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8일~2월2일

1월28일~2월2일

[ 가정예배 ] 1.28~2.2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3년 01월 24일(목) 14:18

월-가시의 유익
고후 12:7~10
찬송가:372장
 
논리로 접근해보면 기독교는 납득할 수 없는 모순으로 가득한 듯 보인다. 가난은 고통이건만, 주님은 천국이 가난한 자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왼뺨을 치는 자에게 오른뺨을, 겉옷을 달라는 자에게 속옷까지 주라 한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이는 죽으리라는 이 성경의 역설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바울은 말씀을 통해 진정 약할 때 강해진다고 이야기한다. 다메섹에서 눈이 멀었던 이 엘리트는 강함과 형통함과 명예와 권력을 통한 현상의 풍요를 자랑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약함과 박해와 궁핍과 곤고함을 기뻐하며 자랑한다. 그가 사울이었을 때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본문에 힌트가 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그렇다.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이 바울을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하였고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딜 수 있게 하였고, 더 나아가 기뻐하며 자랑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우리 성도들도 그리스도를 위해 기쁘게 고난 받는 성숙한 신앙을 갖기를 축원한다. 왜냐하면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해질 때 주의 은혜와 능력이 온전히 머물기 때문이다. 이는 기독교의 비밀이자 진리이다. 주를 위하여 온전히 고난 받을 때, 약한 나는 주로 인해 강해진다.
 
본문은 세상의 여러 이름을 가진 갖가지 가시들이 우리를 덮칠 때 어떤 자세로 이것들을 감당해야 하는지 말해준다. 바울 또한 자신의 가시를 가졌던 사람이고, 또한 그 가시를 뽑아주길 기도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응답하셨고 바울은 그것을 "아멘"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수용하는 참 신앙이요, 우리에게 있어야 할 신앙의 바른 자세다. 가시는 바울에겐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 가시 때문에 기도하였고, 가시를 통해 온유와 겸손, 신실함을 갖춰 마침내 갖가지 기적을 체험하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다. 가시가 바울의 약함을 만들었지만, 그를 신앙으로 녹였을 때 그는 '존귀한 인물'이 되었다.
 
숯에 1천7백도씨의 열과 5만 기압의 압력을 가하면 인조다이아몬드가 된다. 하나님도 우리를 빛나는 존재로 다듬기 위해 고난의 문을 통과하게 하신다. 진정 아름다운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선 열과 압력이라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고난의 상황에서 뜨겁다고, 무겁다고, 힘들다고 뛰쳐나간다면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고난의 현장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영광을 경험하고, 더 굳세게 믿음을 지키겠다는 결정을 스스로 내릴 때, 신앙이 다이아몬드 같이 단단하고 찬란한 결정을 이루게 된다. 구분된 자로서 앙망해야 할 비전이 있어야 한다. 상황이 어렵다고 좌절하고 낙심해선 안된다. 내가 약할 때야말로 주님께서 나를 강하게 하실 때이다. 믿음 가운데 성숙함으로 결단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참빛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한다.
 
<오늘의 기도>
심령이 가난한자에게 천국을 허락하시는 주님! 때로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사건들과 가시들이 있습니다. 바울과 같이 가시가 주는 유익을 신앙으로 고백하는 참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성기목사 / 세계로교회

 


 

