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펜젤러의 최후 '美化' 됐다?."

"아펜젤러의 최후 '美化' 됐다?."

[ 교계 ]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제273회 정기학술발표회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09년 04월 04일(토) 23:33

 아펜젤러의 조난사건에 대해 정확한 역사적 실증 작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4일 새문안교회(이수영목사 시무) 언더우드교육관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역사학회(회장:한규무)의 정기학술발표회에서 홍승표씨(연세대 신학과 박사과정)는 "아펜젤러의 죽음에 대한 여러가지 추측과 미화, 순교자 현양 등 다소 과장되거나 왜곡된 역사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역사적 고증과 실증작업은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왔다"고 밝혔다.

   
▲ 한국기독교역사학회는 지난 4일 새문안교회에서 정기학술발표회를 개최했다.

1885년 언더우드와 함께 입국한 한국 최초의 기독교 내한선교사이자 감리교회의 개척선교사였던 아펜젤러가 한국교회에 미친 선교적 영향력에는 이견이 없다. 1902년 6월 11일 목포에서 개최되는 성서번역자회에 참가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불의의 선박충돌사고로 사망한 아펜젤러의 죽음은 당시 한국교회에 커다란 충격이 됐을 것으로 추측되어왔다.

이날 발표회에는 그리피스(W.E.Griffis)가 아펜젤러 사후 10년뒤에 작성한 전기의 허구성과 비역사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아펜젤러가 한국인 조사 조한규와 정신여학교 학생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지 않았다는 영웅적인 희생의 이야기 등 상상력을 가미해 작성한 전기가 역사적 진실처럼 전승되어 왔다는 것이다. 홍 씨는 영웅 이야기에 대해 "평소에 아펜젤러가 보여줬던 인품으로 미뤄보아 충분히 개연성을 가지는 추측"이라면서도 그리피스가 아펜젤러 전기를 작성하기 전에 "그를 만나보지도 한국을 방문해 보지도 일본에서 발간된 신문보도들을 조사해 보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비역사성에 보다 무게를 실었다.

또한 "오늘날 경쟁적인 아펜젤러 성역화 사업은 마치 그의 죽음을 놓고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라고 평가한 그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기념하고자 하는 애초의 선한 동기와는 달리 아펜젤러 죽음을 독점하여 그 의미를 퇴색시키는 우려를 낳고 있다”며 쓴소리를 던졌다.

한편 '구마가와마루'와 '기소가와마루'의 충돌사건에 대해 조일신문(朝日新聞) 등 당시 대대적으로 보도된  일본신문의 기사를 토대로 △급조류를 피해 이동중 동일항로 진입 △승무원의 긴장감 해이 혹은 업무태만 등 두 가지로 사고원인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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