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와 위대한 침묵

한국교회와 위대한 침묵

[ 기고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1월 22일(금) 15:28

 
"봄은 겨울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침묵으로부터 온다. 꽃들은 침묵 위에 내려앉고 계절의 순환을 경험한다." '침묵의 세계'라는 책에서 읽은 문장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러닝타임 '침묵'의 1백 68분이 '아바타'(1백62분) 보다 지루하지 않다는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필립 그로닝 감독은 해발 1천3백m 알프스 깊은 계곡에 있는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일상을 담은 침묵으로의 여행이다. 특정 수도사들의 인터뷰도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만한 나레이션도 없다. 더군다나 감정을 자극할 음악이나 조명도 없다. 어떤 윤색도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다. 언어가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보기 시작한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침묵의 세계이다. 필자는 이 다큐를 보면서 자신의 내면과 한국교회를 새롭게 생각하면서 세미한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자신을 발견하려거든 고독한 고요를 찾아야 한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고독과 침묵훈련이다. 고독과 침묵으로의 초대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변화와 성숙의 삶이 되기위해서 절대 필요한 것이 '침묵연습'이다. 고독 속에 머물러 있음은 내려놓음이 필요하다. 성취와 실용을 포기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고독을 완성하기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침묵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는 고독과 침묵속에 들어가면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께 요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나는 그분의 소유로 족한 것이다.
 
위대한 침묵을 통해서 일상생활에서 요구되는 소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바쁜일상으로 인한 쉼의 굶주림과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로 소란스럽고 어지러운 일들로 인한 고요함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사실 한국교회는 '말씀'은 부재하고 '말'이 많다. 고독한 삶을 사는 소명이 필요하다. 물론 말없다고 그것이 침묵은 아니다. 말은 없지만 내면은 전쟁이다. 우리는 침묵훈련을 통해서 침묵기도를 해야한다. 욕망의 소리를 주님께 소리쳐 기도하는 것만이 기도가 아니다. 텅빈 깡통처럼 소리만 요란한 한국교회가 되지않기 위해서는 침묵으로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때 진리는 채워지는 것이다.
 
엘리야가 호렙산에서 주님을 만날 때 강한폭풍에서도, 지진속에서도, 불꽃속에서도 주님은 계시지 않았다. 고요히 속삭이는 세미한 음성으로 들리는 것이다.
 
침묵이 사라진 한국교회는 삶의 느린 리듬에 관한 시적인 에세이라고도 부르는 '위대한 침묵'을 통해서 변함없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그리고 속도와 경쟁을 강요하는 현대사회와 한국교회에 그동안  잊고 지냈던 일상의 의미를 사물의 가치를 만날 수 있다. 수도원 너머의 세상을 볼 수 있게하는 최고의 아름다움과 고요함이자 감동 그자체이다.
 
고독과 침묵속에 들어감은 영성의 삶을 진지하게 하는 것이다. 삶의 소음을 가라앉히고 영적 변화의 모험으로 나서는 것이다.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뜻을 이루실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위대한 침묵'이 내면을 고요히 들여다 보는 가장 좋은 때다. 침묵속에 만난 주님이 가장 좋은 삶임을 확인하는 새해가 되길 기원한다. 
 
졸시 <위대한 침묵>
 
깊은 계곡/눈부시도록/고요한 세계에/땡그랑 땡그랑//해가 뜨고/달이 지는/계절의 풍경에/땡그랑 땡그랑//땅에 닳도록/넙죽 엎드려/속삭이는 소리에/땡그랑 땡그랑//작은 불꽃들이/고독한 창문을 통해/활활 타올라/땡그랑 땡그랑//끊임없는 적막함에/자신의 영혼을/통째로 헹구며/땡그랑 땡그랑

장  헌  권
목사ㆍ광주 서정교회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