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4월8~13일

[가정예배]4월8~13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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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4월 04일(목) 11:07

월-선택의 결과
본문: 창13:8-13 
찬송가: 384장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한 광고처럼 선택은 순간적으로 하지만 그 결과는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 선택을 잘 하면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만 한번 잘못 선택하면 평생 돌이킬수 없는 후회의 삶을 살 수도 있다.
 
오늘 내가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아브라함이 헤어지는 장면이다. 어느 날 아브라함의 종들과 롯의 종들이 다툼을 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브라함이 조카를 불렀다. "우리는 한 친족이 아니냐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했다.
 
그때 롯이 선택한 곳이 소돔과 고모라였다. 롯이 보기에 그 땅은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급땅과 같았더라"고 했다. 그 땅을 선택하면 성공할 것 같고 잘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나중에 그 땅을 선택한 결과가 어떤가? 그 땅의 사람들이 죄가 너무 많아 하나님께서 불로서 심판하게 된다. 그래서 롯에게 속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이 곳을 떠나라고 했을 때 롯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기고 떠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소돔성은 불의 심판을 받아 모두 잿더미로 변했고 롯의 처는 탈출 중 뒤를 보지말라는 천사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 죽고 말았던 것이다.
 
잘 살아보려고 성공하려고 선택했던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그동안 모아놓은 재산이 다 불에 타버리고 아내가 죽고 두 딸과 함께 맨몸으로 도망쳐 나오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한번 잘못 선택한 결과로 비극을 맞게 된 것이다. 잘 되기를 원해서 선택했는데 실패하고, 좋은 것을 선택했는데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선택해야 후회하지 않는 선택, 성공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시편73편 28절에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네게 복이라"고 했다. 직장을 선택해도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직장을, 사람을 선택해도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비록 아브라함이 눈으로 보기에 좋은 곳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큰 복을 약속해 주셨다. 내가 좋은 곳을 선택한다고 선택을 잘 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아브라함처럼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며 살아가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항상 우리의 눈을 열어주셔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의 길,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면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영태 목사 / 도동중앙교회


화-부활의 신앙
본문 : 사도행전 3:1-10
찬송 : 165장 
 
기독교의 기원은 성탄절이 아니라 부활절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을 부활의 증인이라고 했다. 어떤 종교이든지 성탄절은 있다. 그러나 고난절과 부활절을 가진 종교는 기독교가 유일하다. 기독교가 부활절을 봄으로 제정한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봄은 생명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활절에는 전통적으로 달걀을 나누기도 한다. 껍질은 깨뜨리고 나오는 새로운 생명체에서 부활의 상징을 보기도 한다.
 
기독교가 출발할 당시는 참으로 보잘 것 없어 보였다. 예수님의 주 활동무대도 유대 사회의 중심부인 예루살렘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변두리 촌락 갈릴리였다. 또한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셨다. 제자들은 어떠했는가? 복음서에서 보이는 제자들의 모습은 유명한 가문이나 뛰어난 학식이 없어 보인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계실 때에 그들은 다시 그들의 예전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 좌절 속에 있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옵고 경배하면서도 아직도 의심하는 제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 보여진 제자들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제자들은 유대라고 하는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서 로마로 돌진하는 놀라운 파장을 일으킨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어떤 사건이 그들을 변화시켰을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는 체험이 그들을 변화시켜 놓은 것이다. 
 
본문에서의 베드로와 요한의 사역을 보면 십자가에서의 죽음으로 예수님의 사역이 끝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활과 제자들의 증언으로 더욱 힘 있게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있는 것은 은과 금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고 날마다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했던 그 사람의 모습이 곧 자신들의 나약하기 그지 없었던 예전 모습과 겹쳐졌을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 해볼 수 없는 상황에 있었던 자신들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의해 일으킴 받고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 새로운 사명자가 되었다.
 
