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무릎

기도의 무릎

[ 목양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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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15일(화) 17:39

남기탁/목사 ㆍ 복된교회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성장하던 교회가 어느 사이 정체현상이 일어나 마이너스 성장이란 말을 사방으로부터 듣고 보니 우리의 심령에 큼직한 부담을 느끼며 무거운 짐을 진듯한 중압감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됐다. 왜 이같은 현상이 일어나 성장이 멈추게 되었는가를 살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불일 듯 일어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신학교를 졸업한 지도자는 해마다 늘어나고 또한 교회의 중직자인 장로, 집사, 권사들도 해가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는데 교회 성장이 마이너스가 되는 이유는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고민하며 그 해결책을 찾느라 애를 쓴다. 어쨌든 치유하지 않으면 이같은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 멈추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50년대로부터 시작해서 80년대까지 이어져 오던 산상기도, 구국기도, 여름철만 되면 기도원마다 넘쳐났던 산상특별성회가 때로는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때 그 시절 교회들은 힘찬 성장이 있었다. 그러나 요사이는 기도원을 찾는 이도 없고 가는 이도 거의 없어졌으며 구국기도회나 특별 산상기도회를 갖는 교회도 대부분 사라지고 있으며 또한 서울근교 산상 금요 기도회도 사라졌기에 밤마다 구성지게 들려오던 '주여!, 주여!'라는 울부짖는 기도의 소리도 거의 들려오지 않는다. 이로 인해 주변 사람들의 수면에는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나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상태나 목회자들의 영성은 빈약하기 그지없게 되었으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이론이나 이성적 판단과 지적인 욕구로만 방향을 전환해 가고 있기에 교회마다 박사학위 없는 목사가 별로 없으며 부목사들까지도 대부분 석사학위 이상의 학력을 소지한 자들로서 신학적인 수준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해외 교회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왜냐하면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외국 유학생들이 속속 한국으로 찾아와 신학을 공부하는 자들이 하나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문제는 이들의 모습에서 뜨겁게 기도하고 타오르는 영성을 가꾸는 모습을 보여주기 보다는 주간 중 한번정도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서 모든 영적의무를 다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보여 마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며칠 전 서재에서 말씀을 준비하고 있던 중 노크 소리와 함께 조용히 들어온 파키스탄 목사님 한분이 있었다. 그가 찾아온 이유는 서울 여의도 모 교회에서 하는 교회성장 세미나를 참석했다가 여기까지 왔노라고 하면서 돌아갈 여비인 비행기 값 65만 원을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그때 그 젊은 목사는 자신이 목사라는 신분임을 증명하고자 온갖 증명서를 다 끄집어 내놓았다. 그의 증명서 중에는 '목사의 신분증'이라는 것도 있었고, 그것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목사라는 것을 믿어 달라고 했다. 그러고도 부족한 듯 느껴졌는지 가방 안에서 자국어로 된 자기의 성경책까지 꺼내어 보여주면서 자기가 목사임을 믿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그의 딱한 사정을 알아차리고 어느 정도 구제비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그는 더 많은 것으로 도와 달라고 했다.

더 이상은 돈이 없어 도울 수가 없다는 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막무가내였다. 그때 나는 그에게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라는 시편 146장 3~5절 말씀을 찾아 읽어 보이면서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그는 무작정 한 시간 정도를 막연히 앉은 채로 있다가 돌아갔다.

그런데 문제는 이 분의 신분이 불확실해서가 아니다. 그가 보여주었던 성경이 내게는 문제가 되었다. 소위 목사라는 사람이 보여준 손때하나 묻지 않고, 밑줄 하나 쳐져있지 않고, 메모해 놓은 흔적하나 찾아 볼 수 없는 깨끗한 성경, 그것이 내 마음에 걸려 안타까움을 더해 주고 말았던 것이다. 그가 목사였다고 한다면 좀 더 성경을 탐독하고 좀 더 기도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어느 나라 목사나 장로, 중직자라 할지라도 외적 직분자의 자격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적으로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맺고 성경을 읽고 기도의 무릎을 좀 더 꿇었더라면 인간적인 도움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모든 것이 풍성하여 졌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이제부터라도 좀 더 성경을 읽고 좀 더 무릎을 꿇고 기도하자. 기도의 무릎을 꿇는 만큼 정비례로 성장도 다시 일어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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