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묘특집/ 늘어만 가는 죽은 자들의 땅

장묘특집/ 늘어만 가는 죽은 자들의 땅

[ 교계 ]

안홍철
2003년 04월 05일(토) 00:00

① 묘지 증가의 심각성과 국내외적 대응

 노벨상 창시자 알프레드 노벨은 스웨덴의 화장률이 전무하던 19세기 후반에 자신을 화장하도록 유언했다. 그의 유골은 현재 수도 스톡홀름의 '노라 시립묘지'에 묻혀 있다. 그의 '솔선수범'으로 지금은 스톡홀름의 화장률이 90퍼센트에 달한다고 한다. 전체인구 8백50만명에 국토면적이 한반도의 4배나 되는 스웨덴의 전체 화장률도 현재 80퍼센트를 넘고 있다. 한 사람의 선택이 나라의 장묘문화를 바꿔놓은 셈이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2001년 12월 현재 우리나라의 묘지 면적은 남한 면적 9만9천8백제곱킬로미터의 1퍼센트인 9백82제곱킬로미터에 이르고 있으며 이것은 서울시 면적 6백5제곱킬로미터의 1.5배에 달하고 있다.
 서울은 앞으로 2년, 수도권은 5년, 전국적으로는 10년 내외에 집단 묘지의 공급이 한계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 계속 이런 추세로 매장식 장례를 치른다면 결국엔 '전 국토의 묘지화'가 될 것이 불을 보듯 자명한 일이다. 이와 함께 전국에는 7백50만 기의 무연고 묘지가 있다고 하니 장차 우리 다음 세대들은 '묘지와의 전쟁'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생활 공간이 점점 묘지에 밀려 이용 가능한 국토가 모두 묘지가 될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게 된다. 2001년 대한주택공사 자료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주택 면적은 5.2평인 반면 우리 국토에 설치된 분묘의 평균면적은 15평이다. 아파트 고층의 공간 면적까지 계수하여 헤아린 산 사람의 주거면적이 죽은 자에 비해 1/3 수준에 불과하다. 이제 죽은 자가 산 사람을 이 땅에서 밀어내고 있다고 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 장묘 제도의 문제점은 무엇보다도 묘지의 지속적인 증가로 인해 자연경관을 훼손하고 사업용지 확보 등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약 70 퍼센트의 분묘가 개인묘지로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상당한 개인묘지는 사실상 허가받지 않은 불법 묘지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현재의 장묘 관행이 지속된다면 수도권은 5년 이내, 전국적으로는 10년 이내에 집단묘지 공급이 한계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본은 화장이 가장 보편화된 나라 중 하나이다. '천황만 제외하고는 모두 화장한다'는 말이 보편화돼 있을 정도로 화장은 일반화돼 있다. 일본은 '죽으면 곧 화장한다'는 등식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일본은 힌두교처럼 종교나 법적으로 화장을 강요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화장문화가 발달한 근본적인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도시의 인구밀도가 갑자기 높아질 때 정부가 묘지부족현상을 예측하고 강력한 행정 지도를 펼쳤기 때문이다.
 1925년 일본의 화장률은 43.2퍼센트에 불과했지만 1950년에는 54퍼센트, 1960년 63.1퍼센트, 1970년 79.2퍼센트, 1980년 91.1퍼센트, 90년대 초에는 97.1퍼센트에서 최근에는 거의 1백퍼센트에 가까운 99퍼센트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도 화장률을 높이고 납골묘 납골당 이용을 권장하고 있으나 화장시설이 일본이나 유럽 등에 비해 낙후되어 있고 납골묘와 납골당 시설 역시 손가락으로 꼽을만큼 부족한데다가 지역 이기주의 등으로 확대 설치가 어려운 점들이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함께 묘지문제 해결에 대한 정부당국과 지자체 입법기관 등의 정책적 의지가 취약하여 법률개정 이외에 예산의 편성 및 투자, 관련기관 조직단체 등을 통한 결집된 개선노력이 거의 없는 무정책 상태에서 지내다보니 오히려 묘지문제를 가중시켜 왔다.
 일본 정부는 1948년 '묘지ㆍ매장 등에 관한 법률'을 발표했다. 당시 일본은 국토 부족현상이 없을 때였다. 하지만 일본 국민은 화장 유골에 대한 매장을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아 설립한 묘지 내에서만 가능하도록 한 법을 철저하게 따랐다. 물론 '님비현상'도 없었다. 우리나라 장묘법이 현실적으로 사문화돼 있는 것과는 좋은 대조를 보이고 있다.
