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웁살라총회(1968년)

제4차 웁살라총회(1968년)

[ 교계 ] 교회와 세상의 경계를 허물다

장창일 기자 jangci@pckworld.com
2012년 02월 21일(화) 16:21
4차 총회는 스웨덴 웁살라에서 개최됐다. 네덜란드 암스텔담에 이어 유럽에서는 두번째로 열린 이 총회에는 2백35개 회원교회로부터 7백4명의 대표들이 참석했다. 특히 아르메니아 정교회를 비롯한 여러 정교회들이 가입했다. 또한 이 시기는 WCC의 창립에 참여했던 초창기 지도력들이 물러나고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때이기도 했다. 당시 총무는 미국의 유진 블레이크(Eugene Carson Blake)였다.

4차 총회가 열린 60년대는 세계사적으로 큰 혼란기였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오히려 핵무기 개발 경쟁이 첨예하게 벌어졌다. 이어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 암살(1963년)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1968년)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1965년엔 월남전이 시작됐고,1967년 중동 지역에서는 6일 전쟁이 발발했다. 체코에서 1968년 일어난 민주화 열기는 소련 군대의 학살로 무참히 막을 내렸다. 더불어 혁명의 열기가 용솟음 치기도 했다. 1963년 미국에서는 20만 명의 흑인들이 인권을 요구하는 시위에 나섰고 1968년엔 유럽 전역에서 학생들의 반전시위가 일어났다. 세계교회도 여러 변화를 겪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년~1965년)를 열어 교회개혁을 단행했고,메델린 주교회의는 1968년 가난한 사람들을 지지하는 정치적 선택을 했다. 1963년 몬트리얼에서 열린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대회에는 동방 정교회가 참여했고,1965년도에는 로마 가톨릭교회 대표가 신앙과 직제 안에 있는 '연합연구위원회'(Joint Working Group)에 참여했다. 1963년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WME)는 개교회의 선교구조를 다루었는데 선교의 영역을 6개 대륙 전체임을 확인했고,서구와 비서구권의 교회들이 선교에 있어서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정의 내렸다. 1966년엔 삶과 일이 제네바에서 '교회와 사회에 관한 세계대회'를 열고 경제정의와 개발문제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열린 4차 총회에서는 요한계시록 21:5 말씀에 따라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리라'(Behold,I make all things new)를 주제로 정했다. 당시 에큐메니칼 운동의 주요 논점은 사회정의와 경제정의에 맞춰졌다. 혁명적 시기에 열리는 총회를 준비하며 WCC 지도부는 기독론을 넘어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약속을 주제로 정했다. 주제성구는 역사의 최종적인 의미가 밝혀지는 순간을 미리 보여주는 의미가 담겼다. 이 주제는 WCC가 '교회일치'와 '선교'보다 '세상'의 혼란한 현실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시대적 당위성을 담아냈다. 하나님의 관심이 '만물'에 있다는 것은 전통적으로 교회가 가져왔던 교회와 세상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했다. 다시말해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는 세상이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장소이며, 이곳에 교회가 함께 일하도록 요청받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선교 신학이 강하게 표현됐다. 주제 안에서 새로움은 질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움은 개인 뿐 아니라 역사 전체를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4차 총회 때의 교회일치론은 교회의 가시적 일치와 인류의 일치를 연결시켰다. 교회 에큐메니즘을 인류 에큐메니즘의 중심에 놓고, 교회일치를 인류일치를 위한 종말론적 징표로 이해했다.
 

(자문:서울장신대 정병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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