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라이벌은 예수님

내 라이벌은 예수님

[ 제10회 기독신춘문예 ] 제10회 기독신춘문예 당선작 <동화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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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17일(금) 14:22
   
▲ 그림 이은지

글  김 희 정

'도둑질인가? 아니야 잠시 빌리는 것뿐 이야…….'
겁이 덜컥 나며 오줌이 마려웠다. 
급식 시간은 늘 시끌벅적 활기차다. 밥알을 튀기며 떠드는 친구도 있고 얌전히 밥만 먹는 친구도 있다. 다 먹고 나면 늘 알림장 검사를 맞는다.

내 눈동자는 우리 모둠 친구들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기회를 엿봤다. 모두 다 알림장을 들고 나갔을 때 얼른 일우 가방에 손을 넣었다. 순간의 행동이었다. 시험지를 꽉 움켜쥐는 순간 가슴이 쿵덕쿵덕 거리고 시커먼 손이 목덜미를 덥석 잡을 것 같은 공포감이 몰려왔다. 심장이 귀 안에서 뛰는 듯 하고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아니야, 아니야, 도둑질 아니라고, 잠시 빌리는 것 뿐이야.'
윗도리 주머니에 시험지를 쑤셔 넣으며 허겁지겁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나오는 일우와 얼떨결에 부딪쳤다. 다시 한 번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을 친다. 
"어이 순돌, 수학 1백점 맞으면 휴대폰 받기로 했다며? 성공했냐?"
'1백점 아닌 거 뻔히 알면서 저 자식이 또 약 올려?'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속에서도 화가 불쑥 났다. 대꾸도 않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어제 국어시간에 이름으로 삼행시 짓기 할 때도 은근히 나를 무시했다. 
"이름으로 삼행시 짓기다, 잘하는 사람 청소 당번 면제다."
선생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일우는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들었다.
"진-진짜로 똑똑한 
일-일등만 하는 
우-우등생 진일우”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우우우~하는 소리에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리며 개그맨 흉내까지 냈다.
"여러분, 저는 틀린 말은 안 할 뿐이고~."
선생님만 공부 잘하는 아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더 공부 잘하는 아이를 인정해 준다.    
"최순남 이름은 선생님이 해본다."
"최-최고로
순-순한
남-남자. 우리의 사랑스런 순돌이."

갑자기 순돌이까지 거론하는 선생님도 짜증났지만 한 마디 거드는 일우가 더 싫었다. 
"최-최고로
순-순종하는
남-남자, 진일우의 추종자.”

내 이름과 별명이 시시해 보여 싫고 더군다나 '진일우의 추종자?' 어이가 없었다. 신났다고 크게 웃는 녀석에게 주먹을 한 대 날리고 순하다는 꼬리표를 떼어버리고 싶었다.
'이게 다 축 처진 눈 때문이야.'
순하다는 말이 듣기가 싫다. F4니 얼짱이니 소리는 못 들어도 순돌이가 뭐냔 말이다. 어렸을 적엔 눈 때문에 귀엽다는 얘기도 많이 듣고 좋았지만 커 가면서 내 별명을 순돌이로 만들어 버렸다. 내가 거울을 봐도 축 처진 눈이 강아지 닮았다. 속으로만 구시렁거리고 별명이 싫다는 말 한 번 제대로 못하는 내 성격도 한 몫 단단히 했지만 말이다.

그 때 하람이의 고운 목소리가 들렸다.
"최-최고의
순-순정파
남-남자, 여자들의 로망, 최순남."

일우가 내 기를 팍팍 죽이는 악마라면 하람이는 수렁에서 나를 건지는 천사이다. 물론 나에게만 친절한 것이 아니고 별명이 하람천사이다. 아이들도 하람천사를 따라 기분 좋게 웃었다. 어제 하람이가 했던 삼행시를 떠올리면 사랑 고백이라도 들은 것처럼 오늘까지도 가슴이 벌렁벌렁 거린다.

