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4월1~6일

[가정예배]4월1~6일

[ 가정예배 ]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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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3월 28일(목) 11:02

월-걷던 길을 돌이키라
본문: 눅24:13-35
찬송가: 160장
 
인생의 길을 잃고 시련이 닥쳤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할 때 우리는 질문한다. '내 인생의 좋은 길잡이는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오늘 본문에서는 인생의 길을 잃어버린 두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길을 걷고 있지만 그 길은 꿈을 잃어버린 길이다. 인생의 어두움에 빠져 한발 내딛을 힘도 빠져 버린 절망의 길이다. 누가복음 24장은 예수님의 부활로 시작한다. 그렇다면 그 부활의 소식에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모이는 장면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들의 가슴에는 주님의 약속이 이루어졌다는 기쁨이 가득 해야 한다. 그러나 누가를 통해 기록된 말씀은 그 자리를 실패와 좌절, 절망과 불신, 패배주의와 무기력함으로 채우고 있다.
 
주님이 부활하셨다. 그런데 제자들은 믿지 않고 허탄한 소리로 들었다. 그리고 그들 중 두 명은 그 소식을 확인하지도 않고 길을 떠난다. 왜 그들은 부활의 소식을 무시하게 된 것일까? 예수님을 따르던 모든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공생애의 시간을 보냈다. 엠마오 두 제자의 가슴에는 원대한 꿈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꿈은 주님의 꿈과 관계없는 야망일 뿐이다. 헛된 야망은 바벨탑처럼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주님의 나라를 꿈꾸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에게 관심이 없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한다. 주님이 함께 계시는 데도 슬퍼한다. 주님이 말씀하시는데도 무슨 말인지 깨닫지 못한다. 철저하게 자신의 늪에 빠져 있는 상태다.
 
우리 또한 그렇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다. 주님께 헌신하고 싶다. 그러면 주님은 내 삶을 성공으로 인도하셔야 할 것이다. 나를 더 높은 곳으로 올려주셔야 한다. 나에게 승리를 주셔야 한다. 그러나 나는 실패하고 좌절한다.
 
여러분의 인생을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높이 올라가는 사다리인가, 낮은 곳으로 임하는 십자가인가?
 
우리가 가는 길을 조용히 살펴보자. 그 길은 하나님의 청사진 속에 그려져 있는 십자가의 길인가? 부활의 능력이 우리를 덮어 넉넉히 이기는 길인가? 
 
주님은 엠마오의 두 제자를 찾아오셔서 이야기를 나누신다. 그리고 그들의 실패의 자리를 새로운 소망의 출발선으로 바꾸어 주신다. 이전까지 그들은 그들의 야망의 눈으로 투영된 예수님을 보았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안대를 풀어주신다. 그러자 그들은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
 
이제 더 이상 주님이 없는 그곳으로 달음질 하는 발걸음을 멈추자. 걷던 길을 돌이키자. 그리고 주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길로 새로운 발걸음을 옮기라. 주님이 있는 곳으로 나오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주님의 인도하심보다 세상의 화려함을 따르던 삶을 용서하시고 걷던 길을 돌이킬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을 주셔서 주님을 따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준형목사 / 삼각교회


화-본향을 사모하는 삶
본문: 히브리서 11:13-16
찬송: 492장
 
민족들마다 자기들의 고유 명절이 있다. 명절이 갖는 특성은 떨어져 있는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풍습에 있다. 타향생활에 외롭고 지친 사람들은 따뜻한 사랑과 행복한 만남이 있는 반가운 고향을 생각하며 힘든 귀성길을 재촉한다. 이스라엘에도 이런 명절이 있다. 그들의 명절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의미의 절기였다. 그래서 유대인의 명절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시작되고 지켜진다. 각 처에 흩어진 유대인들은 그들의 삶과 믿음의 본향인 예루살렘을 사모하며 산다. 비록 몸은 멀리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예루살렘에 있다. 본향을 사모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귀성객이다. 저 하늘 본향 새 예루살렘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본향을 사모하는 성도의 삶에는 세월과 환경을 이기는 능력이 있다. 그렇다면 본향을 사모하는 삶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
 