화-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본문: 마14:13-21
찬송가: 198장
 
인간들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공생의 기간 동안 많은 기적을 행하셨으며, 특히 소외당하고 병든 자들을 항상 가까이 하시고 그들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면서 천국 복음을 전하셨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일은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유일한 기적의 사건이다. 예수님의 족보나 탄생기사도 4복음서이 모두 기록하지 않았는데 왜 오병이어의 기적 사건은 4복음서에 기록되었을까? 그것은 제자들에게 그들의 사명을 잊지 않도록 당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자들의 책임은 현존하는 교회의 사명이기도 하다. 교회는 굶주림과 헐벗은 사람들에게 육의 양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심령이 굶주리고 메마른 자에게 영원한 생명수를 마시게 할 책임이 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40년 동안 의복이 헤어지지 않게 하시며,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만나로 먹이셨던 것처럼 예수님은 오늘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명의 양식이 되신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 인류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남으로 생명나무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주님은 이 땅에 찾아오신 생명나무 열매이시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을 모시는 생령의 존재로 창조되었으나 생명나무 열매를 먹어야 했던 에덴동산의 질서처럼 예수님을 만남으로 구원받았다 해도 지속적으로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먹지 않으면 우리는 영생의 삶을 살아갈 수가 없다.
 
본문의 상황은 때는 저물었고, 장소는 빈들이다. 제자들에게는 가지고 있는 떡이 없었다. 다만 한 소년이 가지고 온 도시락이 있을 뿐이다. 주님은 이 펼쳐진 광경을 잘 아시면서도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떡이시다. 제자들은 이 생명의 떡을 나누는 전달자들이다.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굶주린 군중들에게 주어서 먹게 하는 일은 그리스도의 종들이 지니는 특권이며 책임이다.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건네주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오늘 우리에게 궁핍이 있는 이유는 주지 않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는 것이 작다고 주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을 먹이고 공급하려면 "네게 있는 것을 주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한다. 사람은 자신의 손에 있는 것만 본다. 그러나 주님은 하늘 창고를 보셨다. 주님이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을 때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오늘 내게 있는 것은 무엇인가? 주님의 일은 계산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믿음은 계산이 아니다. 작은 것이라도 주님께 드리면 주님이 떼기 시작하신다.
 
한 어린아이의 부끄러울 만큼 작은 헌신으로 인한 안드레의 믿음으로 예수님의 손에 들려 졌을 때 제자들의 의해서 배고픈 군중들에게 풍족하게 전달되었고, 남은 조각이 처음 가지고 있던 것보다 훨씬 많았음을 기억하자. 내가 가진 것이 작은 것일지라도 주님의 손에 올려 드리자.
 
<오늘의 기도>
주님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입니다. 내가 만나는 자들에게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배부르게 먹이게 하시고 전달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영실목사 / 빛된교회

 


 

수-이런 사랑 보셨나요?
본문: 삼하 1:17-27
찬송가: 434장
 
탈무드 책에 보면 "친한 친구가 채소를 가지고 있으면, 그에 필요한 고기를 보태어 주어라"는 '우정'에 대한 글이 있다. 여기 고기를 보태줌이 아닌 자신의 생명처럼 친구를 사랑한 우정이 있다.
 
사무엘상 18장 1절을 보면 "다윗의 마음이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의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고 한다. 생명같이 사랑한다고 말한 요나단은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그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다 건네주었다. 요나단은 사울왕의 아들로서 권세를 가지고 사람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다윗의 신분은 목동으로서 양떼들을 먹이는 천한 신분, 감히 왕의 아들과 함께 우정을 나눌 만한 신분이 아니었다. 목동에 불과한 그를 아버지 사울왕의 시기와 증오 가운데에서도 요나단은 그를 끝까지 사랑하였다.
 
그 사랑의 모습은 마치 어머니처럼, 여인처럼 다윗을 감싸안으며 용기를 주었다.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고 하였다(삼상23:17). 그 후 요나단이 죽자 다윗은 대성통곡하며 남녀의 애틋한 사랑보다 더한 애통함을 야살의 책에 기록하여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고 그 노래를 활 노래라 하였다.(활노래는 사울을 죽게 한 것이 블레셋의 활이었고, 다윗을 위기에서 구해준 것도 요나단의 활이었기 때문이다).
 