오늘도 마지막 5교시에 국어시간이다. 하람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늘 일우가 먼저 발표해서 김새게 만든다. 머릿속으로 발표할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으면 이미 녀석은 손을 들고 있다. 
화장실에서 부딪친 것도 짜증나는데 오늘도 나에게 거들먹거린다. 

엄마 몰래 학원 몇 번 안간 것, 쪽지 시험 본다는 말 안한 거, 숙제 안 해서 벌 선 것, 달리기에서 꼴찌 한 것, 학교 앞 문방구에서 게임한 것 등 나도 엄마에게 말 안한 것이 많다. 우리 엄마에게 고자질 안한다는 이유로 일우는 나에게 함부로 대한다. 

"어이 순돌, 오늘도 형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라. 하하하."
 '자식아, 뭐 형님이라고?'
 "무슨 도움? 그런 거 필요 없어."

기어가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늘 나를 무시하는 장난에 목구멍까지 굴욕감이 치밀었지만 참았다. 이상하게 녀석 앞에서는 주눅이 든다. 엄마는 어쩌다 저런 녀석의 엄마와 고등학교 때 친구란 말인가? 일우를 생각하면 4학년 올라와 3개월이 지옥이고 하람이를 생각하면 천국이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것도 아니고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잘 아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 때문에 누군가가 지옥처럼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다.

'하람이는 일우를 좋아할까? 설마 아니겠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하람이가 일우를 좋아한다면 그것이 더 화나고 못 참을 것 같다.  
"자, 오늘은 존경하는 인물이나 좋아하는 인물을 이야기하고 왜 좋아하는지 이유를 발표하는 시간이에요"
이런 발표 시간이 많은데 나는 싫다. 더듬거리는 내 말투도 싫고 얼굴이 발개지는 내 모습도 창피하다. 오늘은 일우 시험지까지 훔친 상태라 더욱더 가시방석 같은 시간이다. 

박태환, 김연아, 이순신, 오바마, 반기문 그리고 연예인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발표되었다. 드디어 하람이 차례다.
"강하람 나오세요."
하람이가 내 자리를 지나쳐 앞으로 나갈 때 향기로운 꽃냄새가 나는 듯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눈에만 콩깍지가 끼는 것이 아니고 코에도 향수가 부어지나보다.

"제가 존경하는 인물은 예수님이고 이상형의 인물도 예수님이에요."
아이들의 의아한 웃음 눈빛과 더불어 짓궂은 정호가 질문을 던진다.
"예수님? 네가 예수님을 봤냐? 잘 생겼어?"
"얼굴이 못 생겼어도 좋아해요. 공부 잘한다고 성격이 다 좋은 것이 아니듯이 외모보다는 마음이 중요하고 예수님은 사랑이 가장 많은 분이에요.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 수 있고 예수님을 더 알고 싶은 친구는 저에게 전화주세요. 요번 주일에 우리 교회에서 전도축제가 있어서 우리 반 친구들을 모두 초대하고 싶어요."

그리고는 칠판에 휴대폰 번호를 적었다.
'공부 잘한다고 성격이 다 좋은 것이 아니듯이.'   
'예수님은 사랑이 많은 분이예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알아요.'
하람이의 말들이 음표가 되어 춤추며 떠다니고 음악소리가 되어 들린다. 일우 성격이 나쁘다고 얘기 하는 것처럼 들리고 착각일지라도 날듯이 기쁘고 붕 뜬 기분이다.

그런데 나는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그러니까 신의 아들이라는 것과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던 영화 장면만을 알 뿐이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며 일우와 하람이 생각이 번갈아 났다. 주머니에 손을 쑥 넣어 시험지가 만져지자 다시 또 가슴에 돌덩이 같은 것이 무겁게 매달리는 느낌이다.   
 '괜찮아, 별일 아니야.'
 '아니야, 잘못했어. 가져다 놔.'
마음속의 천사와 악마가 계속 싸우고 있다. 두 놈이 계속 싸움을 하고 있는 와중에 잔뜩 움츠리며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누군가와 통화중이다. 
"우리 순남이는 수학만 부족하지 다른 건 다 백점이야."
거짓말하는 엄마를 보며 처음에는 좀 의아했지만 오히려 편했다. 나의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엄마의 거짓말이 위로하고 있었다.  