우리가 가진 신앙의 기초는 부활신앙에 든든히 세워져야 산다. 부활신앙 즉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는 사람에게는 죽음도 무색해 질 수 밖에 없다. 부활신앙이 없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이 삶의 전부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부활신앙이 체험되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흑암 중에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 어두웠던 이 땅위에 어둠을 뚫고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우시옵소서. 그리고 주님 없이 사는 삶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사망권세를 이기신 주님처럼 우리도 세상에서 어둠을 이기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경옥목사 / 월정교회


수-선택의 기로에서
본문: 로마서 12:2 
찬송가: 312장
 
우리가 입에 자주 떠 올리는 말 중에 '하나님의 뜻'이란 말이 있다. 너무나 중요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해도 많은 게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해하여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뜻'이란 말을 떠올리는 경우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상황일 때이다.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한 번 맞춰보라고 하는 것인가 라는 오해를 많이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숨기실 필요가 없다. 혹 하나님이 우리에게 감추어야 할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를 골탕먹이거나 수렁에 빠뜨리려는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를 위해 선한 계획, 선한 마음, 선한 뜻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택의 기로에서 생각해야 할 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의 이익이나 욕망 때문에 결단이 쉽지 않는 것인지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분명하게 말씀을 통해 알고 있다. 그래서 명백하게 나쁜 일과 좋은 일 사이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이런 경우에는 반드시 주님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둘째,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는 중립적인 선택의 기로가 있다. 이런 때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괜찮다. 이유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목적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신의 특성이나 성향을 고려해서 어떤 것이 내가 잘 할 수 있고, 이웃에게 유익이 되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지를 살펴서 선택하면 된다.
 
선택의 기로에서 더 중요한 문제는, 사실 '어떤 선택을 하는가 보다 어떤 자세로 살아갈 것인가'이다. 왜냐하면 선택이 결과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자세가 결과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좋은 선택을 하고 불성실한 자세로 인해서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고, 덜 좋은 선택을 하고도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선택을 했으면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신실한 삶을 각오하고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이 들 때 오늘의 이 말씀을 기억해서 제대로 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철인 목사 / 금산교회


목-기다림
본문: 시편 130:1-8
찬송가: 312장
 
필자의 친구가 미국에서 9년간의 유학생활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올 쯤에 자주 전화를 했다. 어렵고 힘든 미국 유학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그 날에 대한 기다림 덕분이었다고 한다.
 
요즘은 기다리지 못하는 시대이다. 속성, 지름길, 빠름을 강조한다. 기다림이 좋다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지루하고 불편하다.
 
본문에서 시인의 형편은 1절 말씀에 '깊은 곳에서'라는 단어를 보면 다른 사람의 구조의 손길이 없는 위험한 상황에 있다. 구원의 희망이 사라진 사람이 그 위기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찾고 있는 간절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삶의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을 기다리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다.
 
누구를 기다리며,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가?
 
첫째로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자. 어둔 밤이 걷히고 밝고 새로운 아침이 오듯이 깊은 곳에서 벗어나 회복과 구원이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시인이다. 교도소에 성도들과 함께 한 달에 한번씩 가서 예배하며 재소자들을 떡과 선물을 통해서 섬길때마다 느낀 것은 재소자들은 그 곳에서 나아갈 그 날만을 소망으로 기다리며 힘든 감옥생활을 감사와 찬송으로 견디고 있었다. 지금 힘들어도 언젠가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둘째로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자. 7절 말씀에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 저가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리로다 라고 했다. 하나님의 속성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 성경을 다른 말로 말하면 믿음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의 응답의 체험기라고 할 수 있다. 신앙의 선진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믿음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농부가 씨앗을 심고 기다리는 모습을 보라. 이 씨앗을 뿌리면 싹을 내고 열매를 맺게 되리라는 믿음 때문에 씨앗을 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선하고 아름답게 인도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고 응답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셋째로 인내하면서 기다리자. 1절의 깊은 곳에서 지내고, 6절의 파수꾼의 밤을 지새우는 것은 수고하고 지루하고 괴로운 것이다. 인내가 있어야 한다. 다윗은 시편 40편에서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있었지만 참고 또 참으면서 하나님을 기다렸다. 야고보서 5장 11에도 욥의 인내를 본받아 주의 강림하시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소망과 믿음과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자.
 
<오늘의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일평생 주만 바라보며 소망가운데 회복과 구원의 그날을 기다리며 살게 하소서. 언제나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종일 주를 기다리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춘석 목사 / 참빛사랑교회


금-구원받은 자의 축복과 사명
본문: 로마서 10:10-15
찬송가: 520장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예수의 부활과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되심을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그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확실하게 믿을 때에 구원이 보장되는 것이다. 그렇게 구원받은 자는 세가지의 큰 축복을 받게 된다.
 