첫째,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하룻밤 머물다가 떠나는 나그네 의식이 성도에게 있다. 잠시 사는 한 세상, 잘 살아도 못 살아도 한 세상이라는 '영적 70~80객 의식'이 성도에게 있다. 그런데 이것이 능력이 된다. 이 나그네 의식 때문에 내 삶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더 나은 믿음의 반응을 보일 수 있다.
 
둘째, 먼 시선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먼 시선이란 저 멀리를 내다보는 시선이고, 땅에서 하늘을 보는 시선이다. 한 마디로 본향을 사모하는 시선이다. 본향을 사모하는 먼 시선을 가지고 살면, 이 땅에서 받는 잠시 환영에 집착하거나 잠시 환대에 환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땅에 있는 것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 겪는 어려운 일에도 '아무렴 어때!'라며 괜찮아 하고, 장차 받을 하늘 환영과 환대를 소망하며 자주, 날마다 기뻐한다.
 
그러므로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이렇게 정리하고 살아야 한다. 인생은 나그네길이고, 하나님 앞에서 나그네 세월을 사는 것이 성도의 인생이다. 먼 시선으로 '본향'과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이 성도의 인생이다. 잠시 후면 돌아갈 본향, 그것을 생각하는 '나그네 의식'과 그것을 바라보는 '먼 시선'을 가지면 가장 복되고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속히 나그네 의식과 먼 시선으로 본향을 향한 거룩한 행렬에 오르라. 믿음의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았다. 그래서 승리했다. 본향을 사모하면 부끄럽게 되지 않는다. 불쌍하게 되지 않는다. 승리하는 삶이 된다. 예비된 성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에 가장 복된 만남과 영원한 행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하나님나라 귀성객들로 능력있게 살아가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 계신 곳 본향을 사모하며 바라보는 나그네 의식과 먼 시선을 가지고 거룩한 행렬에 올라 날마다 능력 있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에릭목사 / 상도교회


수-진리의 길을 가는 행복
본문:약 5:1-8
찬송가: 516장
 
성공이나 행복, 이것은 누구나 원하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이나 문화마다 그것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나 방법이 다르다. 성공과 행복의 기준과 조건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사람이나 다른 가족들과 비교하면서 얻는 만족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으려 할 때가 많은데 그 또한 모호한 것이다. 그래서 소위 '남들처럼' '엄친아' '누구네 집은' 같은 비교의 기준틀에 매어 놓고 스스로 불행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다. 언제든 최고의 자리는 하나 뿐이고 나머지는 실패자가 된다. 세계 최고의 부자도 한 사람이고, 명문대에서의 일등도, 최고의 권력자, 최고로 유명한 사람도 한 사람 뿐이며, 그나마 그런 자리도 언젠가는 기울고 사라질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씀처럼 썩고 좀먹고 녹슬 것을 위해서 생을 살아가는 것은 허망한 일이요, 그것이야말로 실패하는 인생의 길로 가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성실과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것을 게을리 하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가정이 꿈꾸며 갈 길은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요, 믿음의 사람들이 간 길을 따라가는 것에 있음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성공과 행복은 비교하고 자신의 창고를 쌓아 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분별하고 구별되어 주님을 위해 쓰는 일에 있음을 기억하자.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방주를 짓기 위해서 세상과 구별된 인생을 살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에 집중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쓰셔서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셨다. 아브라함은 우상 문명의 땅 우르를 떠나 하나님께서 명하신 땅으로 갔다. 그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인생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는 생명이 잉태되어 이스라엘 백성이 태동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를 많은 민족이 구원을 얻는 일에 쓰셨으며,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이루셨다. 얼마나 값지고 복된 인생인가?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 쓰이는 길을 택하면서 걸어가자. 특히 세상의 풍조를 분별하고 구별할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가지고 인내와 절제의 경주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영화 '7번방의 선물'에서 아빠 이용구와 딸 예승이가 마지막 식탁에서 서로 나눈 감사의 인사를 우리 가족과 하나님께 하고 싶다. "여러분이 우리 가족인 것이 참 고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주시고 구원의 은혜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하면 좋겠다. "하나님, 저를 태어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희 가정을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런 예배의 삶을 사는 것이 성공의 삶이다. 감사하는 오늘이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세상과 구별되었으나 세상 사람들을 섬기며 생명의 길로 이끌어갈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창운목사 / 송탄동성