 중국에서는 매장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 화장률이 거의 1백퍼센트이다. 과거 역대 최고 지도자인 주은래와 등소평 역시 화장을 했다. 지도층 인사의 이같은 실천은 중국 화장문화의 밑거름이 됐다. 이외에도 영국은 70퍼센트 이상이 화장을 지향하고 있고 프랑스나 독일은 아직 매장중심의 장묘관습이 일반적이지만 묘지크기가 2.5제곱미터 정도로 작고 집단묘지와 가족합장묘 등으로 묘지를 공원화하고 있다.
 장묘제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인과 사회의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장묘 제도의 개선에는 의식 개혁이 중요하다. 정부는 2001년 2월 13일부터 시행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서 개인묘지 평수를 24 평에서 9 평으로, 집단묘지는 9 평에서 3 평으로 축소하였으나 국토가 넓은 미국에서 0.5~1 평을, 가까운 일본에서 1~1.5 평을 묘지면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아직도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넓은 면적을 묘지가 차지하고 있는 셈이 된다. 또한 분묘 설치 기간을 기본적으로 15년으로 정하고 3회에 한하여 15년씩 연장하여 최장 60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이런 느슨한 법규가 여전히 매장을 선호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묘문화는 그 나라와 사회의 문화적ㆍ정신적 유산이다. 각 나라마다 전래되어 온 관습이 있기 때문에 행정에 따라 좌우되지는 않는다. 이것은 장묘제도가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려운 일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사회 지도층이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는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장묘정책을 수립해서 이를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고 종교ㆍ사회단체가 국민의식전환 캠페인을 벌여 정책을 뒷받침해야 한다. 특히 장묘개혁을 주장하는 많은 기관, 단체들은 한국에 매장문화가 만연하게된 원인을 기독교의 부활사상으로 돌리고 있어 선교적 차원에서라도 이에 대한 기독교계의 대책이 시급하다.
 수 년 전 한 재벌 총수의 죽음과 그의 장례에 대한 의식이 우리 사회 장례 문화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 적이 있다. 지난 98년 8월 작고한 최종현 SK 전 회장은 화장을 택해 재계 안팎을 놀라게 했다. 그는 자기보다 수개월 앞서 간 부인의 시신을 무덤에서 옮겨 화장하게 하였고 자신도 화장하도록 유언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원하면 화장을 하라고 납골당을 건설했다. 그의 죽음은 매장 중심의 장묘 문화에 젖어있는 우리들에게 화장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기회를 주었다.
 한편 기독교계도 지난98년 기독교화장장려운동본부가 설립되면서 목회자들 중심으로 6백 여 명이 화장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김상복목사(할렐루야교회)는 예전부터 유언장에 사후 다시 쓸 수 있는 장기들은 남을 위해 사용하고 나머지는 화장을 해 달라고 기록해 놓았으며, 옥한흠 목사(사랑의교회)는 화장의사를 공식으로 밝힌 바 있다. 이 외에도 곽선희 목사(소망교회), 최홍준 목사(부산새중앙교회),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최일도 목사(다일교회) 등이 화장할 것을 서약했다.
 교계와 재계 등 사회지도자들의 잇달은 화장은 전사회적으로 장묘 문화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화장이 일반적인 장묘 제도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사회 지도층 인사의 솔선수범이 연쇄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고, 화장이 장례방법으로서 경건함과 편리함을 동시에 갖출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안홍철 hcahn@kidokongbo.com