이 놀라운 사랑! 여인보다 더한 사랑은 당대에서 끝나지 않았다. 요나단이 살아 있을 때에 다윗은 그의 가족을 보호해 주기로 맹세하였던 것을 늘 가슴에 품고 있었다. 사울 왕이 죽은 후 약 20년이 흐른 이때에 다윗은 므비보셋을 찾아오라 종에게 명령한다.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 했지만 그의 아들 요나단과의 우정은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다윗 앞에 엎드려 절하는 므비보셋을 향햐여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며 축복의 손을 내민다. 그 축복은 첫째, 사울 왕 때의 누렸던 모든 재산을 다시 찾게 해주겠고 둘째, 항상 왕의 식탁에서 함께 먹고 마실 수 있는 왕자의 신분으로 상승시켜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다윗에게 절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우리는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까지 내어주신 그 사랑임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 (롬5:8) 우리가 무엇이관대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친구라 불러주시니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항상 삶이 축제의 자리에 향연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15:15)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시고, 항상 은혜 가운데 보호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알아가기에 부족함 없는 저희들의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점숙목사 / 정드림교회

 


 

목-자부심
본문: 이사야 43:1~7
찬송가: 304장

'자부심'이란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그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이다. 자부심은 자만심이나 교만과는 다르다. 교만과 자만심은 패망의 지름길일 뿐이다. 하지만 자부심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46분기 연속 흑자, 30년 평균 주가수익률 1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2위' 이런 놀라운 수식어가 붙는 기업은 어떤 기업일까? 바로 미국의 저가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 항공이다. 미국 댈러스에 본사를 둔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저가 항공사면서도 이런 놀라운 성장을 이룬 비결은 바로 경영철학이다. 이 항공사는 직장 상사도 가족처럼 편하게 여길 수 있고 일하는 재미와 유머가 넘치는 직장이라면 고객에게도 최고의 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발상으로, 채용(selection)이란 말을 쓰기보다 가족으로 입양(adoption)한다는 표현을 사용하여 직원들의 자부심을 한껏 높여주는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다. 회장인 허브 켈러는 직원들이 회사의 가장 중요한 고객이라고 믿는다. 그는 성공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저 최고의 사람들을 뽑아 인간적으로 대우해 줄 뿐"이라고 대답한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이런 자부심의 원리가 꼭 필요하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이 약속을 믿고 대단한 영적 자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성도에게는 다섯 가지 자부심이 꼭 필요하다.
 
첫째, 하나님에 대한 자부심이다. 어찌 하나님을 다른 신에 비교하며 우리 기독교 신앙을 다른 신앙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비교대상조차 안 되는 것이다.
 
둘째, 교회에 대한 자부심이다. 지역의 제일 큰 교회가 아닌 바로 '우리 교회가 제일 좋은 교회'라는 자부심이 꼭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신앙생활이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다.
 
셋째, 사람에 대한 자부심이다. 우리 교회 목회자와 당회, 내 전도회, 소그룹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넷째, 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다. 나는 왕자, 나는 공주라는 정신, 나는 존귀한 존재요, 하나님의 보배라는 정신이 필요하다. 자부심이 낮은 사람은 열등감뿐 아니라 대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언어습관을 가지고 있다.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의 부인인 엘리노어 루즈벨트 여사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당신을 하찮게 대한다고 느끼는 것은 당신이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내 가정, 자녀에 대한 자부심이다. 지금 내 가정과 자녀의 현실은 비록 어려워도 반드시 하나님이 도우시리라, 지키시리라, 최고의 가정, 자녀로 세우시리라는 자부심이 필요하다. 이런 믿음과 자부심은 실제로 우리를 하나님의 가장 귀한 보배로 만들어 주는 힘이 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왕자요 공주임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내 가정, 교회를 들어 가장 귀하게 써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서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하준목사 / 효자교회

 


 

금-나는 누구인가?
본문: 베드로전서 2:9~10
찬송가: 309장
 
덴마크의 동화작가 안델센의 작품 중 '미운오리새끼'라는 동화가 있다. 한 오리가 유난히 크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태어나서 다른 오리들에게 미움을 받고, 왕따를 당했다. 오랜 방황의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문득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기가 원래 오리가 아니라 백조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 마디로 정체성의 문제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모를 때 미운오리새끼처럼 어리석게 삶을 허송세월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소유된 백성'이다.
 
