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교회', '큰 교회'

'작은 교회', '큰 교회'

[ 기고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1월 22일(금) 15:26


강남의 한 교회 예배당 건축의 건이 한국교회에 관심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의 시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교계신문이나 인터넷 뉴스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표적인 일간신문의 칼럼에까지 등장하였으니 그 사건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를 알 만하다. 머지않아 또 하나의 대형교회가 나타날 것이다. 아마 앞으로 그 교회의 예배당건축 성공신화가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이다. 그 교회가 이토록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는 이유는, 지금까지 많은 국민들로부터 그야말로 '사랑'을 받아왔고 또 선망의 대상이 되어 온 모범적인 교회였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고 그런 교회였다면 아마 지금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교회가 대형 예배당을 짓는 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완성하고 나면 그동안의 불편한 것들이 일시에 사라지고, 예배, 교육, 친교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그러면 많은 인력과 재정이 몰려올 것이고, 그러면 한국교회와 세계선교를 위해서 큰 일을 하게 될 것이고, 사회를 향한 영향력도 크게 증진될 것이다. 아마 99%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잘 된 것이 아니냐 라고 말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먼 훗날에 이것이 하나님을 위한 큰 일로 기억될지, 아니면 하나님이 원치 않으셨던 큰 일로 기억될지는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항상 고백하듯이 교회는 사람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이며, 교회의 머리는 목회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며, 교회의 능력은 교인의 수나 헌금액수가 아니라 성령님이시다. 그러므로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일은 사람 숫자나 돈의 크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다. 구약에서 여호와께서는 풍요의 신 바알숭배를 줄기차게 비판하셨고, 신약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맘몬(재물, 돈)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분명하게 가르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무리 경책을 하셔도 이스라엘에 바알숭배가 사라지지 않았고, 기독교 교회사에서 물신숭배도 근절되지 않았다. 왜 그렇겠는가? 돈의 힘이 너무나 근사하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약하고 가난한 것들을 통해 나타난다. 바울은 건강한 육체로 하나님을 위해서 큰 일을 하기 위해 세 번이나 기도했지만, 거절당하고 그 대신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진다”는 말씀을 들었다. 그 이후 바울은 강한 사람이 되려 하지 않고 약한 것을 자랑하였다.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전쟁을 위하여 3만 2천명의 군사를 소집했다. 적군인 미디안 군사는 13만 5천명이었으니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군사 숫자가 너무 많으니 줄여라 하셨다. 그리하여 2만 2천 명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1만 명이 남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전히 너무 많다고 하시며 또 많은 숫자를 돌려 보내게 하셨다. 이리하여 남은 군사는 겨우 3백명! 적군 대 아군의 비율은 450:1로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전쟁이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결코 불가능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숫자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은 거기서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300명이 13만 5천명을 초토화시키고 말았으니 말이다. 큰 교회가 되어야 큰 일을 할 수 있다면,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하나님은 절대로 기드온의 군사들을 집으로 보내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큰 교회라야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강남의 그 교회와 그리고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은 교인의 숫자가 많아야만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이 오늘날에는 권능을 많이 상실하신 것인가 염려가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돈과 권력, 사람의 숫자로 일하신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바알의 사상일 뿐이다. 돈과 권력의 집결지였던 거대한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소멸시켰고, 그래서 급기야는 철저히 파괴되는 운명을 맞았다.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영광은 말구유로부터, 가난한 자들 사이에서,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나타났다.
 
하나님의 영광은 작은 교회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오히려 약한 교회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숫자도 적고, 돈도 적은 교회, 작아서 스스로는 일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만 비로소 일할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바람직하다. 일부러 교인을 쫓아내어 사이즈를 줄이라는 뜻은 아니다. 큰 일을 하기 위해서 큰 교회를 만든다는 것은 아마 하나님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큰 교회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큰 일을 하실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기뻐하시겠는가? 교회가 할 일은 스스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작고 약함을 고백하며 강대하신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세상으로부터 욕 얻어먹지 않고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최  태  영
영남신대 교수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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