'엄마도 거짓말을 하네……. 얼마나 1백점 맞는 것을 보고 싶으면?'
이런저런 생각 중에 엄마도 나처럼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인사를 하고 엄마의 거짓말을 못 들은 척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주머니에서 뭉쳐진 시험지를 꺼내 펼치자 진일우 이름도 구겨져 있다. 이름이 망가져 있으니 통쾌하다. 이름 옆에 빨간 색 연필의 1백자와 밑 줄 두 줄과 별표가 반짝인다. 진일우 이름을 서걱서걱 지웠다. 녀석 이름이 똥이 됐다. 녀석 심보처럼 시커먼 지우개 똥 말이다.    

'이 똥일우야.'
긴장해서인지 연필이 자꾸 손가락 사이에서 미끄러진다. 한 번 더 꽉 쥐고 어설프게 최순남을 썼다.
'그래, 잠시 빌리는 거야. 엄마에게 검사만 맞고 내일 돌려주면 돼.'
그런데 1백점 옆에 쪼그라들게 붙어있는 '최순남'이라는 이름이 너무도 초라하고 어색했다. 
'내가 뭐하는 거야? 저깟 1백점 때문에 치사하게 가짜 시험지를? 그것도 똥일우 시험지를?'
하지만 또 다른 생각도 들었다.

'아니야, 가짜 1백점이라도 보여드려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자.'
계속 두 마음이 싸우고 있을 때 엄마가 들어왔다.
"순남아, 수학 몇 점이야?"
문이 열리자 나도 모르게 예상 못한 대답이 튀어 나왔다.
"시, 시, 시험지 아직 안 받았어요."
1백점 시험지가 준비 됐는데도 선뜻 내밀게 되지 않았다.
"왜 더듬거려? 시험 못 봤어?"
"못 믿겠으면 또 엄마 친구에게 전화해보세요."
"내가 매일 전화해서 확인 하는 줄 아니? 아들을 믿지."

오늘은 왠지 엄마의 말이 진실로 느껴졌다. 갑자기 가방에 쑤셔 박은 진짜 내 시험지 생각이 났다. 엄마가 나간 후 가방을 뒤적이며 내 시험지를 꺼냈다.
<최순남-68점>

별표도 없는 시험지이지만 최순남 이름에 익숙함과 편안함이 밀려왔다. 갑자기 모든 모험이 낯설었다. 아니 모험이 아니라 거짓 연기다. 도둑질과 거짓말은 생각 이상으로 겁나고 어려운 일이었다. 

월요일까지 이렇게 불안한 상태로 지낸다는 것이 너무 싫었다. 갑자기 하람이가 좋아하는 예수님이 궁금했다. 어떻게 해결했을까? 인터넷에 접속했다. 다른 때 같으면 게임부터 했을텐데 정보 사이트에서 예수님에 대하여 먼저 검색했다.

'하람이가 좋아하는 예수님은 내 라이벌이다.'
예수님이 한 일을 클릭하여 읽다가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조각으로 오 천 명이 나눠먹게 하고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허걱, 이런 기적을 행해서 하람이가 좋아하나? 나랑은 게임이 되지 않겠네, 이런 분이 진짜 있다면 나도 형님으로 모시고 싶다.'

거짓말 같은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컴퓨터 화면에 뜬 예수님의 평안한 얼굴이 실제 있는 분 같이 느껴지는 것이 신기했다.

'하람이에게 전화라도 해볼까? 이럴 때 휴대폰이 있으면 문자라도 보낼텐데…….'
빨리 휴대폰을 갖고 싶었다. 이래저래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결심이 솟구친다. 그 때 하람이에게 전화가 왔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도 안 부러운 순간이었고 전화 목소리는 더욱 더 다정했다.

"순남아, 내일 우리 교회 친구초청 하는 날인데 너도 초대하고 싶어,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예수님 얘기를 들려주고 싶어."    하람이와 함께라면 어디라도 따라 가고 싶었다.

