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부랑 학생들로 북적거리는 소문난 교회, "어르신들의 즐거운 학교"

꼬부랑 학생들로 북적거리는 소문난 교회, "어르신들의 즐거운 학교"

[ 교단 ] 빛나는 교회 소금같은 교회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2년 02월 20일(월) 16:02
 10여년 간 운영하며 지역의 자랑거리, 매주 1백 ~ 1백50여 명 모이며 성장
 새신자 등록 해마다 늘어, 이창희목사 노인복지 공로인정 '대통령상' 표창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용평리. 이 작고 조용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노인 문제다. 젊은이들은 이미 도시로 나간 지 오래고 지역에 거주하는 촌로(村老)들은 하루 하루가 무료하다. 나이가 들어 농사일을 거들 수 없어 집안에서 멍하니 바깥 마당만 바라보거나 마을 노인정에 모여 화투나 장기로 소일하는 것이 평범한 일상이었다. 함양교회가 노인학교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함양교회는 비록 큰 규모의 교회는 아니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노인학교를 운영해왔다. 다른 교회에서 운영하는 노인학교에 비해 특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대규모의 예산이 투입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레크레이션 꺼리가 없는 노인들에게는 고마운 곳이었다. 비교적 평범하게 운영되던 함양교회의 노인학교는 지난 2009년 이창희목사가 부임하면서 '물 만난 고기'처럼 더욱 신명나고 흰머리 꼬부랑 학생들로 북적거리는 소문난 학교가 됐다.
 
이 목사가 부임할 당시 함양교회 노인학교에는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전문가도 없었고, 커리큘럼도 부족해 외부에서는 노인학교가 운영되는지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2009년 부임한 이창희목사는 자신의 노하우를 총동원해 노인학교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이 목사는 한국교회노인학교연합회 창립멤버로서 이전 시무하던 교회인 연무대교회에서도 19년간 노인학교를 운영해온 우리나라 노인학교 개척자 중 한명. 이러한 풍부한 경험을 가진 그이지만 최고의 노하우는 역시 몸소 현장에서 발로 뛰며 부딪히는 것이었다.
 
그는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며 지역의 노인들에게 필요한 요소들을 알아나갔고, 실제 운영과 커리큘럼에 적용해나갔다. 노인들과 살을 맞대고 아들처럼 동생처럼 구는 이 목사의 노력은 금방 그 효과를 드러내 매주 적게는 1백명에서 많게는 1백50명이 모이는 소문난 노인학교가 됐다. 이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기 위해 강사비, 식비, 간식비, 차량운행비 등을 모두 감당하려면 1년에 적어도 2천만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됐지만 함양교회의 규모가 크지 않아 노인학교의 운영비 예산은 6백여 만원 정도밖에 지원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목사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프로그램을 축소하거나 하고 싶은 것을 중단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든 그 일에 필요한 재정을 채워주십니다. 이전 시무하던 연무대교회에서도 예산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노인학교를 시작해 19년동안 소문난 노인대학을 운영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 목사는 노인학교가 비단 교회만의 기관이 아닌 지자체와 지역민들이 함께 하는 기관이어야 한다는 철학이 있었다. 그는 지역의 관공서장들과 유지들, 교인들 등 이사 40명을 위촉해 이사회를 만들었다. 이 이사회의 이사들은 함양교회 노인학교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이사회비는 비록 1년에 10만원에 지나지 않았지만 행사나 여행을 갈 때마다 찬조를 해주며 이 목사의 사역을 격려했다.
 
노인들을 위해 교회가 아낌없이 베풀자 인생의 도리를 아는 노인들도 교회로부터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노인들은 교회에 고맙다며 집안에서 농사를 지은 호박, 고추, 쌀 등 농산물이나 과일을 가져와 함께 나눴다. 쌀과 간식, 그리고 반찬거리의 상당부분을 노인학교에 참석하는 노인들 스스로가 가져온 물품으로 채워졌다. 이러다보니 주최측과 수혜측, 이쪽 저쪽의 구분도 모호해지면서 그야말로 함께 만들어가는 노인학교가 되어 갔다.
 
함양교회 노인학교의 프로그램 중 가장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바로 해외여행이다. 2009년 부임한 이래 노인대학에서는 제주도, 일본, 중국, 태국 등으로 여행을 떠났다. 농촌에 사는 노인들이 평생 자녀들을 위해 헌신했지만 정작 자신은 외국을 한번도 나가보지 못한 이들이 많다는 것을 이 목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안타깝게 여긴 이 목사는 노인들을 격려하고, 여러 곳에서 후원을 이끌어내 노인들의 평생 숙원인 해외여행의 꿈을 성취시켜 주었다.
 
이 목사는 틈만 나면 노인들에게 "다 쓰고 돌아가시라"며 국내 명소로도 자주 나들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
 
이러한 헌신적인 어르신 섬김은 지역사회에 교회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 교인 증가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국교회가 정체 내지 마이너스 성장인데도 불구하고, 더군다나 인구가 별로 없는 군 단위임에도 불구하고 새신자 등록 인원이 2009년 50명, 2010년 82명, 2011년 63명으로  이전 대비 3~4배 증가했을 정도.
 
이 목사 개인적으로도 노인들 복지를 위한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보건복지부로부터 노인의 날을 맞아 대통령상을 표창받았다. 현재 이 목사는 한국교회노인학교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노인학교가 잘 되려면 교사들이 체질적으로 노인을 좋아해야 한다. 노인들의 냄새가 구수하게 느껴져야 한다"는 이 목사는 "노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예산, 커리큘럼 등의 문제는 장애물이 될 수 없다"며 "더 많은 교회들이 노인들의 복지에 관심을 갖고 투자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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