첫 번째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 하리라"고 했으므로 먼저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부끄러워 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되겠다. 신앙생활을 깊이 하고 믿음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을 창피하게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예수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살아야 한다. 세례 받는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나는 날보다 더 행복하게 여기며 내 평생에 기억될 기념일로 삼아야 한다. 구원받게 된 것을 평생 자랑으로 여기며, 예수님을 믿는 것을 가문의 자랑으로 삼고 떳떳하며 당당해 할 때, 우리는 주님의 보호하심 아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복을 받게 된다.
 
두 번째는 차별당하지 않게 된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고 했다. 유대인은 선민이고 헬라인은 이방인이다. 양자 사이에는 현저한 차별이 있었다. 헬라인은 제 아무리 똑똑하고 지식이 많아도 제사장이 될 수 없었고, 성소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세계에 들어오면 모든 차별이 없어지는 것이다. 사장과 사원이 함께 앉을 수 있고, 함께 기도 드릴 수 있으며 함께 음식을 나눌 수도 있다. 이것이 구원 받은 자의 특권이자 축복이다.
 
세 번째는 부요하게 된다. 12절에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라고 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예수님 자신이 부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즉, 예수님을 믿고 세례 받아 구원받고 나면 영적 풍요와 만족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둘째는 부요하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부요해진다.
 
이처럼 구원받은 자에게 큰 축복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우리는 늘 주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야 한다. 삶의 모든 여정과 상황에서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부르고 찬송하는 것은 구원받은 사람의 의무이며 사명이기 때문이다. 세례 받고 구원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입술에 찬양이 떠나지 않는다. 또한 모든 치유사건이 주의 이름을 부를 때 나타난다. 그러므로 늘 주의 이름을 부르며, 또한 주를 전파하며 살아야 한다. 구원 받음을 정말 확신한다면, 그에 따르는 의무와 사명은 바로 '전파하는 일'이다. 본문에서는 보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전파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보냄을 받아야 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데 힘써야 한다.
 
<오늘의 기도>
사망권세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 항상 주의 이름을 부르며, 오늘도 만나는 사람에게 주의 이름을 전파할 수 있는 담대함을 허락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정원 목사 / 만남의교회


토-너희도 거룩하라 
본문: 레위기 11:44-45
찬송가: 8장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들은 자신이 편하고 행복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같이 거룩해져서 하나님과 교재하고 동행하기를 원하신다. 에덴동산에서도 노아시대에도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깨진 것이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제단의 피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가로막던 죄 문제를 해결하여 성소에 나아가며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갈 수 있는 은혜의 문을 열어준 것이다. 신약시대의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 역시 마찬가지이다. 시나이 광야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은 성막을 요구하셨고 성막 이후에는 성막에서 말씀하셨다.
 
성막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은 다윗 왕 이후 성전으로 임하시고 그곳에서 제사를 받으시고 우리들과 만나셨다. 신약시대에 이르러 예수님은 장사꾼의 소굴로 타락한 성전을 허물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일으키리라 말씀하셨다. 그 말씀은 예수님의 몸이 성전이심을 가르치신 것이며 장차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부활하실 것을 미리 예고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부활승천하신 후 성령으로 강림하셔서 우리 몸을 성전 삼고 친히 성령으로 임하셔서 우리와 함께 동고동락하시는 은혜를 입혀 주신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마누엘로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강림하신 것이다. 최후의 만찬에서 미리 보여 주신대로 거룩하신 어린 양 예수님이 자기 몸을 찢어서 자기 피를 흘려서 받아 먹으라 말씀하시고 성찬의 그 몸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거룩하신 주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하나가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만찬의 신비이며 성육신의 신비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어디에 계신가?
 
본문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라고 말한다. 성령을 모신 우리는 구별된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성령이 함께 하시도록 그분을 의식하며 그분의 뜻을 물으며 그 뜻에 순종하며 사는 삶이 거룩한 사람이다.
 
로마서 12장 1절은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산제물이 되셨다. 이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은 우리를 산 제물로 삼아 아직도 하나님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산 제사의 제물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예배를 기뻐하신다. 예배에는 구약시대처럼 제물이 필요하다. 오늘 내가 산 제물이 되어 이방인들을 주님께서 돌아오게 한다면 탕자의 귀한을 기뻐하는 아버지처럼 하나님의 마음도 기쁨으로 가득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십자가의 사랑과 부활의 주님을 모르고 어둠속에서 방황하는 영혼들이 많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주님의 임재 속에 전도자의 승리가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권용식 목사/목포성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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