 "그래, 몇 시에 가는데?"
 "내일 일단 학교 정문 앞에서 10시에 보자. 예수님이 제자들 발을 씻겨주신 세족식을 우리들도 한데."
 "뭐? 발을 씻어줘? 누가?"
 "교회 집사님들이나 권사님들 그러니까 어른들이 하실 거야."
 "예수님이 기적을 많이 보여주셨던데 언제 남의 발까지 씻어줬냐?"
 "하하하, 그러니까 나의 이상형이지."
 "내 발 더러운데……."
 "발도 소중한 신체의 부분이야, 그런 걱정 말고 내일 편하게 만나자."
 통화를 한 여운이 무척 행복감에 취하게 했다.


밤에 잠이 깊게 안 들어 계속 뒤척였는데도 일찍 잠이 깼다. 쉬는 날 이렇게 일찍 잠을 깨는 것도 드문 일이다.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일찍 집을 나섰다. 하람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문방구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생일도 아니고 그냥 선물을 줄 핑계거리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터드럭거리며 문방구를 나와 학교로 갔다.

학교 앞에는 하람이와 여자친구 둘과 남자친구 하나 그리고 일우가 있었다. 일우를 보는 순간 기분이 잡쳤다. 늘 악마는 천사를 시기하여 따라붙기 마련이다. 악마가 입을 여는 순간 나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어이, 순돌, 어제는 무슨 거짓말 했냐? 네 엄마 또 전화했더라."
 어제는 나를 믿어주는 줄 알았는데 엄마에게 순간 서운함이 밀려왔다.
 '참자 그래, 나도 엄마를 속였잖아…….'

엄마를 이해하려 해도 더 화가 났다.
"자식, 형님 잘 둔거 고맙게 생각해라."
내가 만만한지 또 거들먹거린다. 이것도 모두 내 탓이었다. 하람이 앞에서 더 이상 비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저 녀석의 거짓말 도움 따위는 이젠 받고 싶지 않아.'
"누가 도와 달랬어? 엄마한테 모두 사실대로 말했어."

나는 있는 목청껏 크게 소리 질렀다. 내 행동에 나도 놀랐다.
일우도 우렁찬 내 소리에 움칫 거린다.
"미안해, 거짓말해서, 네 엄마 어제 전화 안 왔어."
엄마는 나를 믿은 것이다. 마음속에서 울컥 기쁘고 뜨거운 무엇인가가 올라왔다. 
"이 자식아 나도 알아, 우리 엄마는 나를 믿어, 한번만 더 형님이니 뭐니 헛소리 하면 안 참는다. 예수님 정도라면 내가 형님으로 모시겠다."
"예수님을 형님으로 모신다고?"
아이들은 박장대소를 했다.
"최순남, 너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조폭 분위기 난다. 웬 형님?"

아이들이 웃을 때 일우와 하람이는 웃지 않고 나를 의아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그동안 참았던 큰소리를 치면서 가슴속이 뻥 뚫렸다. 오늘은 최순남의 완벽한 승리다. 왠지 뭔가를 이룬 듯이 뿌듯하고 편안했다. 
"순남아, 일우야 싸움 그만하고 빨리 교회 가자."
우리는 교회를 향해 걸어가며 하람이에게 좀 민망했다.

교회는 하얀 건물에 뒷마당이 있고 아담했다. 뒤뜰이 무척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정원이 있는 집에 초대받아 온 느낌이었다.
"하람아, 교회가 아니고 아주 부잣집에 초대받아 온 느낌이야."
"분명 초대받아 온 거 맞아. 하나님만큼 부자 없고 너희들을 초대하신 분도 내가 아닌 하나님 예수님이야."
"어, 그래? 하나님이 우리에게 초대장이라도 보냈어? 어디 보여줘 봐."
"그래, 조금 있으면 그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아이들의 질문에 하람이는 웃으며 대답했다.
들어가는 입구에 액자가 하나 걸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 하십니다.>
갑자기 마음이 찡해졌다. 나같이 공부 못하고 평범한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신다는 말로 느껴졌다.