◈ 성경적 장묘, 매장인가 화장인가

 시신을 매장할 것인가 화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기독교계에도 첨예한 문제로 등장했다. 한 쪽에서는 '화장장려운동본부'가 발족되고 또한 본 교단 안양노회에 의해 '총회직영 화장장과 납골묘 건립에 관한 청원'이 헌의 되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성경대로 하면 매장을 해야 하므로 절대로 화장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과연 어느 쪽이 옳은 것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이 시대를 책임 있게 살아가는 신앙인의 길인가? 이 물음에 대해 우리는 변혁주의적 책임윤리의 관점에서 전자의 입장을 취한다.
 여기서 변혁주의란 리처드 니버가 말하는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에 대한 다섯 번째 유형인 변혁유형을 말하는 것이며, 책임윤리란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윤리적 질문에 '적합한 것'을 추구해 나가는 니버의 윤리적 입장을 말한다. 이러한 윤리적 관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행위가 현재와 미래의 민족 공동체에 어떤 영향이나 결과를 미치게 될 것인가를 고려하면서, 오늘날의 장묘방식 문제에 대한 가장 적합한 응답은 매장 방식에서 화장방식으로의 변혁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장묘문화가 매장에서 화장으로 변혁되어가야 한다는 이러한 입장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윤리학적 논거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로, 장묘문화 변혁의 성경적 가능성이다. 화장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성경의 장묘방식이 거의 모두 매장이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성경의 내용을 우리의 행위 판단에 적용하고자 할 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그것이 규범적인 것인가 아니면 서술적인 것인가를 판단하는 문제이다. 이런 관점에서 매장에 대한 성경 기록의 성격을 말한다면, 그것은 규범적인(prescriptive) 것이라기 보다는 서술적인(descriptive) 것이라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성경에 나타난 장묘방식은 거의 매장방식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매장을 규범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결국 장묘방식에 있어서 매장이냐 화장이냐의 문제는 형편에 따라서 두 가지의 방법이 다 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로, 장묘문화 변혁의 신학적 근거이다. 창세기 1장 26-28절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다른 생명체와 관련하여 통치권을 행사하도록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시는 모든 창조세계를 존중하고 돌보아야 하는 책무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땅을 잘 관리해야 하는 책무를 지닌다. 이러한 청지기적인 사명에 따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금수강산을 묘지강산으로 방치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행동하기를 거부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셋째로, 장례문화 변혁의 문화적 불가피성이다. 레이먼드 윌리엄즈에 따르면, 문화란 특정한 삶의 방식의 표현이다. 그는 이렇게 문화를 사회적으로 정의하면서 시대에 따른 문화 구분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에 따라 그는 문화를 '주도문화(dominant culture)', '떠오르는 문화(emergent culture)', '잔존문화(residual culture)'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러한 문화구분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두 가지다. 하나는 문화란 정태적으로 머무르지 않고 살아 움직인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의 장이란 다양한 집단들이 문화적 패권을 위해서 끊임없이 경쟁하는 문화적 패권의 장이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나라의 장묘방식을 포함한 장례문화 역시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 나라의 장례문화의 변천사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전통적인 장례문화가 정태적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장례문화가 변화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 위주의 장례문화의 변천과정을 통해 매장이냐 화장이냐에 대한 관념적인 구별 및 화장에 대한 거부감 역시 점차로 약화될 것이라는 점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넷째로, 장묘문화 변혁의 세계적 보편성이다. 서구의 기독교국가를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들이 매장제도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취했던 조치들을 보면, 거의 예외 없이 모든 나라들이 화장제도를 도입하고 적극적으로 확대시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화장제도의 시행이 세계적인 추세이며 머지 않은 장래에 한국의 묘지제도 문제의 돌파구로 정착될 것이 예견되는 상황이라면, 한국교회는 기독교의 대사회적 신뢰성의 회복과 한국선교 역사 초기에 민족의 문제를 선도해가면서 한국교회가 지니고 있었던 사회변혁적 역량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매장제도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취해야 하리라 본다.

정 원 범
대전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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