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4~19일

1월14~19일

[ 가정예배 ] 1.1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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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1월 10일(목) 13:53

[가정예배]

월-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
본문: 엡4:17-24
찬송가: 347장
 
2013년 새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새해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새해는 새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새 마음을 통해서만 새로워질 수 있다. 새 마음을 가지려면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한다.
 
바울은 "너희는 유혹을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4:22)"라고 말한다. 우리가 벗어야 할 옛 사람(이방인)의 특징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자세히 말해주고 있다.
 
첫째, 옛 사람은 허망한 것을 행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행하지 말라(행4:17)"고 했다. 마음의 영적 긴장감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다.
 
둘째, 옛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사람이다.
옛 사람의 모든 특징은 모두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마음이 허망하고, 어두워지고, 굳어지고, 욕심으로 행하고, 유혹을 좇아 살아간다. 마음의 주인인 성령이 주시는 생각이 아니라 사단이 주는 생각이 마음을 끌고 가는 사람, 이 마음은 죄악된 생각을 더욱 환영하는 마음이요, 사단이 뿌린 씨앗들이 순식간에 열매를 맺는, 죄에 있어서 옥토의 마음이다. 그러나 복음과 성령의 감동에 있어서는 길가와 같이 딱딱한 강퍅한 마음이다.
 
셋째, 옛 사람은 모든 더러운 욕심대로 행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옛 사람은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사람'이다.

넷째, 옛사람은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사람이다. 나의 교만, 불신앙, 자기중심적인 생각, 고정관념, 잘못된 자기 환상, 허세, 신앙의 거품, 지식의 거품, 명예와 지위의 거품, 좁은 선입견 등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것들로부터 벗어날 때에야 비로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
 
새 사람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새 사람은 배운대로 행하는 사람이다. 새 사람은 진리에 대해 듣고 배운 지식과 생각이 마음을 끌고 가고 의지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다. 새 사람은 옛 사람의 생각을 따라가지 않고 성령이 주시는 생각이나 진리에 대해 배운 것들을 꼭 붙잡고 행하는 사람이다.
 
둘째, 새 사람은 심령이 새롭게 된 사람이다. 내 마음의 생각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진리 가운데 행하며, 더러운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고, 덕을 세우는 말, 선한 말로 듣는 자들 에게 은혜를 끼치며, 악독, 노함, 분냄, 떠드는 것,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함같이 하며, 마귀가 틈탈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를 새사람으로 만드셔서 하나님의 상속자로 삼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심으로 세워진 교회를 방해하는 악하고 더러운 것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하시고, 하나님의 구속의 물줄기를 흘러내리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영실목사 / 빛된교회


화-신앙의 고속도로
본문: 사 40:3~8
찬송가: 77장
 
혹자는 고속도로를 국가의 대동맥이라고 칭할 정도로, 고속도로는 국가의 경제활동과 물물교류에  큰 역할을 한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도 터널을 뚫고 고속도로를 놓음으로 경제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 우리 인생도 이렇게 고속도로처럼 시원하게 살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인생을 보면 막혀있고, 꼬여 있고, 답답하다. 또 다른 삶은 고속도로처럼 광대하고, 시원하며, 출중하다. 이 차이가 어디에 있을까요. 무엇으로 인생이 나뉘는 걸까.
 
고속도로 인생을 위한 첫 걸음은 회개로 떼야 한다. 하나님과 막혀서는 절대 하늘 문이 열리지 않는다. 철저히 가슴을 찢고 통회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내 앉고 서는 것, 내 생각과 말에 죄가 있고, 덕스럽지 못했다는 것을 회개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세워야 한다.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때에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임한다. 죄 문제를 회개라는 땅다지기로 평평히 다져야 그 위에 신앙이라는 건물이 지어질 수 있다. 산을 뚫지 않고는 길을 낼 수 없다. 어렵더라도 우리는 끝까지 기도와 회개로 막힌 관계와 막힌 인생을 뚫어야 한다. 막힌 굴뚝은 아궁이의 불길을 죽이고, 매캐한 연기만 뱉어 내게 한다. 이것을 뚫어야 연기가 위로 빠지면서 불길이 산다. 막힌 인생으로 무엇을 거둘 수 있겠는가. 뚫다가 그치면 동굴에 불과하지만, 끝까지 뚫으면 터널이 되고 길이 된다. 세상엔 금 그릇, 질 그릇, 나무 그릇도 있지만, 쓰이는 그릇은 깨끗한 그릇이다. 하나님의 쓰심이 그 재질에 달려있지 않다. 회개를 통해 성결해진 그릇에 주님의 손길이 닿는다. 성경의 무수한 구절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기를 원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복을 받기 위해서 회개를 통한 성결함이 있어야 한다.
 
