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렌은 언제 조선 땅을 밟았을까?

알렌은 언제 조선 땅을 밟았을까?

[ 교계 ] 알렌 조선 입국일 수정돼야

탁지일교수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2월 17일(월) 13:37

[특별기고]

알렌의 조선 입국과 관련된 역사서술의 수정이 필요하다. 모든 한국교회사 서술은 최초의 상주선교사 알렌이 1884년 9월 14일 상해를 떠나 조선으로 향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록은 사실이 아니며, 알렌은 같은 날 이미 조선에 도착해 있었다.
 
뉴욕 공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알렌문서(The Horace Newton Allen Manuscript Collection) 중 알렌의 자필 일기(The Allen Diary)에 따르면, 알렌은 9월 14일 상해를 떠난 것이 아니라, 이미 부산에 도착해 있었다. 알렌은 9월 14일자 일기에서 그가 조선을 향해 상해를 떠난 일과 부산에 대한 첫인상을 기록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교회사가들은 알렌이 상해를 떠난 사실 한 줄만 번역 인용하고, 알렌이 부산에 이미 도착했다는 뒷부분의 내용은 전혀 인용하지 않은 실수를 범했다.
 
부산세관박물관 기록에 따르면, 당시 상해에서 출발하는 모든 배는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부산으로 들어왔다. 당시 상해는 일본과의 교류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었다. 상해에서 나가사키까지는 이틀 이상이 걸렸고, 나가사키에서 부산까지는 꼬박 하루가 걸렸다. 즉 상해에서 부산까지는 최소 삼일이 걸린다. 만약 알렌이 나가사키에서 곧바로 조선으로 가는 배를 갈아탔다고 하더라도, 알렌이 9월 14일 부산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상해를 9월 10일 경에는 떠났어야만 했다는 결론이다. 게다가 만약 알렌이 나가사키에서 하루 이틀이라도 체류했다면, 알렌이 상해를 떠난 날은 9월 10일 이전이어야만 한다.
 
알렌이 미국장로교 해외선교본부에 보낸 10월 8일자 편지에서 "상해를 떠나 조선에 온 지 약 한 달이 되었다"고 보고한 것을 보면, 알렌이 상해를 떠난 날은 9월 8일 전후인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10월 1일자 편지에서 알렌은 "조선에 온 지 2주"가 되었으며, "처음 도착한 곳은 (서울에서 48시간가량 떨어진) 조선 남쪽의 일본인 항구인 부산"이라고 분명하게 그의 조선 입국 경로를 밝히고 있다.
 
이러한 오류는 백낙준의 예일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한국개신교선교역사'(The History of Protestant Missions in Korea)의 한국어판인 '한국개신교사'(1973)로부터 시작되었다. 백낙준은 알렌의 9월 14일자 일기 첫 줄인 "한국으로 가기위해 상해를 단신으로 떠났다(Left Shanghai alone for Corea)"라는 내용만 인용하고, 나머지 부산 도착에 관한 대부분의 내용은 인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알렌이 9월 14일에 상해를 떠난 것처럼 알려지게 되었고, 알렌의 일기를 직접 접하기 어려웠던 백낙준 이후의 교회사가들은 일차자료에 대한 사실 확인 없이 이 오류를 계속해서 재인용한 것이다.
 
역사는 사실(事實)에 기초해 진실(眞實)을 탐구한다. 취사선택(取捨選擇)은 역사기술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요소이다. 한국교회사(韓國敎會史)의 첫 장을 장식하는 첫 상주선교사 알렌에 관한 기록은 반드시 수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교회의 개신교역사 및 선교역사는 알렌의 한국도착을 기원으로 하기 때문이다. 1884년 9월 14일, 알렌은 중국의 상해가 아닌 조선의 부산에 있었다.  

탁지일교수/부산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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