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이끄는 삶으로 향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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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특집 ] '쉼과 비움' ③ 크리스찬의 번아웃

김대동 목사
2024년 07월 19일(금) 13:46
인간은 '한계내'(限界內) 존재이다. 이 말은 인간은 한계상황 속에 있는 존재로서 결코 완전하지도 않고, 주어진 삶 속에서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절망과 좌절, 슬픔과 탄식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은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이다. 이 말이 중요하다. 그리스도인도 똑같이 절망과 좌절을 경험하며, 슬픔과 탄식 속에 빠질 수 있다. 이렇게 절망과 좌절, 슬픔과 탄식이 끊임없이 밀려올 때 그리스도인도 역시 우울감을 느끼며 번아웃을 경험하게 된다.

'번아웃(burnout)'이란 일이나 삶에 열정적으로 몰두하던 사람이 어느 시점에 갑자기 신체적, 정신적으로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번아웃의 원인은 심한 스트레스, 업무의 과부하, 목표의 불만족, 정체감의 혼돈, 인간관계 및 개인적 문제 등인데, 이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지치고 소진되는 상태이다. 번아웃의 증상으로는 피로감, 무기력증, 불면증을 겪게 되고, 나아가 우울증, 불안증, 자신감의 상실, 집중력 저하 등을 경험하게 된다. '번아웃'이란 용어는 뉴욕의 정신분석가인 프로이덴베르거(Herbert Freudenberger)가 자신의 논문에서 약물 중독자들을 상담하는 전문가들의 무기력감을 설명하면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그는 번아웃을 "일로 인해 정신과 육체가 고갈된 상태"라고 정의했다. 번아웃을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바로 '탈진(脫盡)'이라고 할 수 있는데, 탈진은 기운이 다 빠져 없어진다는 뜻이다.

번아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번아웃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현재 하고 있는 일의 양을 줄이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번아웃은 쉬라고 하는 내 마음의 소리이므로 적극적으로, 의도적으로 휴식해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남과 자신을 비교하거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일을 하지 않는 동안에 즐길 수 있는 취미생활이나 운동을 찾아보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번아웃은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고자 하는 완벽주의자나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이 겪기 쉽다는 것을 기억하고 대충 철저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특별히 실존주의 상담을 공부한 필자는 우울증이나 번아웃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인생의 깊은 통찰을 통하여 삶의 의미를 붙들라고 조언하고 싶다. 내가 사는 진정한 의미를 붙들고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최근에 번아웃(burn out)을 경험한 바가 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2년 봄에 필자의 가정에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아내가 길에서 넘어져 발목이 부러짐으로 3개월 동안 깁스를 했다. 그런 즈음에 우리 가정에 참 많은 사랑을 주시던 장모님께서 소천 하셨고, 이것은 우리 부부에게 너무나 큰 상실감을 주었다. 또한 그때쯤 코로나가 우리 가정에 밀려왔는데, 그것도 가족들이 한 사람씩 차례대로 코로나에 감염되니 이것 또한 감내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이렇게 힘든 일들이 끊임없이 밀어닥치고, 코로나 시절에 예배도 못 드리고 모임도 가질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자 그만 우리 부부는 탈진할 수밖에 없었고, 특히 필자는 번아웃하여 6주 동안 주일설교도 하지 못했다. 필자는 목사이다. 그런데 목사도 번아웃을 경험한다. 필자는 또한 상담자이다. 그런데 상담자도 역시 번아웃을 경험한다. 이것은 인간 그 누구에게나 우울증과 번아웃이 찾아올 수 있다는 말이다. 바로 이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필자는 지금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 것이다.

이것은 필자뿐만이 아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대부분 다 우울증을 겪고, 번아웃을 경험하였다. 욥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심각한 고난 속에 아파하고 고뇌하며 이렇게 탄식했다. "나는 음식 앞에서도 탄식이 나며 내가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 같구나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욥3:24~26)." 열왕기상 18장은 엘리야 선지자의 대단한 믿음의 승리를 보여준다. 엘리야는 850명의 바알 숭배자들과 맞서 싸우며 믿음을 통한 기적의 승리를 체험했다. 그러나 19장에서 끈질긴 이세벨의 위협에 쫓기던 엘리야는 지치고 지쳐서 마침내 죽기를 원하며 이렇게 탄식하였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왕상19:4). 만일 욥과 엘리야의 이런 고통의 호소를 현대판 정신의학 진단 교본을 통해 살펴본다면 '주요우울불안장애'라는 진단이 내려질 것이다. 그밖에 모세도 다윗도 심각한 우울과 번아웃을 경험했으며,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도 일생을 우울증과 씨름했다. 19세기 부흥운동을 일으켰던 설교가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도 중증 우울증으로 일 년에 두세 달씩 강단을 비워야 했다. 우리 시대에 가장 존경받은 영성가 헨리 나우웬(Henri Nouwen)도, 캘커타의 테레사 수녀도, 기독교선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분으로 평가받는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도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분들은 우울증과 번아웃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를 매우 어려워한다. 그것이 마치 신앙이 약하다는 증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실제로 우울증은 국가나 종교 그리고 사회 경제적 수준에 관계없이 어느 집단에서든지 찾아볼 수 있다. 믿음이 좋은 사람도 얼마든지 우울증과 번아웃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심한 우울증으로 누워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그의 믿음 부족을 탓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천사들을 두 번씩이나 보내 그를 어루만져 주시고 먹이시고 쉬게 하셨다(왕상19:5~7). 하나님은 엘리야가 스스로 일어나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셨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스스로 응답할 수 있을 때까지 휴식을 주시며, 조용히 옆에서 어루만져 주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다.

우울증은 역설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최근 기독교 지도자나 성도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영성가 헨리 나우웬은 오랜 시간 동안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 속에서 그는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었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우울증이 가져온 전혀 예상치 않은 선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우울증을 '기대하지 않은 선물(unexpected gift)'이라 불렀다.

비록 우울증과 번아웃은 참 고통스럽긴 하지만 자신의 영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종종 교우들에게 이런 말을 의도적으로 하고 있다. "우울증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 그렇다. 우울증, 탈진, 번아웃은 비록 힘든 고통의 시간이긴 하지만, 우리는 바로 그런 시간을 통하여 나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번아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김대동 목사 / 분당구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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