회개 뒤엔 순종이라는 두 번째 걸음이 뒤따라야 한다. 노아의 경우 순종의 대가는 멸망에서의 구원이었다. 비천한 히브리 공동체는 홍해를 건넜지만 고귀한 애굽인들은 물속에 장사되었으며, 포로인 다니엘이 몸을 보존했던 반면 그를 모함했던 귀족들은 사자에게 찢기었다. 삶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결정짓는 귀한 척도는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순종이다. 저주받지 않기 위한 소극적인 삶이 아닌, 축복을 받기 위한 적극적인 삶을 위해 우리는 절대적인 순종을 드려야 한다.
 
금세 다시 목이 마를 음료를 찾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고 영원히 마르지 않을 생명의 물을 가까이 하자. 성도(聖徒)가 진리의 길에 순종하며 찬송하며 갈 때 인생은 축복이라는 인터체인지를 통과하여 성도(聖道)라는 기쁨의 고속도로를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세탁기에 내 영혼을 빨아보는 한 주간이 되자. 내 삶에 우선순위는 어디에 있는가. 순종의 삶을 살고 있는지 늘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주님!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는 이 시대에 신앙의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막힌 담을 헐고 순종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성기목사 / 세계로교회


수-신실한 기도
본문: 마 6:7-8
찬송가: 361장
 
2013년 첫 태양이 떠오르기도 전 우리는 덕담 문자들을 많이 받는다. 그 문자들에는 '건강하시기를', '하시는 일이 잘 되시기를', '계획하시는 일들 다 이루어지시기를' 등 비슷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 말들은 받는 이뿐만 아니라 보내는 이도 절실히 원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한해를 시작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해가 되기 위해 많은 기도한다.
 
"주여, 주시옵소서! 주여, 이런 한해를 주시옵소서! 주여,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내용의 기도를 하고 있지는 않는가?
 
오늘 본문 6장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가르치시며 7절, 8절에 당부하신 말씀이 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 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중언부언'이란 원어 '발타로게세테'로 기도할 때 거듭해 말함으로써 성공을 거두려 한다는 의미이다. 주님은 기도하기 전에 우리의 필요가 무엇인지 알고 계시지만, 기도를 통해 사귐을 원하고 계신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주님은 우리 바로 앞에 계시며 옆에서 듣고 계신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의 기도에 기쁘게 응답해 주신다. 우리는 이때 자녀들에게 신실하신 아바(Abba)아버지 이심을 믿어야 할 것이다. 아바는 우리로 하여금 무겁고 고통스러운 십자가도 능히 감당케 하시고 권능의 손으로 붙들어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할까? 첫째, 먼저 성경을 읽고 깨달았을 때 바른 기도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온전하심이다(딤후 3:16). 둘째,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신 물질, 시간, 달란트, 청지기의 사명으로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선한 관리인으로서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이 모든 것을 주께 통째로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진리 안에서 승리하여야 한다. 속죄의 은혜 속에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영광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마음의 불의를 품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높여야 한다.
 
주님은 자신과 신실한 기도로 소통하는 자에게 항상 생명력이 넘치는 생활과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그것을 견디어 갈 수 있는 힘을 부어주신다. 구하기 전에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에게 쓴 잔이 오지 않게 해주소서"라는 간구보다 "하나님 내가 쓴 잔을 마실 수 있는 능력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보자.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오늘의 기도>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잘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간구하는 모든 기도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그리스도인의 간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점숙목사 / 정드림교회


목-기도의 축복
본문: 사무엘상 12:19~25
찬송가: 361장
 
오늘 본문은 일평생 기도를 통해 위대한 생애를 살았던 한 인물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바로 사무엘이다. 사무엘은 한 마디로 기도의 사람이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자식이 없을 때 성전에 나가 간절히 눈물로 기도하여서 아들 사무엘을 얻었다. 그 영향으로 사무엘은 어린 시절부터 숨지는 순간까지 일평생 기도로 살았다.
 