목-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본문: 요한일서 3장 1-10절 
찬송가: 161장
 
죽음은 우리가 본향으로 가는 순간이다. 죽음에 직면한 순간에 내가 무엇을 할 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한 신앙인은 그 순간을 다음과 같이 맞으라고 조언한다. 먼저 세상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 욕심을 일체 버리라고 한다. 이 땅에 두고 갈 자손들이나 세상에서 누렸던 재물이나 권력 등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한 잡생각을 버리라고 한다. 그리고 본향에 가는 것에만 집중해서 평소 좋아하는 성경구절을 계속 말한다거나 찬송을 부른다거나 그것도 어렵다 싶으면 그저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는 기도를 하라고 조언한다. 죽음 직전에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말씀은 죽음 직전보다는 본향을 향해가는 여정길인, 이 세상에서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려주고 있다. 요한일서 2장 1절과 5장 13절에 나타난 기록 목적에 의하면, 우리들이 죄를 범하지 않고, 영생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 우리의 믿음을 굳게 세우라고 쓴 목회서신이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우리의 믿음을 굳게 세우기 위해 우리의 현재 위치를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세상은 이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은 의롭지 않고 죄를 지어서 불법을 행한다고 말한다.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지고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서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자신의 아우를 죽인 가인처럼 날마다 범죄하는 세상이 되었다.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이 선을 행하고 빛의 자녀로 살아간다 해도 세상은 그런 우리들을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말씀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다. 장래에는 어떻게 될 지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는 그를 참 모습 그대로 보게 될 것이고 우리도 그와 같이 될 것임으로 소망을 가져야한다. 그리고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고 단순하게 말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분히 명령적인 권면이다. 주를 향하여 부활의 소망을 가진 우리는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 속하였고 하나님께 속한 자는 의롭고 깨끗하여서 형제를 사랑하는 삶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속한 자의 삶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하나님, 예수님의 깨끗하심과 의로우심처럼 우리도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깨끗함과 의로움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혜숙 목사 / 전국여교역자연합회 사무총장


금-신앙의 기초 다지기 - 청지기 신앙
본문 : 로마서 11:36
찬송가 : 316장
 
지혜로운 사람은 나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바로 아는 사람이다. 철학자의 대부인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하였다. 나 자신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나를 지으신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한다. 종교개혁가 칼빈은 신에 대한 지식을 가질 때 인간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다고 하였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내가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고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알 수 없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바울은 로마서 11장 36절에서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고 하였다. 우주만물은 우연히 생성된 것이 아니라 치밀하신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창조된 것이며,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몇몇 세계 지도자들에 의해서 역사가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그리고 창세기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는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완이 된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고 지으신 만물을 주재하시며, 만물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이며, 이 세상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는 나그네이다. 세상 것들이 사람의 이름으로 그 소유를 정하다보니까 영원한 내 소유라고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한번은 죽어야 하는 유한한 인생이기에 사실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사람은 세상에 사는 날 동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잠시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하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인본주의, 즉 사람이 모든 일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물론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할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을 조성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사람이 모든 일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일의 중심이 되어야 하며 우리는 그 만물을 관리하는 청지기이다. 이를 청지기 신앙이라고 한다.
 