먼저 '택하신 족속'은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께 선택을 받았다는 뜻이다. 또한 '왕 같은 제사장'은 이 세상의 어느 것에도 종속되지 않는 존귀한 자라는 뜻이다. '거룩한 나라'는 세상에서 구별된 존재라는 뜻이다. 또한 '소유된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값을 치르고 사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런 놀라운 은혜와 특권을 받았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에 가장 존귀한 존재인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특권에는 의무도 함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특권만 누리려고 한다면, 그것은 비정상적이고 유치한 신앙으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제사장이라는 말은 라틴어로 '폰티펙스'로 '다리를 놓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가? 
 
9절에 보면,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거룩한 나라의 시민으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으로 삼으신 이유는 '우리를 어둠 가운데서 불러내어 신기하고, 영광스러운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전도다. 전도란 나 같은 죄인을 어둠과 죄악 가운데서 건져주시고, 빛으로 인도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사명이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벅찬 감동으로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늘 감사하고, 찬양해야 한다. 또한 우리의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이 귀한 왕 같은 제사장의 특권을 누리고, 동시에 주신 의무도 잘 감당함으로 아름다운 열매 맺는 삶이 되기를 축복한다.
 
<오늘의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의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여 주시고, 불러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그와 함께 주신 의무도 잘 감당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동락목사 / 신광교회

 


 

토-사막에 물이 넘쳐흐르리라         
본문:출17:1-16
찬송가: 391장
 
물과 불, 서로 상반된 성질의 것이지만 상호 작용을 한다. 불이 있는 곳에 물이 있어야 하고 물이 있는 곳에 불이 있어야 한다. 뜨거운 사막에서 오아시스는 생명이 피어나는 곳이다. 건조하고 삭막한 인생길에 시원한 생명수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자. 그러나 아무리 시원한 생수를 원한다 해도 내 뜻대로 아무 데서나 물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래서 인생은 더 목마르고 힘들기 때문에 삶을 광야 길과 같다고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함께 계시며, 대적들로부터 구원해주심을 유월절 사건 이후로부터 줄곳 경험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목마름 앞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불신앙의 태도를 보이고 말았다. 현재의 어려움에 눈이 가리워져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지금까지 하셨던 것들을 망각했던 것이다.
 
우리도 현재의 내 모습, 믿음의 태도를 볼 때 별로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과 마찬가지로 먹고 마시고 사는 문제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을 바로 보지 목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을 하나님 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예수님은 우리들이 의식주 문제에 사로잡혀 살기보다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가르쳐주셨다(마6:33).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서는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과 불평에도 불구하고 자비와 은혜로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셨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에서 생명수를 마시게 하셨다. 우리의 부족한 믿음과 연약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상황 가운데 신뢰하고 의지해야 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임을 기억하고, 오직 신령한 반석되신 예수님만을 따라야 한다. 환경에 흔들려 불평하거나 불신앙적인 삶을 살지 말고 믿음의 눈으로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의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원한다.
 
세계적으로 자원 고갈과 이상기후, 경제난으로 전세계는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어떻게 무엇으로 이 위기를 헤쳐갈 수 있을까. 반석과 같은 현재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반석에서 물이 나올 것이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인간의 위기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고자 하는 축복의 기회인 것이다. 인간에게 목마름과 상처는 시쥐프가 굴리는 바위덩어리와 같은 것이다. 문제를 안고 끙끙대는 현대인이여 잠시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자. 시인 다윗의 노래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채워주심과 치료와 쉼을 주시는 주님, 주님 안에서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한해가 되도록 하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연약하고 부족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인도하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반석되신 예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명수목사/온땅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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