특히 사무엘상 7장을 보면 사무엘은 이스라엘 사사로 취임하면서 모든 백성을 미스바로 모아 뜨겁게 기도했다. 그때 블레셋이 그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이 무방비 상태로 기도하고 있을 때 총 공격을 했다. 그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하나님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큰 우뢰를 내리셔서 어지럽게 만드셨고, 갑작스럽게 날벼락을 맞은 블레셋 사람들은 혼비백산하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때 사무엘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추격해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 전쟁이 끝난 후 사무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기념비를 세웠다. 그 기념비가 바로 '에벤에셀'이다. 에벤에셀은 '도움의 돌,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뜻이다. 그 후에 이스라엘은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서 사무엘이 은퇴할 때가 됐는데, 그때 행한 퇴임 연설이 바로 사무엘상 12장에 기록되어 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23절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것을 죄로 여겼다. 기도는 성도의 가장 소중한 특권이다. 그러나 기도는 또 책임과 의무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명령하신다.
 
부모는 자녀에게 늘 이런 명령을 한다. "얘야, 밥 먹어라!" "공부해라!" 이것은 부모의 명령이다. 그리고 그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자녀의 의무다. 그런데 그것이 알고 보면 자녀의 특권이다. 부모는 아무에게나 "밥 먹어라, 공부해라"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른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하면 스스로 기도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언제 기도해야 하는가? 기도는 쉬지 말고 해야 한다.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말씀 속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살라는 뜻이다. 두 번째는 규칙적인 기도의 습관을 가지라는 뜻이다. 하루의 삶 속에서 일정한 기도 습관을 갖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오늘 이 시대는 사무엘처럼 늘 깨어서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는 소수의 사람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 영혼이 살아서 건강하고, 하나님이 우리 삶의 현장에 임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사무엘처럼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기도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받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동락목사 / 신광교회


금-가장 좋은 것은 미래에 있다
본문: 눅 2:25-32
찬송가: 413장

로버트 브라우닝은 사랑과 생의 희망을 노래한 영국 시인이다. 이 시인은 오늘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사랑과 내일에 대한 기대에 있다고 노래했다. 고통과 견디기 힘든 상실감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희망에 있지 않은가! 새롭게 시작하는 새해에 우리는 어두웠던 어제를 묻고 우리 앞을 비추는 태양을 마주보며 내일을 만들어가야 한다.
 
구약의 예언자 요엘은 언제나 들어도 가슴을 뛰게 하는 생동감 넘치는 말씀을 들려준다.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는 말씀이다. 정신과 육체가 점점 사그러지는 노인에게서 요엘은 아직 꿈꾸는 모습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오늘의 말씀은 시므온이 처음 성전을 찾아온 아기 예수를 가슴에 품고 그의 심장에서 울려나는 박동 소리를 들으며 감격의 탄성을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유대인의 의식을 치르기 위해 부모님과 함께 성전을 찾은 아기 예수에게서 메시아임을 발견한 시므온은 아주 오래된 약속을 기억해 낸다.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라는 말씀이다.
 
시므온이 누구인가? 시므온에 대한 정보는 찾기가 매우 힘들다. 마치 아브라함 시대에 등장하는 멜기세덱처럼 신비로운 존재이다. 그러나 이 시므온은 언제부터인지 예루살렘 성전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날 시므온에게 한 꿈을 주셨는데 그것은 메시아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시므온이 살고 있던 을는 기원전 1세기였는데, 이 때는 헬라의 지배를 받다가 로마의 통치를 받는 극심한 격동기의 시기였다. 그러므로 유대 민족에게서 독립의 꿈은 점점 멀어져가고 새로운 강자인 로마의 지배를 받는 시대였다. 갈수록 더욱 커지는 민족의 고통과 함께 시므온에게 들려온 오래된 약속은 그의 노쇠한 육체와 함께 시들어가고 있었다.
 
