450만명에 육박하는 세계 최대의 장로교단으로 성장했다. 본교단이 몇 해 전 '300만 성도운동'을 진행했던 것을 감안하면 400만명이 넘는 교세가 얼마나 큰지를 알수 있다.
 
케냐에서 동아프리카 장로교회의 영향력은 실로 막대해 졌다. 이 교단의 총회장은 국회가 개원할 때 참석해 대통령과 나란히 자리할 만큼 사회적 비중이 크다. 특히 동아프리카 장로교회의 성장은 타교단의 성장도 견인해 케냐 교회는 걸출한 인물들을 연이어 배출했다. WCC 6대 총무를 지낸 사무엘 코비아 목사가 케냐 감리교회 출신으로, '아프리카 종교와 철학'의 저자 존 S. 음비티 박사 같은 세계적인 신학자도 케냐 출신이다.
 
이처럼 40여 년만에 동아프리카 장로교회의 교세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교단의 자생력을 키운 데 근본 이유가 있다. 존 가투의 제안 이후 동아프리카 장로교회는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였다. 1970년대 초반부터 교세가 감소하기 시작했던 스코틀랜드장로교회와의 대화를 통해 선교지 이양 작업을 순조롭게 진행시켰다. 동아프리카 장로교회는 스코틀랜드장로교회가 가지고 있던 선교지 재산을 자력으로 구입했고, 선교사들은 약속대로 5년 간 케냐를 떠났다. 동아프리카 장로교회는 이후 '자립'을 뜻하는 스와힐리어인 'JITEGEMEA'(지테게메아)를 교단의 로고로 정한 뒤 이를 교단 본부를 비롯해서 신학교 건물 입구에 걸고 각종 교재 표지로 사용하는 등 교단의 정체성 자체를 완전히 '자립'에 맞췄다.
 
1998년 케냐로 파송받은 뒤 동아프리카 장로교회와 협력사역을 하고 있는 본교단 이원재 선교사는 "선교 모라토리엄의 근원지라고 볼 수 있는 케냐는 결국 이 정책을 통해 기독교가 놀랍게 성장하는 경험을 했다"면서, "현재 케냐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은 많은 수가 동아프리카 장로교회와 협력사역을 하고 있고 서로에게 큰 유익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필리핀그리스도연합교회(UCCP)도 선교 모라토리엄을 통해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선교적 관계를 재정립한 사례로 유명하다. 선교 모라토리엄에 대한 요구는 존 가투 목사와 같은 해인 1971년 필리핀감리교회 지도자 낙필 감독도 필리핀기독교교회협의회(NCCP)에서 제기했고, UCCP는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연구해 동반자선교라는 선교정책문서를 발표했다. 이 정책문서에 따라 UCCP는 외국의 동역교단이 보내는 재정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산하 교회들이 선교지원비 이름으로 교회 예산의 22%(이중 13%는 노회 운영비로 집행되고, 9%는 총회 사업비고 배정된다)를 모아 다양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또한 교회자립을 위한 7개년 발전계획을 채택하고 총회 전도부와 노회 전도부가 교회개척을 위해 협력하는 계기도 바로 선교 모라토리엄 선언이 가져다 준 효과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UCCP와 협력사역한 한경균 목사(뉴질랜드 장로교회 아시안 사역 총무)는 "만약 1970년대에 필리핀에서 선교 모라토리엄에 대한 고민이 없었고 UCCP가 온정주의, 혹은 일방주의 선교가 가져다 주는 선교자원에 연연해 의존형 교단으로 남았다면 동반자선교를 위한 선교문서를 비롯해서 정책을 개발하고 선교 동역자들의 은사를 공유하지 못했을 것이다"면서, "개인적으로 UCCP 안에서 내가 배우고 누렸던 동반자선교는 선교유예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선교 지도자들의 용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믿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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