교회를 위하여 앞장서서 수고하는 일군들은 신앙의 기초인  청지기 신앙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청지기 신앙을 크게 셋으로 구분해서 설명한다면 시간의 청지기는 주일성수를, 물질의 청지기는 십일조를 위시한 헌금생활을, 재능의 청지기는 교회 봉사활동을 철저하게 하는 사람이다. 기초를 잘 다지면 수십층의 빌딩도 세울 수가 있으나 기초가 부실하면 단층 건물도 위험한 경우가 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는 청지기 신앙으로 신앙의 기초를 잘 다져나가면 하나님의 교회에 충성스러운 일군으로 쓰임 받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지금까지 내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결코 내 것이 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는 청지기 신앙으로 잘 다져짐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일꾼으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태협목사 / 신곡교회


토-많이 찾으시고 많이 달라 하십니다.
본문: 눅 12: 41-48
찬송가: 214장
 
엔도 슈사꼬의 '침묵'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명작이다. 대부분의 명작처럼 '침묵' 또한 일본의 그리스도인들이 집권자들에게 당한 핍박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소설 속의 핍박을 보면 배교를 유도하기 위해 상상을 초월한 고문을 가한다. 당사자가 죽기를 각오하고 배교를 마다하면 가족을 고문해서 가족이 울부짖는 소리로 배교를 유도한다. 인간이 얼마나 약하며, 또한 얼마나 잔인한가를 잘 묘사했다. 소설 속의 이야기는 일본 에도시대 기독교 수난사를 배경으로 한다.
 
금지된 종교가 비로소 종교자유 허용으로 나도 신자요, 너도 그리스도인이요 하며 모아진 힘으로 일본 최초 최고 최대의 성당인 우라까미성당이 지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 헌신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성당이 1945년 8월 9일 나가사끼 원자폭탄투하 폭심지가 되었다. 원래 목적지도 아닌데 구름이 비껴간 곳, 빛이 나는 곳이 되어 조정사가 확인하고 원자폭탄을 투하한 곳이 우라까미성당주변이라니 신앙인으로서는 아이러니하다.
 
나가사끼에 원자폭탄 투하로 20만명의 사상자가 났으며 그중 우리나라사람이 2만명이었다. 또 폭심지는 당시 1천7백명 중 유일한 생존자 소녀가 쓴 일기에 "목이 탄다. 물이 없다. 물에는 기름이 흐른다. 그래도 마셨다"라고 기록이 남아 있다. 평화공원을 둘러보며 다시 한번 주님이 말씀하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는 구절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선지자 하박국이 비록 타락한 백성일지라도 더 악한 백성에게 징계와 심판을 당하는 민족의 고달픔을 탄식하는 가슴앓이를 되새겨 보았다. 세상을 살리고 건지고 구원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 세상에서 경건하게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핍박을 당하고 죽음당해도 마땅히 소금의 맛을 내야한다. 에스겔 선지자의 경고처럼 파숫군은 마땅히 나팔을 불어 전쟁을 예비해야한다. 나팔을 불지 아니하면 그 책임을 파순군에게 물으신다.
 
오늘 분문은 지혜로운 청지기는 주인이 속히 올 줄 알고 시간과 직분을 선용하는 사람이다. 어리석은 청지기는 주인이 더디 오리라 생각하고 시간도 직분도 선용하지 아니한다. 주인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로마서 12장 1절과 2절에 보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하여 우리의 삶을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살아있는 제물이 되고,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삶이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산제물이 되기를 바라신다.
 
은혜를 많이 받았는가? 많이 나누고 사랑하고 수고하고 충성하자. 그리하여 주님이 기뻐 찾으시는 지혜로운 청지기로서 쓰임받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 사람들은 세상연락, 세속철학, 세상의 가치관에 휩쓸려도 우리는 주님의 뜻을 펴는 그리시도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전중식목사 / 산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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