시므온은 이런 모든 소망이 끝나가는 암울한 때에 살고 있었다. 이 고통의 시대에 시므온이 할례를 받기 위해 성전에 온 아기 예수를 가슴에 품으며 감격의 눔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믿고 이 모든 것을 자신의 눔으로 보고 들으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던 시므온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다.
 
요엘 선지자가 약속한 꿈을 꾸는 노인을 우리는 시므온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간절한 꿈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그러나 빨리 성취되지 않는다.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절망과 상실감 속에서 어두운 터널을 건널 때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시므온과 같은 최고의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시므온처럼 임진년에 이루지 못한 꿈을 계사년에는 꼭 이루어지기를 위해 간절한 바램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좋은 것은 언제나 미래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민족을 사랑하사 사람들마다 품은 선한 꿈들이 이뤄지게 하소서! 인내하며 기다리는 요엘처럼 믿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나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명수목사 / 온땅선교회


토-나는 어떤 종인가?
본문 : 누가복음 17:7-10
찬송가 : 333장
 
오늘 본문은 너무도 유명한 달란트 비유다. 이 비유에서 타국에 간 주인은 예수님이고, 타국은 승천하신 하늘나라며, 종들은 우리 성도들을 뜻한다. 시간이 오래 흘러 주인이 돌아왔다는 것은 주님의 재림을 뜻하고 주인이 종들에게 각자 다른 액수로 맡긴 달란트(화폐 단위)는 말 그대로 돈일 수도, 재능이나 능력을 뜻할 수도, 우리에게 맡기신 교회나 성도(사람)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단어는 무엇일까? 본문에 단 한 번 등장하지만 바로 '결산'이다. 재림하신 주님은 반드시 우리 모든 성도들을 불러 모아 마지막 결산을 하신다. 두렵고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섯 달란트 맡아 열 달란트 만든 종과 두 달란트 맡아 네 달란트 만든 종은 비록 받은 달란트도 다르고 남긴 달란트도 다르지만 주인의 칭찬과 상급이 글자 하나 안 틀리고 똑같다. 같은 종류인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등장하는 첫 번째 종류의 종은 '최악의 종'이다. 주인의 표현대로 하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요 '무익한 종'이다.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다. 활용도 안 한다. 맡기신 주인을 우습게 알고 나태하고 안일하게 대처한다. 게으른 종의 결산 결과는 그 있는 것마저 빼앗기고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이다.
 
두 번째 종류의 종은 '좋은 종'이다. 주인의 표현대로라면 '착하고 충성된 종'이다. 두 사람 다 자신의 재능과 능력대로 맡겨진 달란트를 최선 다해 두 배로 남겼다. 이 두 사람에게 주님은 참으로 귀하고 영광스러운 평가와 상급을 내리신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 두 종류의 종, 즉 '최악의 종'과 '좋은 종' 외에 또 한 종류의 종이 등장한다. 그는 '최상의 종'으로 누가복음 17장 7-10절에 나오는 종이다. 그는 '자칭 무익한 종'이다. 그는 하루종일 주인이 맡긴 사명(밭 갈고, 양 치고)을 감당한 후 집에 돌아와서도 쉬지 못하고 주인의 식사 시중을 든다. 끝도 없이 쉼도 없이 일한다. 그러나 그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 쓸모없는 종이라고,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이런 종이 바로 최상의 종이다. 안타깝게도 주님의 일을 실컷 하고도 까먹는 분들이 있다. 열심히 하는데 왜 안 알아주냐? 잘 했는데 왜 상 안 주냐고 묻는 사람들이다. 그 순간 하늘의 상급은 다 까먹히고 만다. 예수님만이 교회의 주인이시고, 우리 모두는 단지 무익한 종일뿐이다. 아무리 헌신과 봉사를 많이 했다 할지라도 나에게는 아무 권리가 없다.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성취하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 '최상의 종'이 되어야 한다. '자칭 무익한 종'이다. 이런 사람만이 하나님 영광을 위해 가장 귀하게 쓰임 받는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내가 주인이 아닌 종임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평생 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헌신하되 주님 앞에 서서 마지막 결산 할 때도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고백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하준목사 / 효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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