우리는 다른 친구들과 둥그렇게 앉아서 전도사님과 함께 게임도 하고 얘기도 하고 발표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즐겁게 보냈다. 더군다나 내 발까지 누가 씻겨주셨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행복했다. 예수님에 대한 얘기도 많이 듣고 하람이는 교회에서 보니 더 예뻐 보였다.

'원수를 사랑하라.'
이 말을 들을 땐 일우가 떠올랐다. 굳이 원수까지는 아닌데도 말이다.
'일우를 사랑하라고?'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 같다. 마지막으로 전도사님이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에 대하여 듣고 이야기 나눴는데 예수님의 별병 짓기? 예수님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지 발표하는 시간이에요."

"불치병을 고치는 의사 예수님"
"물위를 걷는 예수님"
"기적을 일으키는 예수님"
내 차례가 되었다.
"라이벌 예수님"
"와, 그렇게 쎈가? 예수님이 라이벌?"
아이들이 웅성거려도 전도사님은 웃어준다.
"생각은 자유롭게 발표하는 거예요. 정답은 없으니까"

하람이는 마지막에 발표했다.
"바보 예수님"  
"바보?"
하람이에게 시선이 고정됐다.
"바보같이 무조건 참고 이해해주고 누가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벗어주라 했고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내밀라고 했어요. 그리고 자신을 배반한 제자를 따뜻하게 받아주고 사랑해주신 분이니까요."

"진짜 바보는 아니잖아? 마음이 넓은 거 아니야?"
나는 당연한 질문을 했다.
"그런 바보를 사랑하는 저도 바보가 되고 싶습니다."
바보가 되고 싶다는 하람이를 보며 나도 예수님을 닮아가고 싶었다.
일단 일우 시험지부터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아무리 더디게 느껴져도 시간은 흘러갔다. 월요일 아침의 해는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하람이와 가까워 졌기 때문이다.

교실에 들어가서 일우의 책상 서랍에 시험지를 슬쩍 넣었다. 물론 이름은 다시 진일우로 고쳤다. 아이들이 하나 둘씩 교실로 들어오고 나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잊으려고 애썼다. 친구들과 평상시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일우도 오늘은 나에게 눈인사를 할 뿐 시비를 걸지 않는다. 역시 사람은 노는 물이 중요하다고 하람이와 하루를 보낸 우리들은 천사 물이 들었나 보다. 아무튼 기분 좋은 변화이다.   
1백점 보다 일우보다 나는 예수님 생각이 많이 나고 더 궁금해 졌다. 아마 하람이를 좋아해서인가보다. 

그 때 하람이가 나를 툭 치며 물었다
"순남아 그런데 네가 예수님을 라이벌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의미를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어, 그건 말이야. 내가 좋아하는 하람이라는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예수님이니까 나의 라이벌이지. 그래서 나도 예수님 닮아 보려고 노력할거야, 그럼 언젠가는 하람이라는 친구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완전 사랑고백이었다. 얼굴도 화끈거리지 않고 쑥스럽지도 않았다. 예수님을 아는 순간부터 믿음과 보이지 않는 용기가 생기고 담대해진다고 하더니 나는 벌써부터 달라지고 있었다. 나는 말을 또 이었다.
"내가 일우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알지? 하지만 원수는 아니지만 원수 비슷하니까 하하하, 좋아해보도록 노력할게."

하람이는 약간 수줍은 듯이 생긋 웃었다.
"아마 어쩜 나도 너를 벌써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예수님 라이벌! 난 너를 응원할게. 예수님도 내가 순남이를 응원하기 바라실거야 "
'그렇다면 내 편이란 얘기인가? 예수님 편이라는 얘기인가? 나를 응원하겠다는데 그것이 예수님이 원하시는 거라고?'
그냥 라이벌은 포기했다. 신의 아들이니까 사람의 아들인 나는 못 이기는 것이 당연하다.
'언젠가 나도 하람이처럼 예수님을 많이 사랑하는 날이 올 것 같다. 과연 나도 하람이를 사랑하는 건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건가? 하하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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